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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

살롱의 여왕, 니농 드 랑클로

살롱의 여왕, 니농 드 랑클로(1616∼1705)
사랑과 유혹을 알았던 고혹자


‘살롱의 여왕’
‘살롱을 지배한 자유사상가’
‘선도적인 여성운동가’
‘유혹의 명수’
이 여성을 지칭하는 숱한 수식어 중 몇 개입니다.
니농 드 랑클로.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수식어들이 붙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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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농 드 랑클로는 17세기 프랑스 사교계를 주름잡던 여성입니다.
직업은 ‘코르티잔(Courtesan, 고급 창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떠오르는 창부의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가 창부를 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가난한 하급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5세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고급 창부의 길을 택했다고 하네요.

그는 어릴 적부터 현명하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어요.
가난했지만 아버지를 통해 풍부한 지식과 고급스러운 지성을 물려받았고, 이태리어, 스페인어, 수학과 철학 등에도 매우 뛰어났습니다. 더불어 유머와 센스를 겸비한데다 우아한 외모도 갖췄다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언어를 구사하고 좌중을 휘어잡는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까지, 한마디로 그는 주목받는 살롱계의 여왕이었습니다. 프랑스의 국왕부터 지식인들까지 그의 매력에 휘둘릴 정도였죠. 루이14세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의 조언을 들었고, 볼테르도 그의 살롱에 출입하는 단골 문인이었을 정도죠. 그의 살롱엔 그의 예술적 재능과 지식에 감화된 진보적 지식인들이 자주 출입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니농 드 랑클로는 한편으로 모험가였어요.
당시의 프랑스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어요. 그도 그런 면에서 희생자일 수도 있죠. 날개를 제대로 펼치지 못한. 그렇지만 그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남성 우월주의가 만든 모범적 삶과 탕녀의 고정관념을 바꿨고, 자기 몸의 감각과 개성, 대화술 등 지적인 능력을 개발했지요. 심지어 남자 복장을 하는 등 자유롭게 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고 전해지네요. 그러니 당대의 권력자들을 사로잡는 매혹의 수사가 됐겠죠.

도덕적 편견을 버리고 그를 바라본다면, 그는 창조적이고 낭만적이며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코르티잔이 가진 이미지도 그랬다죠.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말을 빌리자면,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며,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여성으로서는 유례없는 지적 자유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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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농 드 랑클로는 어쩌면 진정으로 사랑과 유혹을 아는 고혹자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이 말들. “군대를 지휘하는 것보다 사랑을 할 때 훨씬 더 많은 재능이 필요하다”
“사랑은 굶주림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화불량으로 죽는 경우는 많다.”

어때요? 동의하지 않나요?

( 참고자료 : 《 코르티잔, 매혹의 여인들》(수잔 그리핀 지음/노혜숙 번역/해냄출판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