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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의 수호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의 수호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1820.5.12 ~ 1910.8.13)
좋은 집안배경에 안주않고 간호사를 전문직으로 자리매김케 한 여성


나이팅게일. 그 이름만 들어도 어떤 이미지나 수식어가 쉽게 떠오르죠?
맞습니다. 사랑과 봉사의 수호천사,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간호사.
‘광명의 천사’ ‘백의의 천사’라는 수식어.
간호사의 좌우명인 ‘나이팅게일 선서’.
국제적십자사의 ‘나이팅게일상(賞)’.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그렇게, 간호사입니다.
그는 부유한 귀족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국적은 영국인데, 부모가 이탈리아 피렌체(플로렌스) 여행 중에 그를 낳아서 플로렌스란 이름을 붙여줬죠.
그는 하지만, 좋은 집안 배경에 안주하지 않았죠. 
말하자면, 좋은 집안에서 제대로 된 교양과 지식을 학습 받아 이를 제대로 사회에 접목한 경우라고 할까요.
어머니는 그에게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자세를 그에게 교육시켰나봐요.
그런 영향으로 그는 빈자들에게 관심이 많았어요.
간호를 천한 직업으로 생각하는 당시의 풍조를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고요.
그래서 그는 가난하고 병으로 신음하는 이들을 돕는 일을 사람이 해야 할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 그에게 간호사는 어쩌면 천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간호수업을 받았고, 의료시설에 큰 관심을 갖고 유럽, 이집트 등지를 돌아다니며 전문성을 쌓았습니다. 이후 전쟁의 참사를 다룬 신문기사에 자극받은 그는 크림전쟁에 참전해 부상병들을 돌봐줬어요.
그것은 또한 그의 간호이력에 큰 도움이 됐어요. 간호사 직제 확립과 의료보급의 관리, 오수 처리 등으로 의료 효율을 높였고 1856년 빅토리아 여왕에게 병원개혁안을 건의하기도 했어요.
이러한 노력은 1860년 나이팅게일 간호사양성소(Nightingale Home)로 이어졌고, 간호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크게 공헌을 했습니다. 간호사가 전문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틀이 됐고, 훗날 간호법과 간호사 양성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 셈이죠.

이만하면 적십자 창설에도 큰 영향을 주었던 그를 기리기 위해 ‘나이팅게일상’이 마련된 것도 당연한 거겠죠? 나이팅게일 선서 또한 마찬가지고요.
‘광명의 천사(The Lady with the Lamp)’라는 수식어에, 동의하시겠죠? 

(※참고자료 : 위키백과, 두산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