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당신의 9.11은 어떠하신가

오늘은, 9월11일.
날짜를 접하는 순간,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이, 바로 그, 9·11.
뉴욕에 자리한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힘없이 무너지던 그 광경.

그것은 아마, 21세기를 실질적으로 연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2001년 9월11일 이전까지는,
21세기가 진정으로 도래한 시점이 아니었던 듯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확인했다.
21세기가 왔다지만, 20세기의 야만이 현재진행형임을.
21세기가 우리에게 별천지를 선사할 것이 아님을.

그렇다. 그 9·11은 그렇게, 21세기의 인류의 첫번째 트라우마였다.
미국이 정의한 '테러'(분명 다른 입장에서는 어쩌면 '성전'이었을테니)의 이미지로 각인된.
불안과 공포를 무기로 권력과 대중의 보수화가 급격히 진전된.

하지만 그 9·11이 터지기 전까지,
9월11일은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의 기념일이었다.
9·11이 터지기 전, 100여 년 전인, 1906년의 9월11일.
2006년 100주년을 넘어, 올해 102주년을 맞은 '평화의 9·11'.

그날은,
무하트마 간디가 '비폭력 불복종운동'(사티아그라하)를 시작한 날이다.
간디는 21년간 남아공 생활을 했다. 1893년 변호사로서 소송사건을 맡아 남아공으로 건너갔다. 변호사였음에도, 그곳에서 그는 굴욕을 당했다. 인종차별. 기차를 탔다. 1등석 표를 샀으나 승무원은 3등석으로 옮기라고 했다. 막무가내. 거부했다. 끝내 내쫓겼다. 유색인종은 1등석에 탈 수 없다는 인종차별 정책 때문이었다. 그 얼토당토 않은 차별이 간디의 의식을 일깨웠다. 당시 남아공에는 7만여 명의 인도인이 있었단다. 그리고 하나같이 백인에게 박해를 받았다. 간디가 깃발을 들었다.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시작했다. 비폭력 불복종운동. 인도노동자 3000명이 엠파이어 극장에 모였다. 신분증명서를 소지하고 지문을 날인토록 한 법안(이른바 '외국인 지문날인법' 아닌가!)에 저항하는 의미로 신분증을 불태웠다. 차별에 저항한 것이다. 그깟 지문날인 신분증으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해선 안된다는 저항의 몸짓.

그것이 비폭력 불복종운동의 시초였다. 평화의 9·11.
간디의 이 운동은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인권운동과 남아공 흑백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철폐운동 등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재밌는 역사다. 그리고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같은 날을 두고서.
차별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이 일어난 날과
미국의 '폭력 패권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계기가 된 날.
이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

인류역사에 또 하나의 9·11도 있긴 하다.
칠레의 독재자였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1973년 아옌데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반동쿠데타를 일으킨 날이 9월11일이었다.
바꿔말하면, 남아메리카 최초의 사회주의정권을 세운 살바도르 아옌데가 자살한 날. 아옌데는 대기업의 국유화와 농지개혁의 촉진,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국교, 분배 위주의 경제정책 등을 내세웠다. 칠레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선거에 의해 입성한 사회주의 민중연합정부였다.

혹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아옌데가 집권한 칠레에 대해. "라틴아메리카의 해방과 독립, 투쟁과 전투의 진보운동 속에서 칠레는 20세기의 파리 코뮨이었다. 말 그대로 '마르크스가 <프랑스 내란>에서 문제제기하고,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정식화한' 모든 일들이 민중들의 힘에 의해 눈 앞에서 펼쳐졌다. 이것은 책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스펙터클이었다."

당연 미국은 아옌데 정부를 싫어했다. 칠레에 대한 경제권을 비롯한 지배권이 약화될 것이므로. 쫀쫀한 미국은 경제원조 거부, 친미파 장교들에 대한 군부 지원을 했다. 피노체트가 수혜악당이었다.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아 반동쿠데타를 일으켰다. 아옌데는 장렬히 전사했다. 직접 권총을 들고 끝까지 싸웠으나 역부족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에게서 선물받은 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하나의 9·11은 그랬다.

하긴 이 유구한 역사 속에,
9월11일에는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더구나 개인의 역사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을 터.
지구상 60억명의 개인에겐 60억개의 9·11과 각자가 바로보는 9·11이 있을 터.
당신의 9·11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 혹시 오늘이 당신 생일이라면, 축하한다.^^

9·11. 나는 어떤 보통사람들을 생각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그 사람들.
2년 전 9.11을 다룬 영화, <플라이트 93>에 그 사람들을 엿봤다.
그리고 그때 아래와 같이 긁적였다.
나는 오늘도 그들의 명복을 빈다.

===================================

9·11과 보통사람들

지금 9·11은 특히나 설명을 원한다. ‘(무슨 목적으로)왜’부터 ‘누가(주축이 되어)’ ‘(폭탄 테러를)어떻게’ 등 저 너머에 있(다고 믿)는 ‘진실’ 혹은 ‘음모’를 길어내고 싶다.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그 사실에 가린 ‘진실’은 무엇일까. 왜 5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9·11 의혹은 풀리지 않는 걸까. 과연 우리에게 9·11은 무엇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는 사람들

21세기에도 야만의 역사가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 9·11. 사건 발생 직후 제기된 다양한 의문점들은 현재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음모론. ‘9·11 이야기’는 태평양 건너에서도 관심집중이다. 한국의 방송에서도 이 거대한 음모론을 다루더라. 지난 5일 방송된 < PD수첩-9·11 음모론, 미국의 자작극인가>(MBC)에 이어 9일의 <그것이 알고 싶다-9·11 미스터리:테러인가, 거대한 음모인가>(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