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칼라스, 죽어서도 영원히 남은 그의 노래를 함께 들으실래요? ^^
(1923.12.2 ~ 1977.9.16)
오페라계에 'BC'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원전을 뜻하는 BC(Before Christ), 아닙니다.
오페라에서의 'B.C'는 'Before Callas(칼라스 이전의 시대)'입니다.
칼라스 이전과 이후로 오페라가 나뉜다는 거죠.
캬~ 얼마나 대단했음, 이런 말이 생길까요.
아마도,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낸 사람에 대한 일종의 짧은 헌사 같은 거겠죠?
AIDS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고발한 영화 <필라델피아>(1993), 보셨어요?
봤다면 혹시 기억날지 모르겠네요. AIDS에 걸린 변호사 앤드류(톰 행크스)와 그의 복직투쟁을 변호하는 조(덴젤 워싱턴)가 교감하는 장면에서 나오던 아리아.
이 아리아,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La Mamma Motar(어머니는 돌아가시고)'입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Andrea Chénier(안드레아 셰니에)'의 3막에 나오는 곡이죠.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는 그 장면을 더 풍성하고 감동적으로 만들어줍니다. 그 누구도 그 목소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만이 가능한.
아님, 이 영화, 어떤가요. <칼라스 포에버(Callas Forever)>.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이자, 실제 마리아 칼라스의 일부 오페라 무대를 연출하고, 그의 오랜 친구였던,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이 2002년에 만들어 한국엔 2007년 개봉한 작품.
전기 영화? No!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감독이 상상한 말년을 보여주는 가공의 드라마죠.
허구인 동시에 쓸쓸하게 죽어간 친구에게 바치는 헌사인데,
무엇보다 귀가 즐겁습니다. <카르멘><나비부인><라트라비아타> 등을 칼라스의 목소리로 감상할 수 있어서.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저는 9월16일이면 칼라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아님 <필라델피아>를 보죠.
이젠 <칼라스 포에버> 하나가 더 추가될 수 있겠네요.
혹시 연세를 어느 정도 드셨다면, 한국에서 1974년 가을에 열린 두 차례의 공연을 아시거나 보셨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칼라스를 설명하는 말이 있죠.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다.'
그에게 바쳐진 찬사들도 한번 들어볼까요. '전설이 된 오페라의 여신'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이름만으로 전설이 돼버린 성악가' '영원한 카르멘'...
이런 극찬을 받는 그지만,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칼라스의 얘기는 엉뚱하기까지 합니다.
"뚱뚱하고 촌스러웠으며 귀엽지도 않았던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미운 오리새끼였다."
사실, 그의 생은 그가 출연했던 어떤 오페라의 주인공보다, 극적이고 드라마틱하며,
그의 목소리가 방출한 어떤 노래보다 풍성하고 구불구불합니다.
특히나 세기의 연애사 혹은 스캔들은 시대를 건너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거리입니다.
그는 분명 엄청난 재능을 가진 데다 노력과 의지까지 곁들인 타고난 예술가이면서도,
화제와 함께 세간의 입방아를 몰고 다니는 셀리브리티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행적을 이래저래 훑자면, 성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속물 같단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 또한 알 수 있어요.
그는 콤플렉스 덩어리였습니다. 용모와 불행한 가정환경에 대한 열등감과 소녀가장으로서의 중압감으로 불행했던 과거로 인해. 어떻게 해서든 그런 감옥에서 자신을 빼내고 싶었던 칼라스는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기에 자신을 더욱 위악적으로 만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30년 가까운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졌던 이탈리아의 사업가이자 후원자였던 메네기니와의 결혼과 이혼,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과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 특히나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JFK의 부인이자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재클린 케네디(재키)와의 삼각관계. 남편(메네기니)을 버리고 음악을 멀리하면서까지 오나시스에 빠졌던 마리아 칼라스. '사랑을 찾아' 여자로서 행복을 찾은 그, '그의 음악과 연주'를 잃은 관객과 팬들.
허나, 그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죠.
재키가 냉큼 그의 지위를 차지했고, 그는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결혼생활 중 목소리에 금이 갔고, 유산을 겼었으며, 자살기도까지도.
예술은 그렇게 힘을 잃어갔고 여인은 생의 윤기를 잃었습니다.
다만 이것 하나, 그에게 위안이 될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오나시스는 죽기 전 이랬답니다. "진정한 연인은 마리아 칼라스였다."
어쨌든 그 진정한 연인을 지켜주고 곁에 두지 못한 오나시스도, 찌질한 남자예요. 그렇죠?
마리아 칼라스를 향한 헌사는 아직 계속됩니다.
헤밍웨이는 그를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으로 불렀습니다.
마리아 칼라스의 공연 파트너였던 스테파노는 그의 죽음 이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칼라스는 노래 잘하는 여자였지, 노래에 딸린 여자는 아니었다. 사랑과 성공의 인생을 살다 그걸 잃고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음악에 살고, 사랑에 살았던' 자의 죽음이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연과 세간의 눈초리에 따라 고무줄 늘리듯 행했던 초인적인 다이어트, 은둔하면서 보낸 만년, 홀로 쓸쓸히 세상을 등진 최후 등 극적이었던 그의 생의 가지들.
그리스는 '마리아 칼라스의 해'로 정했고, 이탈리아에서는 다큐영화가 상영됐고, 뉴욕에서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한국에서는 '마리아 칼라스 페스티벌'이 열렸고, 2002년 제작된 영화가 개봉됐었죠.
그런 해,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9월6일에 숨을 거두기도 했었죠.
영화평론가 한창호는 그러더군요. 칼라스는 일찌감치 갔고, 파바로티도 갔으니, 이젠 오페라 같은 음악을 누가 보급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스타의 존재가 대중화에는 절대적으로 유리한데, 오페라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글쎄, 전 아직 두 사람을 이을 누군가를 발굴 못했는데, 당신은 혹시 어떠세요?
혹시 그들의 명맥을 이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꼭 좀 알려주세요.
귀를 좀 청량한 목소리로 씻고 싶어서요.
최근 국민과의 대화를 나눈 어떤 사람의 훈계조의 쇳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거든요.
(※ 참고 : 『마리아 칼라스 : 내밀한 열정의 고백』(앤 에드워드 지음|김선형 역 / 해냄출판사 펴냄), 위키백과, 브리태니커백과, 필름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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