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미테랑'.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11년. 프랑수아 미테랑(1916.10.26 ~ 1996. 1. 8) 이후 프랑스에는 시라크가, 그리고 최근 사르코지가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됐다. (이번 사르코지는 -이념은 차지하고- 앞선 두 프랑스 대통령의 이미지가 강렬해서인지, 좀 경박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희귀본을 수집하는 문학광이었던 미테랑, 아시아 문화와 예술에 조예를 갖고 있던 시라크는 다른 노선의 인물들이었지만, 산책하고 사색하는 모습이 어울리던 대통령 이미지를 가졌다. 사르코지는 다르다. 왠지 팔랑거린달까.)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1958년 9월28일)이후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좌파 대통령이었던 미테랑.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미테랑은,
재임 내내 문화고양에 힘 썼으며 그만한 문화적 소양을 갖춘 대통령.
산책하는 모습을 내내 보이던 지적인 대통령.
어쩌면 정치인에게 치명적인(순전히 내가 살아온 땅의 기준에서 보자면) 스캔들에도 꼿꼿이 기지개를 켜며 프랑스인의 사랑을 받은 대통령.
프랑스의 좌우동거체제를 만들어낸 대통령.
유럽연합(EU) 발족에 지대한 공헌을 한 대통령...
이 정도였다.
그러다 미테랑 이야기를 보내준 백우진 선배의 메일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었다. 젊은 시절, 언론계에 잠시 몸을 담기도 했다는 미테랑의 비판 매체 극복법. 그가 어떻게 소통에 능할 수 있었는지,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이를 어떻게 포용했는지를 알려주는 일화 한토막.
모든 매체가 그에게 달려들어 은퇴를 종용할 때였다. 가장 혐오스럽고 가장 모욕적인 톱 기사가 계속 실렸다. 미테랑은 가장 잔인한 칼럼들과 가장 심한 상처를 주는 만평들을 보란듯이 자신의 책상 위에 놓아두고 읽고 또 읽었다. 마치 그것들을 즐기고 거기서 계속 버티는 힘을 길어올리기라도 하듯. 자크 아탈리는 충격을 삭이는 그의 능력과, 어떻게 보면 그런 것에서 그가 희열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테랑도 기자들을 싫어했다. “파리에는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기자 200명이 있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관해 최악의 혐오스러운 기사를 쓴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우파 언론인 루이 포벨스였다. 실은 미테랑은 포벨스가 쓴 두 번째 소설 <사랑이라는 괴물>을 매우 좋아했다. 대통령은 작가에게 그 책에 관한 찬사를 선사했다. 문학을 매개로 두 사람은 진심에서 우러난 대화를 나눴고, 그 대화에서는 빛이 났다. 점심식사는 4시간 동안 이어졌다. 포벨스는 그 뒤에도 계속 미테랑을 비판했다. 그러나 더 이상 대통령을 모욕하지는 않았다.
더불어 미테랑의 숨겨진 애인과 딸이 들통(?)난 것은 임기말인 1994년11월이었다. 가벼운 읽을거리와 사진 등을 싣는 프랑스의 가쉽대중지인 <파리마치>는 미테랑이 혼외관계를 통해 딸을 두고 있다며 특종을 터뜨렸다. 사진도 공개했다. 이 땅의 기준에서라면 경악할만한 일이지만,
프랑스는 역시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비난을 받은 것은 되레 <파리마치>였다. 다른 언론들의 반응은 "너 왜 그랬니... 쯧쯧" 정도? <르몽드>가 뽑은 제목은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르피가로>는이를 '하수구 저널리즘'이라고 씹었다.
이 땅의 기준에서는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테랑은 그런 포화 속에서도 무사히 임기를 마친 뒤 군중 속으로 들어갔고 96년 1월8일 영면에 들어갔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으면서도 그 권력의 무게에서 자신을 빼는 방법을 알았던 사람이었던 듯 싶다. 사적인 욕망을 희생당하지 않을 권리. 관계와 대화라는 측면에서도 그는 출중했다.
그것은 한편으로 그의 문인적 소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탈리의 글은 그것을 뒷받침하지 않는가.
그 밖에 미테랑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
* 17년간 미테랑을 보좌하고 <<미테랑 평전>>을 지은 자크아탈리는,
미테랑을 가리켜 "프랑스의 마지막 왕"이라고 했다.
그 '왕'은 전제군주나 절대군주를 뜻하는 나쁜 뉘앙스는 아니다.
안으로 개혁정치를, 밖으로 유럽연합을 주도하며 '강한' 프랑스를 이끌었다는 뜻에서 였다고 한다.
* 한 기자는 미테랑에 대해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으면서도 사적인 욕망을 희생시키지 않은 삶의 '절묘한 기술자'였다"고 기술했다. 듣고보니 그랬다. 기실 감옥 아닌 감옥이나 다름 없는 엘리제궁을 빠져나와 한적한 곳에서 숨어 책을 읽었다는 일화나 나중에 밝혀진 숨겨진 애인과 딸 등을 보면, 그는 사적인 욕망에도 충실한 '출중한' 대통령이 아니었나 싶다.
* 이런 재밌는 일화도 있었다. 미테랑의 숨겨진 애인은 그의 50대 야당 사무총장 때 만난 고교생이었다. 더구나 그 고교생은 미테랑의 정치적 동반자의 딸! 두 사람 사이를 눈치 챈 미테랑의 정치적 동반자가 딸에게 금족령을 내리자 미테랑은 그의 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항의를 했단다. "연인을 만나게 해 달라!" 재밌지 않은가. 50 넘은 양반이 고교생 애인을 만나기 위해 집 앞에서 소리 지르는 장면이란. 멋지단 거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니까. 사랑 앞에는 체면이고 나이고 생까도 좋다.
* 재밌는 건, 미테랑은 청년시절 극우파였다고 한다. 어떻게 노선을 바꿨는지 잘 모르겠으나, 혹시 알고 있다면 알려주시길.
* 미테랑에 대한 호감지수를 높인 건, 바로 그의 문화적 소양, 문화행정력 때문이다. '책 읽는 대통령'은 그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이런 일화는 어떤가. 1987년 재선에 성공한 미테랑은 파리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프랑스 혁명사>>를 읽고 있었단다. 당시 비행기 안은 재선 축하를 위한 사회당원들과 기자들로 시끌벅적한 상태. 기자 한명이 재선됐으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미테랑은 전국의 도서관을 하나로 연결하는 역사적인 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이라고 했다.
멋지지 않은가. 나는 이정도 공약 걸고 실행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면 당장이라도 발벗고 선거운동에라도 나설 용의도 있다. 미테랑은 실제로 국립도서관을 새로 지었다. 취임 첫해부터 문화부 예산을 두 배로 늘리며 "모든 프랑스인이 만들고 창조하는 능력을 배양하고, 그들의 재능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일갈은 미테랑의 문화지수가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일례다.
이 땅도 이른바 '대선시즌'이 다시 도래했다. 색깔 갖고 장난치는거야 워낙 일상다반사이니 그렇다치더라도, 그들만의 청문회, 검증작업에 문화가 배제된채 가시돋힌 공방만 오가는 것을 보면 에라이~. 오로지 '대통령만 되면 된다'는 사생결단의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들의 떼쓰기에 언론도 같이 놀아난다. 사생활과 아닌 것도 구별 못해서 트집잡아 다른 언론의 '검증'작업에 딴지를 거는 행태를 보아하면, 거참 뭐하자는 플레이인지.
미테랑을 가진 프랑스가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개인이 문화의 산물이듯, 미테랑 역시 프랑스 문화의 산물임을 감안하면 말이다. 내 소박한 대선 소망이라면, 상상력 있는 정치인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것. 뭐 하긴 언제 이 땅이 상상력이 가진 분을 가져봤어야지,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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