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도전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길."
난 그말의 진정성을 믿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감히 '쓰레기'라고 말해야겠다.
그는 이른바 '매우 잘난 사람'이다. 오해마시라. 비꼬는 말이 아니다.
그의 표피를 보자.
이화여대와 동 대학 국제대학원을 나왔고,
한국IBM이라는 대개의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버젓한 직장을 다녔으며,
주경야독 1년여 준비 끝에 아이비리그 MBA 최고명문 중 하나인 '워튼스쿨'을 입학했다.
그리고 뉴욕의 투자은행(IB)인 'JP모건' 본사에 입사, 투자은행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명재신'이라는 삼십대의 여성이다.
이런 이력 덕분일 것이다. 책을 냈다. 제목도 섹시하다. ≪서른살, 꿈에 미쳐라≫.
그와 독자와의 만남을 중계했다.
그 현장을 남기긴 했으나, 불편한 자리였다.
나와는 매우 다른 세계, 상충되는 우주였기 때문이다.
현장에 가기 전, 먼저 책을 읽었다.
책은 아까 언급한 대로, '쓰레기'였다.
어떤 누군가에겐 그 책이 '금과옥조'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최소한 나에겐 그랬다.
그의 지독한 도전기와 지금까지의 성취는 인정한다. 그는 분명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건가? 책은 어떤 울림도 없다. 찝찝하기만 하다.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올려 1촌이나 이웃, 친구들과 나눌 자신의 분투기나 담소를,
무슨 대단한 철학이나 거창한 성과라도 거둔 양, 분칠하고 화장을 떡칠한 나쁜 책이다.
이른바 '성공서'로 책을 분류하나본데, 나는 이것을 '참고서'로 분류하겠다.
MBA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참고서.
또 "꿈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는 천편일률적인 얘기를,
지겨워도 다시 듣기 위함이라면, 모르겠다.
그 외에 이 책은 무쓸모이고 되레 해를 끼친다.
그는 가슴 속에 품어온 꿈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꿈은 책 속에서 증발돼 있다.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비즈니스 시장 경쟁력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그 꿈.
그 꿈을 위해 MBA와 IB 경력이 필요하다고 읍소하지만,
책에는 진짜 그 꿈을 위한 진지한 사유나 철학을 찾아볼 수 없다.
꿈의 본질과 그 꿈이 어떻게 그의 세계와 우리의 지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책은 그저 경쟁사회에 스스로를 내던진 하이에나를 따라간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꿈'에 대한 해석은 백가쟁명이고, 백인백색이겠지만,
책에서 그는 진짜 자신의 꿈을 위해 가고 있는 것인지, 혼돈스럽다.
아시아 개발도상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그 꿈을,
나는 이 불공정하고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착취구조의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고 처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자, 그것은 오판이요, 오해였음이 드러났다.
공부를 그만큼 하고, 그 훌륭한 꿈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이,
고작, "세계인이 되는데 필수인 영어로 소통하는 것도 처음 미국에 왔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해졌다"며 이를 '토종 한국인에서 세계인이 되다'라고 표현할 정도니, 나는 할 말이 없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것을 두고, 세계인이 됐다니.
진짜 세계인이 무엇인지, 세계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정말 모르는 건가.
또 그는 월스트리트를,
"세상을 움직이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했다.
더 자세히는,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세상을, 돈을 움직이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의 '꿈의 양성소'"라고 했다.
그곳의 꿈이 작금의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불러왔음을 안다면,
가히 월스트리트의 돈지랄에 '꿈의 양성소'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건가.
한 마디로 '얼척 없음'이다.
혹시나 했지만, 독자와의 만남에서도 그는 IB나 뱅커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선 일언반구 않았다. 거기에 소속돼 있는 사람으로서 어떤 반성이나 성찰의 빛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울러 내가 그쪽 바닥 생리나 속사정 모르고, 내뱉는 '헛소리'일지 모르겠지만,
7조2천억원 규모의 딜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을 향한 숭배 혹은 경배의 글은,
토를 나오게 할 뻔 했다.
펀딩이나 M&A의 진정한 가치와 진수를 모르는 무식쟁이라고 욕해도, 좋다.
그들의 탐욕이 일정부분 공헌한 이 화폐위기에 고통 받는 대상은 과연 누군가.
왜 그들의 탐욕에 전 지구가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그는 어쩌면 경쟁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업계에 발을 너무 깊이 들여놨다.
나는 그의 꿈이 탄탄한 철학과 사유 위에 세워진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꿈꾸는 만큼 얻을 수 있다!"
좋은 말이다. 그는 자신의 지독한 노력과 땀으로 지금의 위치를 일궜다.
그러나, 이 말은 얼마나 나이브하고 무책임한 말인가.
한국을 떠나 있다손, 그동안 살아왔던 한국의 구조가 어땠는지, 모르는 걸까.
비정규직, 실업·실직, 노숙자, 더 나아가 빈곤…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개인의 성취와 노력만을 강조하는 것은 순전히 기득권의 논리요, 엘리트주의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개도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꿈을 지닌 사람의 입에서 나올 소린가.
그가 발언해야 할 것은,
이 불공정한 사회구조에 대한 태클과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쓴소리여야 했다.
내가 이 책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재밌던 것은,
살사파트너로 만나 결혼까지 골인한 다른 인종사람과의 연애담이었다.
한국 사람 외에는 결혼하지 않을 것처럼 여겼던 사람이,
자신의 벽을 허문 이야기만 유일하게 빛났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세계화의 일부인 것을. 타인을 받아들이고, 타자화시키지 않는 것.
이 책은 꿈을 성취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다.
따라서 전혀 얻을 것이 없다. 단 MBA 지원자를 빼고.
이 책은 또, 꿈을 빙자해서 흔들리는 이삼십대의 호주머니를 갈취하겠다는 쓰레기다.
책만 놓고 보자면,
그의 지독한 노력·근성과 똑똑함은 잘 알겠지만,
그는 현명하거나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철학과 어떤 성찰, 사유가 부족하다. 책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런 책은 정말이지, 너무 빤하다. 기획 의도가.
출판사도 쓰레기 양산하느라 수고 많았다.
독자와의 만남에서 정작 내가 하고픈 말은 이것이었다. 딴지 김어준 총수의 상담을 빌렸다.
"나이 ‘서른’은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다. ‘꿈’도 반드시 미쳐야 할 대상은 아니다. 사실 그즈음의 나이에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모르겠단 사람들, 철철 넘친다.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해 좀 더 알고 생을 어떻게 상대할지 궁리하는 거다. 무엇이 자신을 기쁘고 슬프게 하는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어떻게 구획되는지. 세상의 율법에서 얼마나 자유롭고 구속받는지. 어떤 것에 감동받고 추하다고 생각하는지. 있는 그대로의, 생겨먹은 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인정하기 싫어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꿈’이라는 단어에 너무 현혹되진 마시라. 나는 당신의 꿈이 어떻든, 꿈에 미치건 아니건, 당신을 응원할 것이다."
부디, 명재신이 진짜 그 꿈을 향해 정진하길 바란다.
이런 글은 부디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남겨도 충분하지 않은가.
책을, 종이를 낭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책에 대해선 부끄러워 하고,
언젠가 다시 책을 낸다면, 그때는 정말 자신의 꿈과 철학을 제대로 녹여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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