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만든 사람, 타샤 튜더(Tasha Tudor)
(1915.8.28~2008.6.18)
"나는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적는다. 찬탄할 만한 직업인데 왜들 유감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가정주부라서 무식한 게 아닌데.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을."
'타샤 튜더(Tasha Tudor)'.
잘 가꿔진 정원과 자연 친화적인 삶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졌던 사람입니다.
TV나 책 등을 통해 그의 이름과 정원 혹은 철학을 접하신 분들, 많을 거예요.
사실 그는 100권이 넘는 책에 그림을 그렸으며 미국에서 매년 최고의 그림책에 주는 '칼데콧상'을 받은 저명한 그림작가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난 상업적인 화가고, 쭉 책 작업을 한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 였다. 내 집에 늑대가 얼씬대지 못하게 하고, 구근도 넉넉히 사기 위해서."
그는 굳이 예술가연 하지도 않았고, 그림을 통해 특별한 예술적 메시지를 전파하지도 않았습니다.
타샤는 그저 '가정주부'이길 원했던 사람이에요.
그러면서도 그의 작업이 '예술'이 아니고,
그의 삶 자체가 '예술'이 아니었던가 싶은 사람.
그는 맨발로 일상을 지냈습니다.
흙을 밟으며 사람과 땅 사이의 교감을 나눈 거죠.
식물을 가꾸고 동물을 키우며 자연과 벗했다죠.
해마다 1000개가 넘는 알뿌리를 심고,
염소젖을 짜 치즈를 만들고,
자기가 좋아하는 코기종 개들과 앵무새를 키우고.
그러면서 인형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주고,
동화를 짓고, 그림을 그린 삶.
늘 19세기 옷을 입고, 그릇도 가구도 19세기 것을 고집한 삶.
귀농이라고요? 천만에요.
타샤는 그저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알았을 뿐이에요.
자신만의 방식과 이유를 갖고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던 '행운'과,
그것을 '실천'하면서 자칭타칭 '행복한 사람'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죠.
세간에선 동화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하지만,
그건 타인의 눈에 비친 시선일 뿐,
그가 자신의 생을 위해 쏟은 노력은 평범 그 이상이었죠.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인 버나드 쇼의 말대로 살려고 노력했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지만, 나아가는 자는 자신의 환경을 만들어간다."
타샤는,
미국 보스턴에서 화가였던 어머니, 조선 기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본가가 보스턴의 유명한 가문인 덕에,
당대의 지식인들과 집안이 교류를 나눴다죠.
마크 트웨인, 소로우, 에머슨, 올콧 일가 등이 그의 집을 드나들었고,
타샤도 예술적인 기질과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아이로 자랐나 봅니다.
집안이 가난해지고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이 흩어져 살게 됐을 때도,
그는 아버지 친구의 집에서 활달하고 자유분방하게 커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보스턴 뮤지엄 파인 아트 스쿨에서 공부했지만,
15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살기 시작했어요.
그림작가로서 타샤의 데뷔는 23세 때였습니다.
남편 조카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린 <호박 달빛>이 출판된 것이 시발이었죠.
그의 그림은 이후로도 한결 같았습니다.
식물과 동물이 어우러지고 아이들이 노닐거나 전원 풍경이 묘사된,
여성스럽고 로맨틱한 고전풍의 그림체가 그의 낙인이 됐습니다.
백악관의 크리스마스 카드와 엽서에 삽입될 정도로,
그의 그림은 인상적이었고, 평화로움 그 자체였지요.
그림에 나왔듯, 타샤는 전원생활을 계속 꿈꿔왔습니다.
30세가 되자 뉴햄프셔에 있는 낡은 17세기 농가를 구입,
삶의 또 다른 전기를 마련했지요.
전기도 수도도 없는 그곳에서,
그는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자 했어요.
네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 작업도 하고, 채소밭과 꽃밭을 가꿨습니다.
소젖을 짜고 닭, 오리, 양, 돼지 등도 쳤고,
하루하루가 축제이자 방학인 듯 지냈습니다.
그러나 지향점이 맞지 않던 남편과는 결국 헤어졌습니다.
그림을 팔아 생활을 꾸려나가던 타샤는,
마침내 56세에 염원하던 버몬트 주의 버려진 감자농장터 부지를 구입해
이사를 했습니다.
이곳이 세간에 널리 알려진 '타샤의 정원'입니다.
그의 생활은 여전했습니다.
오두막집을 짓고 화덕에 장작을 지피는 오래된 방식으로 음식을 만들고,
베틀로 천을 짜 옷을 짓고 기르던 염소 젖으로 짠 요구르트와 치즈를 먹었으며,
그림 작업을 계속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당연히 정원에는 꽃과 나무, 초지에는 야생화 씨앗을 심고, 과수원에는 돌능금나무와 배나무를 키우는 등 정원을 풍성하게 만드는 작업도 놓치 않았죠.
척박한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 쉽지 않았지만,
그는 지난한 세월동안 꾸준히 가꾸고 닦았습니다.
돈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성.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타샤의 정원을 만든 결정적 마법이었습니다.
타샤는 그렇게 자연과 함께 90세가 넘도록 공존했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과 달리 자신이 만든 소우주 속에서 행복을 찾으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지에 대한 하나의 견해를 세간에 보여줬습니다.
누구나 타샤의 삶을 따라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그것이 행복의 완벽한 모델이랄 수도 더더욱 없지만,
행복과 잘 사는 것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 것만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그도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선을 긋습니다.
"인생을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들에게 특별히 해줄 이야기는 없다."
참,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타샤 할머니가 건넨 이 한마디도 도움이 되겠네요.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참고자료 : 타샤 튜더 공식 웹사이트(www.tashatudorandfamily.com), 블로그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http://blog.naver.com/tashaworld), 한겨레, 중앙일보
[위민넷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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