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느끼던 건데, 이제야 한 마디.
수상소감 유감.
그건 이 땅의 셀러브리티에 대한 일종의 아쉬움이겠다.
천편일률적인 수상소감에 대한 시청자로서 느끼는 식상함이시겠고.
며칠 전,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소감, 잠시 보자.
전 남편(제임스 카메론 <아바타>)과 이룬 대결구도(감독상, 작품상 등) 등으로 이목을 끈 캐서린 비글로 감독(<허트 로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숨을 걸고 군복무를 하고 있는 분들께 이 상을 바친다. 그들이 무사히 집에 돌아오길 바란다." 재기 넘치게 이라크전을 비판한 수상소감. ☞ <허트 로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6개 부문 수상
(이번 아카데미에선 별 빛을 보진 못했지만, <타이타닉>으로 한때 아카데미를 휩쓴 제임스 카메론은 당시, "나는 세상의 왕이다(I'm King of The World)!"를 외쳤댔지. 멋진 놈!)
테이프를 돌려, 지난해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날 첫 시상 부문이었던 여우조연상. 처음 오스카를 받아든 절세여신님이자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르소나, 페넬로페 크루즈 왈.
"여기 기절한 사람 없지? 왜냐하면 제가 첫 번째 기절한 사람이 될 것 같거든." 자신의 좋은 기분을 한껏 드러낸 농담으로 시상식의 긴장을 푼 1번 타자의 재치. 역쉬 준수의 여신님.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 동성애자 인권운동가이자 동성애자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됐던 하비 밀크를 다룬 <밀크>(현재 개봉 중이다. 보러 가야지~). 이 영화로 각본상을 받은 작가 더스틴 랜스 블랙은 이렇게.
"나는 13살 때 알게 된 하비 밀크에게서 살아갈 희망을 얻었다. (동성애자들에게) 남들이 뭐라고 해도 신은 여러분을 사랑한다." 꽃들에게 희망을. 금기는 없다!
압권은, <밀크>로 두 번째 오스카상(첫 번째는 2003년 <미스틱 리버>)을 품은 대찬 남자, 내가 애정하는 배우 숀 펜.
"이런 빨갱이에 호모 좋아하는 인간들! 상 받을 줄 몰랐잖아! 최근 캘리포니아의 동성 결혼 금지 법안에 투표한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워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애교와 애정, 유머는 물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거침 없이 표현하는 저 당당함이란.
숀 펜은 앞서 처음 오스카를 거머쥐었을 때도, 이런 소감을.
"배우들이 아는 것이 있다면,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빼고, 바로 연기하는 데서 최고란 없다는 점이다." 겸손한 연기자의 자세와 함께 부시 행정부의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에 대해 비난을 가한 날카로운 펜! (함께 <미스틱 리버>에 출연한 팀 로빈슨도 이라크 침공 반대운동을 펴면서, "부시행정부의 전쟁은, 석유를 위한 전쟁(oil for work)"이라고 강한 반전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참, 멋있다, 는 생각.
견고한 자의식과 셀러브리티가 지닌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불가능할 수상소감. 셀러브리티로서 자신의 위치가 어떻게 주어졌는지, 사회와 어떻게 접점을 찾을 것인지 고민이 없다면 저런 말 안 나오지.
그렇다. 그저 딴 나라 얘기.
굳이 비교하려고 해서 한 건 아닌데, 지난 연말 각종 방송 시상식이나 영화 시상식을 보면, 참 시시껄렁하다. 누가 시상의 주인공이 될 것이냐만큼 수상소감이 주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건만, 상의 주인공만 정해지면 하나 같이 공산품스러운 액션과 수상소감만 난무한다.
그들의 눈물을 폄하하거나 감격을 폄하하는 건 아니나, 어찌 그리 판박이냐.
눈물 울먹울먹하면서 감사한다는 사람 이름만 줄줄줄.
(이름 말 안해주면 삐진다지?)
그 고마움 어찌 모르겠느냐마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올바른 국어사용도 잊은 채, '너무'라는 말을 너무 남발하면서 감사해대는 통에, 너무 짜증날 때가 있다. 저리 좋은 순간에, 고작 저런 말밖에는 할 말이 없을까, 하고.
아이돌을 위시한 셀러브리티가 넘치는 '자유' 대한에는, 표현의 자유가 없나?
소속사 사장님 눈치 보고, 권력자들 코치 보느라, 사회적 자의식을 꽁꽁 동여맨?
뭣보다 시청자 수준을 '너무' 깔보는 것 같아서 나는,
대한민국의 셀러브리티들에게 불만도 아쉬움도 만땅.
한국의 많은 셀러브리티들은,
잘 짜여진 '리얼버라이어티'의 솔직함에는 민감해도,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사회와 어떻게 관계맺음해야 하는지에는 둔감한 것 아닌가? 시상식이나 축제를 싸~하게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그 분위기와 어우러진 알싸한 레토릭을 구사할지 고민이 부족하단 얘기. 일반인 이상의 끼와 순발력, 재치를 지닌 이들이 왜 그리 군기가 들었냐. 쯧.
이런 숭악한 시대에도, 스타가 있어서, 셀러브리티가 있어서, 현실의 고단함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장삼이사이건만. 이왕 놀거면, 특히 상 타고 그러면 대통령이나 사장님 머리 위에서 노닐어도 되지 않겠나. 자고로 광대는 옛날부터 임금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았건만. <왕의 남자>에서도 봤잖여!
쫌스럽게 주변인에게 고맙다는 당연한 말 남발하면서 울먹이는 획일적인 그런 모습 말고, 수상소감도 생김새 답게 간지나게 할 수 없겠냐. 쩝. 제대로 놀아주오. 이거뜨라.
뭐, 나야 별 상 받을 일, 수상소감 할 일 없으니, 그런 고민 안 해도 된다. 캬캬.
사실 한국의 숀 펜, 한국의 조지 클루니 이런 건 좀 보고 듣고 싶다.
나야 뭐, 얼굴이 안 돼서... ㅠ.ㅠ
참, 본문과 별개지만,
언론들이 아카데미 시상식 등 미국 영화상은 크게 보도하면서 국내 영화상 기사는 왜 그만큼 주목하지 않는지 의아한 사람을 위해. ☞ 오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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