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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산보다 사막 닮은 사람살이, 나침반이 필요해~

책은, 독자가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에 따라서도 빛깔을 달리한다.
책의 가치가 한 독자에게 고정불변이 아닌 까닭이다.

죽도록 자기개발을 명분으로 한 삽질만 하다가 뒤지라고 권유(!)하는,
혹은 지 잘난 맛에 똥오줌 못가리고 무책임하게 싸질러 쓰레기 같은,
(물론 누군가에겐 고민 해답, 삶에 대한 지침이 될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
 자기개발서를 혐오하는 나로선 보기 드물게 만난 책이,  
2009년 봄, 일 덕분에 읽은,《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사실 이 책, 딱히 자기개발서로 규정짓지 않아도 되지 싶었다.
흥미롭고 매혹적인 여행기가 섞여서 어떤 여행인문학으로 볼 수도.

이말, 아마 나를 훅~ 끌어당겼을 말.  
“인생의 대부분은 산이 아니라 사막을 닮았다.”(p27)

그러니, 방황은 자연스러운 것. 효율성 절대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용납못해도.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방황에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는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산의 가치관을 변화의 사막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문화에서는 방황이 일종의 성년 의례로, 젊은이는 혼자서 사막을 헤매고 다미며 자기 자신의 고유한 성격과 장점을 깨닫는 과정을 거친다.”(p.51)

물어봤다. 자신에게. “나는 지금 산을 오르고 있는가? 아니면 사막을 건너고 있는가? 동시에 이 두 가지를 다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었다. “사막을 건널 때와 산을 탈 때는 걷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딱딱한 등산화를 신고 끝없이 모래가 쌓이는 뜨거운 사막을 건너면 발에 물집만 생길 뿐이다.”(p.29)

덕분에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일부를 교정할 수 있었다.
나의 사막이여, 나의 나침반이여. 인생이라는 사막을 여행하는데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아는 것이다. 제 아무리 나이 먹어도 이걸 모르는,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사막에 빠져 허우적 거릴 뿐,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    

물론 명심해야 할 것. 나침반이 항상 ‘옳은’ 길만 가리키는 것은 아님! 마음의 소리라고 언제나 맞는 것이 아니듯. “지구 자기장의 편차에 따라 수정을 해주어야 하는 나침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내부의 나침반이 항상 진실된 방향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p.52)

역시, 그해
봄에 만난 사막 종단자 '스티브 도나휴'의 말을 기록했다. 
내겐 아주 색달랐던, 자기개발서에 대한 편견을 일부 불식시켜줬던 만남.  


"현재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일단 채무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가될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고, 그 와중에 많은 여행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일단 목적지를 접어두고 나면, 매일 수입의 범위 내에서 적당히 지출하고, 버는 것 이상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사실 바로 그것이 나침반 바늘이 될 수 있다. 또는 눈높이를 낮추어 수준에 맞는 생활을 하면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돈이 아닌 다른 종류의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는 새롭고 더 심오한 나침반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나침반 바늘을 따르면 어떻게 될까? 비금전적인 풍요함을 맛보면, 가장 중요한 관계를 가꾸고 자기 주변을 둘러싼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며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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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같은 인생에선 꽃보다 나침반 아니, 지도보다 나침반!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스티븐 도나휴’ 방한기념 독자와의 만남

이렇게 가정해보자. 당신은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다. 아니, 굳이 나이는 상관없겠다. 그냥 지금, 당신의 나이다. 어느 겨울, 파리에 머물고 있는데 그 매서운 추위에 갑자기 질렸다. 따사로운 햇살이 막막 당긴다. 이 겨울만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서아프리카 해변에서 보내리라 다짐한다. 친구와 함께 떠난다. 돈이 없어 약간의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의 차를 빌려 탄다. 따뜻한 남쪽 해변으로 간다는 목표 외에는 없다. 계획? 일정? 그런 건 다른 나라 얘기다. 그리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하다보니, 지구에서 가장 큰, 면적은 미국과 맞먹는 사하라 사막을 관통하고 있다. 중간 정도나 왔을까.


진짜 얘기는 좋아, 이제부터. 그 사하라. 차량도 없다. 둘만 덩그러니 사막에 있다. 있는 건, 오직 짐과 잠을 청할 수 있는 캠프. 태양이 잦아들고 밤은 뱀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뭔가가 다가온다. 주의 깊게 볼 수밖에 없다. 아니, 이 사막 한가운데, 인적이라니. 옷과 움직임을 보니 유목민 같다. 어느 책에선가, 여기 유목민들은 10인치 가량의 단검을 들고 다닌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검이 사람의 배를 족히 뚫을 수 있다는 사실도.
 
그런 얘기가 떠오르는 마당에, 그 유목민이 오더니, 소금을 달란다. 있는 대로 다준다. 그랬더니, 간다. 안도하는 한편으로 또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친구에게도 얘기한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후,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헉. 다시 등장한 그 유목민. 이번에도 손을 내밀더니 후추를 원한다. 굉장히 공손하지만, 그 와중에 탐색하듯 우리를 훑는다. 그 시선에 온몸이 오그라든다. 아마 우리가 또 무엇을 갖고 있는지 살펴본 건 아녔을까. 세 번째로 온다면, 그때는 아마도…

다시 재깍재깍. 30분이 흐른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기분이 여전히 찝찝하다. 눈을 들었는데, 헉. 다시 그 사람이다. 캠프사이트 바깥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아무 말이 없다.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더니, 따라오란다. 뭐냐. 이 시추에이션. 겁난다. 따라갔더니 그 원주민들 모두 칼을 품고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첩첩산중이다. 당신, 어떻게 하겠는가. 따라갈 것이냐, 도망갈 것이냐,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확률이 있는지 검색을 해보겠는가. 아, 햄릿의 고민이 이랬을까.

북치는 강연자, 스티브 도나휴의 등장

스티브 도나휴는 스무 살 때, 실제로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다. 그는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했을까. 아니, 아직 위험이 닥친 건 아니니까, 어떤 발걸음을 옮겼을까. 어디선가 익숙한 상황이라고? 맞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스티브 도나휴 지음|고상숙 옮김/김영사 펴냄)을 읽은 사람이다. 

저자 도나휴가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지난 3일 서울 과학기술회관에서 YES24 독자들과 만났다. 다음 작품 준비를 위해 다큐 감독 피터 캠벨과 동행했고 그는 이날의 강연을 캠코더에 담았다. 

느닷없이, 예정에 없던 아프리카 드럼을 치면서 강연장의 시선을 모은 그는, “고맙습니다. 저는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한국말 좋아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우리들의 사막으로 들어왔다.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3가지. 첫째, 한국에서 책이 성공한데 대한 감사하고자. 둘째, 한국에서 책이 성공하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한국의 문화 등을 배우기 위해. 셋째, 사람들과 만나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상호 어떤 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리고선 다시 드럼을 치면서 박수를 유도한다. 앞서 언급한 사하라 사막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사막을 어떻게 건너는 것이 좋을지 얘기하고 싶단다. ‘아니, 한국에 무슨 사막이 있다고 그래? 미친 것 아냐?’라고 갸우뚱하진 마시라. 그가 말하는 사막을 건너는 건 이런 거다. “목표가 애매모호하거나 또는 최종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일종의 과정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로 사막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p.17)

더 구체적으로는 이런 것. “인생과 변화의 사막에는 항상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이 산들은 그때 그때 우리가 해내야 하는 과제나 프로젝트, 그리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꿈, 우리가 열망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최종 결과물들이다. 직장을 옮기는 것은 산이지만 직업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사막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산이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사막이다. 꿈에 그러던 집을 짓는 것은 사막이다. 암을 이겨내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만성 질환이나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p.29)

그러니까 인생은 앞서 언급한 상황과 같다 이거다. 정답도 없고, 도망가든 따라가든, 어떻게 해야 할지 당최 알 수 없는 상황. 인생에 미리 짜놓은 계획도 없고, 지도도 없을 때, 아니 짜놓고 지도가 있다손, 그대로 간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 자, 준비됐나요? 사막을 건널 준비! 자, 함께 발을 뗍시다.

나침반,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것


도나휴는 묻는다. “아까 그 상황에서 지도에 의존하면 알 수 있을까요? 지도가 있어도 도움이 안 돼요. (사막은) 지형 자체도 계속 움직이고요. 누군가가, “323 모래둔덕에서 돌아가세요”라고 알려준들 그걸 따라 갈 수 있을까요? 인생이 바로 이런 상황과 비슷해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죠. 지금만 봐도 경제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어요. 그러나 어느 누구도 경제위기라는 사막을 건널 수 있는 해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렇다. ‘인생은 사막’이라는 비유, 살다보니 충분히 동의할 만하지 않는가. 그리고 인생의 지도가 있다손, 그 지도대로 따라갈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장담하나. 얼마 전, 프랑스 배우이자 아마도 세상 모든 감독의 뮤즈인 줄리엣 비노쉬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뭐가 일어날지 모른다. 촬영에 들어가면 그 장면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그게 바로 인생 아닌가. 삶의 순간들이 바로 그러하다.”

도나휴는 그래서 지도 아닌, ‘나침반’을 권한다. 우리가 의지해야 하고, 각자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나침반. “중요한 것은 방향감각이다. 먼저 자신을 안내해 줄 내부의 나침반부터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분명하게 보일 때까지 목표나 도착지는 염두에 두지 않아야 할 것이다.”(p.44)

도나휴가 전하는 나침반을 따라가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첫째.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준다.
둘째. 나침반을 따르면 어떤 기회가 있을 때, 이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셋째. 나침반은 길만 따르는 게 아니라 방향을 크게 보면서 위험․기회를 다 볼 수 있다.

그리고 경제위기가 때론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자신의 경험으로 설명했다. “북미에서 나의 생업은 강의다. 2001~2002년 북미지역의 경기가 크게 후퇴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때 내 할 일도 팍 줄었다. 그냥 손놓고 놀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 내 안의 나침반을 따라 가보니, 그동안은 청중과 내 얘기를 공유했는데 책을 통해서도 공유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냈다. 여기 온 여러분들도 책을 읽게 된 셈이고. 아마 지도만 따라갔다면, 강의, 강의, 강의였을 것이다. 그러면 책도 쓰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침반은 만사형통일까. “나침반을 따라가면 목적지를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가다보면 지도상의 목적지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 사실 나침반을 따르는 건 굉장히 어렵다. 감도 잡기 어렵고.” 그는 책에서도 이렇게 설명한다. “지도보다 나침반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목표나 목적지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 또는 존재하는 방법을 담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인생의 사막을 건너서 따라가는 방향은 깊은 의미가 있고 명료해야 한다.”(p.40)

내 안의 나침반을 찾는 방법

내 안에 나침반이 있다는데, 어디서 찾을 것인가. 도나휴는 태어날 때부터 각자가 갖고 태어났단다. 존재 자체를 정의하는 나침반이 있단다. 그러면서 자신 안에 있는 나침반 하나를 끄집어낸다.


“내 안의 나침반 하나는 (남과) 달라야 한다는 나침반이다. 오늘 보여준 드럼이 바로 그런 것인데, 어느 누구도 강의를 하면서 드럼을 연주하지 않는다.(웃음) 나는 항상 독특하고 별다른 존재였다. 어머니한테 어릴 때를 물었더니 이런 사진을 보여줬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그의 어릴 적 포즈와 표정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4살 때인데, 나는 절대 평범한 사진을 못 찍는다. (운전면허증과 같은 공식적인 사진 등에서도 그는 별의별 표정을 지닌 사진으로 승부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따르고 있는 나침반이다. 물론 이것을 따라하라는 것은 아니다. (웃음) 모든 사람은 각자의 나침반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먼저 아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겠나. 내 마음의 움직임, 혹은 소리를 따르는 것. 나침반은 내가 나를 아는 일에서 제대로 작동을 시작하지 않을까. “사람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그것은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것이 나침반을 찾는 첫 번째 방법이다.”

두 번째는, 살면서 조그마한 것이라도 성공한 일이 있으면 심사숙고를 하고 파악해 보란다. 그 성공의 원인을 분석하면 자신의 특징․재능이나 성공요소를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재능을 타고 난다. 작은 성공이라도 그것을 생각하면 또 다른 성공으로 갈 수 있다.”

세 번째는, 길을 잃어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렵고 아무 것도 몰라서 지도가 도움이 안 될 때가 바로 나침반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란다. 가령, 아이를 낳고 나면, 지도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인데, 나침반을 보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낫단다. 자신의 경험으로는, 어릴 때는 아이들 옆에 있는 것이 나침반이라면, 크면 아이들과 최대한 접촉을 피하라는 쪽으로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 바뀐단다.

그리고선, 2년 전, 나침반을 찾았던 경험담을 얘기한다. 스무 살이 된 자신의 딸이 여행을 떠났다. 그의 생일 즈음, 호주를 여행 중인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일 축하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남자친구와 호주에서 결혼을 하겠다는 선전포고(!)가 날아 들어왔다. 두 사람이 사귄 기간은 고작(?) 5개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란다. 호주로 가서 딸을 당장 데려오는 것도 생각했지만, 당장 대책이 안 섰다. “딸의 남자친구인 댄은 좋은 녀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서핑하는 녀석이었다. (웃음) 그때 든 생각이 ‘나침반이 필요해’였다.”

결국 그는 찬찬히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좇은 결과, 그들이 결혼하는 그곳에 가기로 했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결혼식이 있었고, 한국에 오기 2주 전, 호주를 들렀는데, 손주를 안아보기까지 했다.

“결혼식을 가야겠다고 결정하고 갔더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 많이 벌어졌다. 결혼식 직후 온 가족이 식사를 하게 됐다. 그것은 11년 만이었다. 딸 애 결혼식을 통해 전 가족이 모이게 된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좋은 결과들과 맞이하게 된 거다.”

또 하나. 책에는 없는 내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사하라 사막을 함께 건넌 친구 탤리스는 배 안에서 만난 친구다. 당시 도나휴의 애초 계획(지도)은 유럽에 가서 1년 동안 배낭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배 안에서 탤리스와 친해졌고, 1주일을 지낸 어느 날, 잠에서 깼더니 배 안에 아무도 없었단다. 탤리스도 없고. 배는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상태. 원래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를 가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쩌다 프랑스에 머물게 됐다. 일주일을 파리에서 보내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중간에 약간 시간이 남아 한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는 지하철역에서 내릴까 말까 망설였단다. 나갔다 다시 오면 지하철 요금이 더 들어간다는 생각과 구경하고 가자는 생각 사이에서 망설이던 즈음, 해당 역에서 문이 열리는데, 갑자기 그냥 박차고 나갔다. 그때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그곳에서 그의 이름이 불렸다. 탤리스였다.

“지하철 문을 박차고 나가지 않았다면 사하라 사막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이 내 인생을 바꾼 것이다. 책에는 이 얘기를 넣지 않았지만, 아주 작은 사건 하나가 우리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그 순간이 얼마나 큰 위력이 있는지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준비되지 않은, 예고 없이 닥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마음가짐과도 통할 수도 있겠다. “캠프파이어 곁을 떠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신조는 ‘Semper Non Paratus(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기)’이다.… 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다는 것이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무책임하거나, 알면서도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책임감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줄 새 시대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익숙한 캠프파이어에서 벗어나서 인생이라고 하는 사막의 불확실성을 좀더 쉽게, 덜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고 대담하게 맞는 마음가짐이다.”(pp.162~163)

안정된 캠프에서 벗어나 세상과 만나기


아까 언급된 사막으로 돌아가자. 원주민의 따라오라는 수신호에 도나휴는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불 옆(캠프파이어)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탤리스가 따라가고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모래언덕에는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앞서 가던 유목민이 어느 한 곳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따라 갔더니, 그곳엔 8명의 유목민이 더 있었고 1명은 큰 칼까지 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끝이구나’ 생각했다. 두려워서 온 몸은 딱딱 굳어졌다. 어찌해야 할지 짱구를 굴리는데 단서는 후각을 통해 찾아왔단다. 요리 냄새가 아주 끝내줬단다. “큰 칼을 든 사람은 바비큐를 먹기 좋게 자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소금과 후추를 줘서 우리를 초대한 것이었다. 같이 먹자고. 결국 그렇게 따라가서 수많은 별들 밑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축제와 같은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는 당시 그의 결정에 흡족해하고 있었다. 원주민을 따라 캠프를 벗어난 것을.

“모든 사람들에겐 이런 캠프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캠프에서 떨어져 봐야 한다. 내 본거지는 북미다. 한국에 온 것은 캠프에서 떨어진 것이다. 오늘  밤 지나면 이곳도 캠프파이어의 한 곳으로 목록에 오르겠지만, 안락한 일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갈 때 예기치 못한 상황이 올 것이다. 당시 그 유목민들은 (축제를 함께 보낸 뒤) 길까지 안내해줬다. 그러면서 트럭을 얻어 타고 사하라를 건넜다.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곳의 운송수단이 상상과 다를 수 있지만 방향이 같다면 타고 가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해변에 도착했다. 나침반을 따르면 목적지를 모른다고 했지만, 멋진 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 “우리의 머리 위에서부터 저쪽 하늘 끝까지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습기나 공해, 또는 도심의 불빛에 오염되지 않은 별 하늘이 도시 생활의 안락함과 캠프파이어를 뒤로 할 용기가 있는 사람을 위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p.149)

묻고 답하기

Q. 여행하고 나서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전과 어떻게 달라졌나.
A. “사하라를 건널 때 나는 젊은이였고, 그때 의식적으로 깨닫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주는 여행길이 됐다고 생각한다. 사하라 사막을 건넌 뒤, 나는 진짜 성인이 된 것이다. 물론 또 다시 건널 필요는 없는 것이, 인생 자체가 사막이다. 그 인생의 사막을 건너면서 더 성숙해지는 것이고.”

Q. 차가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 바람을 빼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타이어 바람을 뺀 사례를 알려 달라.
A. “살면서 사막에 갇히면 빠져나가기 위해서, 사막에서 무데뽀로 차를 밀듯 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차를 미는 것은 멈춰야 한다. 방법을 찾지 못했음을 깨달을 때, 상황이 보이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아까 얘기했듯, 딸이 5개월 전에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가 그런 상황이었다. 처음에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내 자의식임을 깨달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정답을 알지 못하겠다. 정답이라고 알아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Q.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길 강요받는다. 젊은이들에게 사막을 건널 수 있도록 도움 줄 말이 있다면.
A. “책에 산에 오르고, 사막을 건넌다고 한 것은 은유다. 나도 산을 오르는 것처럼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릴수록 산에 오르도록 요구받는다. 그러나 나이들수록 인생이 산이 아닌 사막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도 목표가 있다. 여러분도 목표를 갖고 노력해라. 그러나 산 올라가듯 목표를 향하면, 인생 자체가 사막으로 보인다. 젊은이들은 목표를 두고 나아가되 남이 아닌 나를 목적으로 두고 나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살다보면 목표가 자신이 처한 문제의 해결도 아니고 행복하지도 않고 사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사막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Q. 한국에서는 많은 경우, 산에 오르도록 교육한다. 경험적으로 이럴 때, 어떻게 나침반을 찾을 수 있을까.
A. “한국에 오기 전, 한국을 알아봤더니 산이 많더라. 산에 오르도록 교육 받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웃음) 그동안 한국이 이만큼 성공한 이유에는 산에 오로도록,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교육을 받은 것도 있다. 그러나 상황이 변하면서 목표 외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목표를 마음속에 지우는 것도 좋다. 나침반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지금은 보수를 받고 일을 하는데, 보수를 받지 않고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생각해보라. 그것이 나침반을 찾는 방법이 될 수 있다.”

Q. 다른 책을 쓰고 싶다고도 했는데, 어떤 내용인가?
A. “현재 나는 나침반을 찾는 방법에 관심이 있다. 첫 책은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얘기했는데,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나침반에 대해 질문하더라. 그래서 두 번째는 나침반을 찾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 인생의 방향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인생의 나침반을 찾는 방법 등이다. 나침반은 선택이 아닌 타고 나는 것이고, 자신에 대해 파악한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새 책이 나오면 살 건가? (웃음)”


그리고, 후기

대체로 산을 올라가는 마음은 ‘정상’에 꽂혀 있다. 그리고 다그친다. 어떻게든 그곳을 정복하라고. 우리 사는 이곳은, 대체로 그렇다. ‘무한경쟁의 장’이며 ‘정글’이라고들 한다. 사람들은 윽박지르듯 강변한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목표로 둔 정상까지 쉼 없이 일하고 자신을 불태우라고. 그러나 그것은 이미 용도폐기돼야 할 전근대적인 산업화시대의 구린내 나는 유산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도나휴의 강연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사하라 사막에서 꼭 오아시스에 멈추어 쉬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첫째.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여정을 되돌아보고 정정해야 할 것은 정정한다.
셋째. 오아시스에서는 같은 여행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잘 아는 거라고? 어? 그렇게 잘 알면서도 왜 멈춰서 쉬어가질 않지? 도나휴는 이런 말을 건넨다. “문제는 우리가 산을 오르는 사람처럼 생각하며 산다는 데 있다. 우리는 정상을 다다르기 위해 안달하는 열병을 앓고 있다.”(p.65)

그리하여, 카르페디엠(carpe diem). “이렇게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사막을 여행하는 마음 자세이며 그 덕분에 우리의 여행이 더 풍요로워 진다.”(p.49)

덧붙여, “사막에서 휴식을 취하면 사막 자체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휴식을 취하는 오아시스건, 사색을 하는 오아시스건, 또는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오아시스건 모든 오아시스는 매순간에 충실하게 사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깊고, 즐거운 순간은 종종 이 오아시스에서 일어난다.… 오아시스는 온전히 현재에 사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 준다”(pp.90~91)


그리고 이른바 ‘디지털시대’라는 세례명(?)을 받은 지금-여기의 우리는 어떤가. 컴퓨터, 인터넷 덕분에 진짜 일이 줄었는지, 내게 더 여유가 생겼는지, 과거를 돌이켜보라. 과연 그럴까. 편리함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걸. 오아시스는 멀리 있지 않다. “하루종일 컴퓨터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디지털 사막이다. 이럴 때는 화단의 비옥한 토양에 손을 담그고 꽃의 화려함에 취해 보는 것이 바로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p.79) 우리, 이 봄을 그냥 넘겨선 안된다. 

도나휴는 이런 마음가짐을 권한다. “인생을 산이 아니라 사막으로 보게 되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뿐 아니라 중요한 관계까지도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p.66)

부디, 산보다는 사막을 닮은 우리네 사람살이. 사막을 건너는 당신의 건투를, 빈다!
더불어 나의 건투 또한, 빌어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