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미라이 공업은 깜짝쇼이고,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대관절 이렇게 해서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냐는 거지. 그리고 꼭 경영을 이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경영철학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에 따라, 여건과 상황에 맞춰 다양한 경영기법과 철학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혹자는 성과에 걸맞는 대접을 받을 수 없는데, 그게 무슨 천국이냐고 불만을 내놓을 수도 있겠다.
거듭 말하지만, 내가 주목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직원만족. 직원감동이다. 직원이 감동하면 그들은 춤을 춘다. 남들과의 경쟁이 아닌 자신을 위해 일하고 이는 회사에 자연 보탬이 된다. 무한 성장이 아니면 어떠랴. 달팽이의 성장이라도 좋다. 함께 즐기고 노닐 수 있는데.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거. 빵도 주고, 장미도 쥘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호모루덴스의 본성에 맞춰주는 것.
부자 회사. 가난한 회사원
회사가 잘 되면, 직원들도 잘 된다,는 감언이설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워킹 푸어(Working Poor · 일하는 빈곤층)'의 현실을 안다. 아무리 직원이 좆빠지게 일해도 뒤룩뒤룩 살 찌는 건, 회사(기업)의 몫이다. 내가 아는 '지금-여기'의 현실은 성실하게 일하는 노동자의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회사는 점점 공고해져 간다. ☞ 배부른 회사, 배고픈 일본노동자 ☞ 돌파구 안 보이는 '워킹 푸어'
나는 생각한다. 소가 제대로 일을 못해도 여물을 먹여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내년에 일을 할 수 있다. 하물며 소가 이럴진대. 인간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야마다 사장의 말을 되새겨보자. "인간은 말이 아니기 때문에 채찍이 필요없다. 믿고 맡기면 자기 할 일을 한다."
일은 노역이다. 어릴 때부터 지겹게 들어온 말 이거 있잖아. '일에서 자아실현하라' '일을 자기성취의 도구로 써라' 이 속삭임은 나는 사실 자본이 만들어낸 교묘한 레토릭이 아닐까 의심한다. 직원을, 노동자를 부려먹기 위한 소수의 논리말이다.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도 그런 것이지. 베짱이는 노래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일이다. 유희와 결합된. 개미는 그러나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실 개미들 뒤에는 여왕개미가 있고, 기득권이 있다. 일개미들이 생산한 과실은 여왕개미의 것이잖나. 지금은 그런 체제가 더 공고해지고 있다. 회사는 배가 불러도 표정관리한다. 일부 개미들에게 약간의 떡고물을 나눠주면서.
그래서 베짱이에겐 승산이 없다. 오스트리아 아동심리학자인 브루노 베텔하임은 옛이야기의 숨은 심리적 기능을 찬미하면서도 <개미와 베짱이>만큼은 유해성을 강력경고했다고 한다. 아동이 소화하기엔 폭력적일 뿐더러 어떤 숨은 구조나 패러독스가 없어 아이에게 공포심만 공포심만 심어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홍보대행사 인컴브로더의 예. 여유와 즐김, 느림과 자유 속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믿는 회사의 컬처. 직원들이 일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연구해서 결국 10% 이상 줄여 사장과 팀장들이 흐뭇해하는 회사. '나를 위한 채움, 우리를 위한 나눔'이라는 가치관을 가진 회사.
그들의 가치경영을 한번 보자. 성장보다는 회사 가치와 직원들의 존심을 살리는데 보람을 느끼게 만든 경우.
지난해에는 주요 고객 한 군데가 회사의 핵심 가치에 어긋나는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기자에게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어쨌든 매출의 15%를 차지하는 주요 고객이라 부담이 컸다. 그럼에도 이 회사는 회의를 통해 전 사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동의를 구했다. 결론은 그 고객의 ‘정리’였다. 손 대표는 “(눈앞의 매출 손실이 있지만) 직원들이 회사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데 보람을 느끼고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된다”며 ‘긴 안목’에서의 효과를 꼽았다. 15%의 손실은 다른 고객을 개발해 3개월 만에 회복했다. 몇 해 전에는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주요 고객을 ‘잘랐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일하는 시간을 줄일까. 인컴브로더 등 세 회사가 지난해 1월 강원도 춘천시에서 연 팀장 워크숍의 주요 주제였다. 논의 끝에 두 가지 방안을 마련했다. 먼저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업에만 제안을 내기로 했다. 홍보 대행사의 고객은 많은 곳에 제안을 할수록 늘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직원들의 일도 많아지게 된다.손용석 대표이사와 팀장들은 고객 수를 늘리는 대신 직원들의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데 더 큰 가치를 뒀다. 그 결과 인컴브로더 등 세 회사가 지난해 신규 고객 ‘개발’을 위해 낸 제안 수는 그러께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일을 줄이자 제안서에 담긴 내용이 더욱 알차져 성공 확률이 3배 이상 높아졌다. 모험 같은 결정이었지만 회사 매출은 오히려 더 나아졌다.
직원 만족도가 곧 회사의 효율로 연결된다는 이야기. 무엇이 우선 순위인지 알고 있다는 것.
또 여기는 어떤가. '성공의 덫'을 경계하면서 CEO는 우선순위를 '놀기'로 책정하고, 직원들은 휴가를 위해 일을 하는 회사. 컴퓨터 관련 제품을 개발·판매하는 작고 단단한 기업, 이메이션코리아.
“일에 치여 살면 창의력은 절대 안 나옵니다. 영화도 보고, 뮤지컬도 보고, 책방거리를 걸어도 보고, 게으른 휴가도 다녀오고…. 아이디어는 밖에서 나오는 겁니다.” 피디에이로 관리하는 그의 일정에서 우선순위는 ‘놀기’다. 중요한 것과 급한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을 먼저 하라는 원칙에 따른 재충전과 감각 벼리기다. 와이셔츠 주머니에는 포스트잇을 항상 넣고 다닌다. 떠오르는 생각을 언제든 메모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름지기 일은 즐겁게 해야 한다는 지론. 휴가나 여행, 영화관람 등을 상상하면 일이 즐거워지지 않는가. 대학졸업 직후 서너 달 동안의 백수시절. 연탄불을 못넣은 냉골에서 새우잠을 자고 앞집 연탄불 갈아주며 라면을 끓여먹었지만 몇년 뒤 미래상을 그리며 어려움을 견디던 마음가짐이 지금의 바탕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앞선 두 회사는 외국계 회사의 한국법인이었다. 그러나 외국계라 그러냐,는 편견은 갖지 말고. 경영자와 직원이 일터를 함께 행복한 공동체로 만들고 있는 이런 경우.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함께 행복을 고민한다. 주4일 근무제 도입, 직무 교육, 직원 복지제도 확충을 통해 병원을 행복한 공동체로 가꾸고 있다는 병원. 경기도 하남시의 샘치과.
윤규승 대표원장의 단순하지만 명쾌한 이야기.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평생 함께 지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살면 행복할 것 같아서요." ☞ 주4일제 하면 우리들처럼 화~안해져요
나는 놀고싶다. 왜? 호모루덴스니까
우선 순위는 놀이다. <주온>의 감독, 시미즈 다카시는 그랬다. "만드는 쪽에서 즐겁게 만들지 못하면 관객에게도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없다." 이를 영화가 아닌, 회사에 대입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무엇을 생산하고 서비스하는 회사건, 그 주체가 즐겁지 않으면 고객에게도 만족이나 재미를 줄 수 없지 않을까. 직원을 놀게 하라. 놀다보면 길이 보인다. 아니면 말고. 길 없으면 다르게도 한번 놀아보지. 일 예찬 따위는 사실 자본의 흉포한 이데올로기다. 놀기 위해 태어났는데 일하라고 닥달하다니. For fun.
일하라고, 성장하라고 그만 다그쳐라. 회사가 안되면 직원들도 죽는다고 협박(!)하는건 너무 후지다.그래서 비정규직이 필요하다고? 내 편견이지만, 비정규직의 눈물과 고혈로 만들어진 이랜드의 옷은 그래서 재미가 뚝 떨어졌다. 알고 있지? 지금-여기의 많은 기업들의 전략은 공포감을 심는 것이다. 실업의 공포. 그만큼 절박한 것이 있을까(사회안전망을 구축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만만찮다).
개인의 노력만을 절실히 강조하는 것도 그네들의 후짐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영 이바구는 그래서 감동이 없다. 비용절감이 고작 사람 자르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천박한 믿음. 미라이 공업의, 야마다 사장의 검약에서 차라리 배워라. 잔잔하고 작은 울림이 세상의 진짜 의미를 만든다고 나는 믿는다. 영화평론가 김봉석도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진짜 의미는 거대한 질서가 아니라, 그 작고 사소한 것들의 작은 울림(진동)인 것이다." 직원들의 욕망을 경청하고, 그것을 때론 받아주는 회사가 나는 부럽다. 모든 것이 아니래도 좋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제대로 한번 놀아보라고 만들어주는 건 어떨까. 개인의 욕망을 누르라고 강요하지만 말고, 작은 욕망들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이는 것, 한번 해볼만 하지 않니. 회사들아 너네들 참 거대하고 훌륭한 기획을 갖고 있는 건 알지만, 대개는 너무 재미도 없고 직원들이 행복해하질 않아.
나는 직원이고, 행복하고 싶다. 오늘 한 선배가 그러더군. CEO가 지닌 병 중의 하나가, 직원이 놀고 있는 걸 보지 못한다고. 뭐든 시켜야 직성이 풀린다고. 뭐 서로 힘들잖아. 감시하고 옭아매고. 과문한 탓인지, "'절대소수의 최소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절대다수의 최대행복'은 없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일하는, 도구적 인간으로서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인간의 타고난 성정에 맞지 않아. 나만 성정이 그런걸까.^^;;; 우리는 너무 많은 놀이의 즐거움을 뺏기고 사는 것 같다.
<<아메리카 자전거여행>>의 저자 홍은택의 말로 이번 잡설은 쫑.
"...나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이고 싶다. 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놀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 놀면서 이 세상에 있다는 거,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놀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노는 데는 어떤 의무나 조건도 붙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자유는 신의 특징이다. 신은 누구의 창조물도 아니고 다른 누구를 위해 일하지 않으며, 세계는 제우스의 장난이라는 니체의 말대로, 세상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에 창조한 것도 아니다. 신은 스스로 연유하며 스스로 완결된다. 노동이 신성한 게 아니라 놀이가 더 신의 속성을 닮았다. 놀이는 일상적이고 지루하고 관습적이고 당위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즉흥적이고 자발적이며 사소하며 창의적인 세계로 가는 몸짓이다.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백수들이 추구하는 세계다. 노는 게 당위론적으로도 좋은 게, 놀면서 뜻하지 않게 자신을 알아가고 얻어가며 넓혀 나가게 된다. 호모 파베르였던 나는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뒤 호모 루덴스로서의 나를, 그리고 장거리 여행의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내 몸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