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가급적 걸었어.
햇살도 좋았고, 바람이 약간 세게 불긴 해도, 봄과 뽀뽀하기 좋은 날씨더라.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 까닭도 있었지.
무엇보다 오늘, '지구의 날'이었기 때문이야.
평소 지구를 완전 사랑해서 생활에서 완벽하게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을 실천한다,
고 하면 완전 쉐빠알간 거짓말이고,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지구에 대한 아주 최소한의 예의.
지구가 아프다는 것, 상태가 썩 좋은 것만은 아니란 것, 짐작할 뿐이야.
얼마나 아프고 증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나는 정확하게는 몰라.
내 생각엔, 지구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기보다는 한순간 펑~하고 소멸해버릴 것 같아.
1970년 미국에서 태동한 '지구의 날'의 계기는,
전년도 캘리포니아주에서 일어난 기름유출사고였대.
데니스 헤이즈라는 청년이 나서서 준비한 첫 행사에선,
무려 2000만명이라는 인파가 참여했고.
당시 뉴욕에선 이날 자동차 통행도 금지시켰을 정도래.
우리나라는 1990년부터 환경단체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된다지.
그렇다손, 늘 개발주의자 혹은 성장지상주의자에 의한 국가체제에서,
'지구'가 언제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나.
그 흉칙한 토건성은,
용량 딸리는 MB에 의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형국이고.
단적으로,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고 난 이후 우리는 제대로 성찰했을까.
기득권 위정자들의 성찰은 더 요원하고.
명함엔 그래서 이렇게 팠다.
"좀 더 불편하면 지구가, 우리가, 내가 살아난다."
많이 듣던 얘기라고? 맞아.
어디선가 본 구절인데, 약간 살을 붙였어. 원래는 "좀 더 불편하면 지구가 살아난다"였거든.
알지? 나 초식성인거.
그래서, 크고 거대한 바람따윈 없어.
고저, 너와 내가, 우리가 안전하고 별일 없이,
이 지구 한구석에서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너와 함께 푸른 하늘 아래서,
따사로운 햇살과 봄바람을 맞으며,
마음 담은 커피 한잔 마시고 싶을 뿐이라규.
그리고, 내 손엔 고 김소진의 책.
소외되고 외면받는 존재에 대한 한없는 연민을 품고,
도시 서민의 곤궁과 핍진을 강요하고, 낙오와 패배를 일상화시킨 체제를 고발했던,
눈 밝은 사람의 흔적.
그의 육체가 지구에서 박동을 멈춘 지, 벌써 12년.
선배라고 부르고 싶었으나 결국 부르지 못하고 말았던 그 이름.
지구의 날에는 김소진을 함께 불러보는 것, 어떻겠어?^^
그리하여,
4월22일, 오늘의 커피는,
착한(공정무역) 유기농 커피인 멕시코 치아파스 커피.
마야의 후손이자 멕시코에서 가장 가난한 주의 하나인 치아파스 주에서 생산된.
너와 내가 연결돼 있고,
치아파스 농민과 우리가 잇닿아 있음을 알려주는,
빈곤과 소외가 어느 한 개인의 무능이나 책임 때문이 아닌,
지구 위에 함께 발 딛고 서있는 우리 모두의 것임을 알게 해주는.
지구의 날, 김소진, 착한 커피 그리고 당신과 나.
그 어느해, 4월22일,
너와 내가 함께 있는 이날의 풍경.
지구는 그런 우리를 기억해 주겠지?
우리는 그때 이 지구에 발 딛고 있었음을 기억할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