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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라, 직딩아~

꿈을 주는 회사와 동행하고 싶어라...

알고 지내는 한 선배가 한겨레에 기고한 글과 마주쳤다.
☞ 꿈을 주는 은행

단어들의 얼토당토 않은 조합이다. 꿈과 은행이라니. 돈독이 든 '지금-여기'의 은행들은 서민들에게 꿈은커녕 좌절을 주는데 더 익숙하지 않던가. 이른바 '없는' 자들에게 은행의 높은 문턱과 대출이자 독촉은 그렇지 않아도 강퍅한 생을 더욱 찌들게 만든다. 그나마 없는 돈을 맡겨놓은 엄연한 고객이건만, 내 돈 1만원을 찾을 때도 최고 10% 이상의 수수료를 빼가는 도적질(!)은 어떻고. 은행간 경쟁이 심하다지만, 다 그놈이 그놈 같은 건 어찌할꼬. 사실 지금-여기의 은행들은 자산가 VIP 모시기에만 공을 들일 뿐, 금융소외는 관심 밖이다.

그런 상황에서 꿈과 은행, 이토록 이질적인 두 단어의 공존이 가능한가, 라는 의구심은 가질만하지. 그나마 하나은행에서 희망제작소와 함께 '무담보 소액대출 신용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사업을 9월경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긴 했고... 일부 지역은행에서 사회 책임금융을 실천하고 있다지만... 아마,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고 한국을 방문했던 무하마드 유누스의 영향이 가장 크겠지.

쨌든, 선배는 말한다. 꿈을 주는 은행에 대해.
이용자의 80%가 소액예금 가입자, 주주의 80%가 소액주주, 종업원의 95%가 주주인 은행.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 단 한 푼의 수수료도 떼지 않는 현금자동지급기(ATM)를 설치하고, 전체 여·수신사업 중 서민금융의 비중을 15%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하는 은행. 본점을 포함한 모든 점포에서 재생전기를 쓰며, 사이버머니로 지급하는 보너스로 종업원들이 자녀와 보낼 시간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한편, 이용자들에게는 경영자료를 가감없이 공개하는 은행.

이런 얘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곤층 자활을 돕고자 무담보 무보증으로 돈을 꿔주는 ‘소액 신용대출 운동’(마이크로 크레디트)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놀라지 말자. 이 은행은 자산 규모나 영업성과 측면에서 지구촌 전체 은행 중 14위에 올라 있고, 영국에서 네번째로 큰 은행이며, 미국의 경제월간지 <포천>이 고른 500대 글로벌 기업 순위 58위에 오른 은행이다. 주인공은 영국의 시중은행인 에이치비오에스(HBOS)다.

선배는 다시 말한다. 이땅의 은행들이 '돈만 버는' 경영이 아닌 '공동체를 이롭게 하는 경영'을 하겠다고 마음먹기를. 그래서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기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관심이 많아서 매체(www.csrtimes.com)까지 창간해서 운영하고 있는 선배다운 글이다. 덧붙여 선배가 자신의 매체에 쓴 HBOS(www.hbosplc.com) 이야기. ☞ 지속가능한 은행의 꽃 HBOS

이 기사를 보면, 역시 '좋은' 회사는 '직원 만족'을 빼놓지 않는다. 연금과 자녀 양육지원 등을 포함한 포괄적 보상체계를 강조하고 급여 이외의 보너스 사이버 화폐를 지급해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인다. 은행과는 무관할 듯한 환경분야에도 꽤나 신경을 쓰는 이 은행의 앤디 혼비(Andy Hornby)대표는 "환경을 생각하는 일터는 더 나은 복리후생 등 궁극적으로 종업원에게 보탬이 돌아가고, 기업의 소유권은 더 나눠질 것"이라고 말한다. 직원만족이 우선임을 알고 분배(나눔)에도 인색하지 않은 회사. 부럽군. 쩝. 꿈을 주는 회사에서 놀고 싶다. ^.^;;

어쩌면 이런 은행을 기대하는 건, 한국에서는 '한여름밤의 꿈'일지도 모르겠다. 타박만 받고 말 일이지.

그리고 아래는 지난해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10월 한국방문을 앞두고 긁적였던 글. 나는 여전히 그 출발점에서 머뭇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꿈을 주는 회사, 우리 자신의 문제인 '빈곤'을 생각하는 회사. 그래도 그런 이야기에 목마른 사람들, 물론 있겠지?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도 있다 (2006.10.14)

혼자 생각해 보는 우연이지만, 그 우연이 기쁨을 동반했다.

좋았고, 므훗했으며, 이런 소식들이 나에겐 에너지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더라. '노벨 평화상'을 이른바 자본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인 '은행(가)'가 받았다. 정치인, 수녀, 평화운동가 등과 같은 (직업군의) 사람들만 받는 줄 알고 있었는데 한방 먹었다. 노벨위원회 한테 말이다. 놀라운 일 아닌가. 당신이나 나나 (대체로) 알고 있던 '은행(가)'이란 놈은 이 패권자본주의의 홍위병이자 전초병 아니었던가 말이다.
☞ 노벨상에 유누스 교수·그라민 은행

그런데, 이건 너무도 므흣한 이벤트다. 노벨위원회의 기분 좋은 한방이다. 랄랄라~  ♪♬♩

그러나 이것은 느므도 느므도 당연한 결과다. 노벨위원회가 밝힌 수상 이유를 보면 고개를 까딱까딱 할 것이다. “유누스는 지난 30년 동안 그가 설립한 빈민구제 은행을 ‘빈곤과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로 만들어 왔다. 유누스와 그라민은행이 빈민들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에 힘써 온 공로를 인정해 공동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자본이 팽창하고 증식하는 세상엔-지금의 바로 이 세상- 실질적인 '평화'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본은 평화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무한) 경쟁하고, (다른 누군가를) 짓밟고, 자신들의 것(상품, 이미지, 이데올로기)을 팔기 위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기만, 아니 그것이 아니면, 생기게 만든다. 그들이 생각하는 가난은 (개인에게만 부과된) 죄악이다. 지지리 못나서 혹은 덜 떨어지고 능력이 없어서.

그런 ‘평화’ 없는 세상에 무릇 ‘희망’이란 존재도 사실 현실의 맥락을 따져보면 참으로 가혹하다. 즉, “자본주의 탐욕에 대한 추인과 자본축적 가능성에 대한 최대한의 기대치와 동의어”(최보은)다. 인생의 축소판인 도박판에서도 그 ‘희망’이란 작자는 마약이나 진배 없다지 않던가.

그런데 아수라 발발타~ 아수라 발발타~

유누스 아저씨는 묻는다.

“인간이 달에까지 가는 세상에 어째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빙고~ 이것이야말로 혼이 담긴 구라!

그리고 나선 행동. 은행 설득이 안되자 자신이 직접 나섰다. “어째서 사람들은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시장 질서에 편입되도록 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는 교수직도 버렸다. 1976년 240달러를 융자받아 빈민들에게 무담보로 대출해주기 시작했고, 그라민(농촌)프로젝트는 시동을 걸었다. 5년 뒤 그라민은행 설립안을 정부에 제출했고 2년 뒤 1983년 그라민은행이 탄생했단다. ☞ 유누스 박사, 신용으로 빈민들의 삶을 변화시켜

더욱 놀라운 것은 상환율이다. 100%에 가까운. 이만하면 대한민국 아니, 그 잘난 글로벌 은행 어디보다 나을껄? ☞ 소액대출 시행 그라민은행, 무담보 대출도 상환율 9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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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자. 내가 첫머리에 ‘우연’이라고 한 것은 그의 자서전을 -비록 듬성듬성이지만- 읽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책 이름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 지음 / 세상사람들의책 펴냄)  세상이 좀 덜 슬픈 곳이길 바란다면, 당신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2002년에 한국판으로 출간된 이 책은 내 기억으론 2003년에 샀다. 그때 날 끈 문구가 바로 “인간이 달에까지 가는 세상에 어째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였다. 그리고 읽다가 일에 쫓긴단 이유로 덮어두고 있었다. 세월은 흘렀고, 올해초 다시 눈이 갔고 얼마전 다시 손과 눈을 대고 있었다. 그것도 유누스로 인해 세상을 바꾸고자 삶을 바꾼 프랑스 청년들의 이야기와 책을 손에 넣고서다. 80명의 유누스를 소개하기 위해 길을 나서 그들을 이야기한 책.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 : 지속가능한 발전의 진정한 선구자들 』

그런 시기,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으니 나는 내 일처럼 기뻤다. 그리고 다시 난 꿈을 꿀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한다. 이젠 책을 마저 읽어야겠다. 미뤄온, 질질 끌어온 나의 게으름과 무심함이 쪽팔리지만, 뭐 어때. 지금이라도 다시 읽어나가면 되지 않겠는가. 구호가 아닌 실천. 그래서 언젠가 지금 ‘대안’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더 이상 그런 타이틀을 달지 않을 수 있는 그날을. 유누스도 그라민도 대안이어선 안된다. 그것이 우리의 실제이자 일상이어야 한다.

유누스 아저씨가 다음주 18일에 한국에 온단다. 지난달 제8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때문이란다. 만나고 싶다. 함께 가실 분 모집! 19일 12시 유누스 아저씨와의 소박한 점심식사 시간. ☞ 신나는 조합

글고 은행가들이여. 고민하고 감사할 지어다. ' 진짜' 은행이 무엇이고, '진짜' 은행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것들을 알려준 노벨위원회와 유누스 총재에게도 감사해야 할 일. 은행도 그런 유익한 일을 행할 수 있음을. 사실 바뀔 것을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만..ㅋㅋ 물론 모든 은행(가)들이 그라민은행이나 유누스 아저씨 같을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은행(가)이 있었으면 좋겠단 바람이다.

다시 한번 그의 말을 떠올린다. “가난은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오드리 헵번도 이야기했다.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For a slim figure, share your food with the hungry).” 다이어트도 좋다. 그러나 한번쯤 이런 생각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무하마드 유누스 아저씨는 역시나 내게도 하나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 곳은 유누스 아저씨에게서 시작된 ‘약속의 장소’. 당신과 내가 다다를 곳. 꿈이 아닌 현실일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