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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커피노동자, 지구를 굴리다!

노동. 
언제부터인가, 내 눈에 밟히는 것은, 내 마음에 찡하게 와 닿는 것은,
노동(의 맨얼굴)이었다.

내가 늘 노동자였기 때문이었을까.


한국의 서울 시내 한 복판이었다.
 지금은 저 하늘색 옷을 벗었지만, 나는 저 노동 앞에 뭉클했다.
하늘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듯한 모습.
어떤 담대한 안간힘 같은 걸 느꼈고,
노동의 신성함을 다시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한국에서뿐만이 아니었다.
 


중국 내몽골의 어느 거리 시장통이었다.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장통을 사뿐 즈려밟던 나는,
한 청년의 노동 앞에서 갑자기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저 청년이 힘을 줘서 힘껏 돌리고 있는 것은,
바로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지구가 아닐까.


일본이라고 다를 바 있을까.
무언가를 배달하느라 자전거를 끄는 아저씨나,
오픈하는 가게문을 촘촘하게 닦아대는 직원에게서,
 
나는 시큼하고 뭉클한 감정을 느껴야했다.
몸으로 밀어붙이는 노동의 현장이 주는 어떤 진정성.

물론, 나는 그렇게도 생각한다.
노동의 가치와 그 결과물로 나온 상품(용역)의 가치는 별개의 것이다.

노동이 어떻게 세계와 관계를 맺고,
어떤 세계를 위해 노동해야하는지 고민할 필요도 있겠지만,
그 전에 우리는 살아야 하고, 버티고 견뎌야 한다.
 
뭣보다, 내 사는 지구는,
노동하는 무수한 점들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지금 이 시기의 개개인이 행하는 노동에 의해 돌아간다.

오늘, 책 축전 행사장에서 커피를 뽑아줬던 나의 노동도,
지구를 돌아가게 만든 작은 몸짓이었으리라. 

광화문이었다. 서울광장.
전태일 40주기 추모행사 '2010 전태일의 꿈'.


 우리는 아직도 화염 속에 있는 전태일을 본다.
고 조영래 변호사는 30여년 전에도 물었었다.

"오늘 전태일은 어디서 불타고 있는가?
전태일은 이 시각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기억속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전태일을 우리는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점점 더 노골적으로 막장으로 치닫는 노동현실 때문이다.

그래, 당신이나 나나, 전태일이다. 
나는 당신을 응원하고 당신의 노동을 지지한다.
당신의 노동 앞에 늘 감동할 수밖에 없는 나의 소심한 연대적 행위.

어쩌면 지금 이 시대도 어떤 거대한 서사를 만들고 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평범한 노동자들에 의해서 말이다.

노동하는 우리는 그저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가진,
평범한 일상속에서 때론 이기적이고 때론 이타적이기도 하면서,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by.김훈)' 사람이다.
대한민국 사회, 삶의 조건이자 현실을 조망하는 서사를 만드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