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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미디어

그대들은, 정녕 '빈곤'에 관심 없는갸~

오늘(10월 17일)은 '세계빈곤퇴치의 날'.
1993년 UN총회에서 정한 날로서 지구촌 곳곳에서 이날 '빈곤에 반대하는 지구적 호소(Global Call to Action against Poverty, GCAP)' 캠페인이 진행된다. 몇몇 사회단체 등은 이날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이라는 행사도 갖고, 빈곤에 대한 관심 촉구를 위한 콘서트도 열린다. '화이트밴드 콘서트'. 왜 화이트밴드냐고? 특정한 날을 정해 뜻을 함께 하는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흰 띠(White band)'를 착용해 빈곤 퇴치를 위한 실제적인 행동을 촉구한다는 의미다.

다수빈국과 소수부국의 불균형.
알다시피, 빈곤은 심화되고만 있다. 빈곤은 어디에도 널려있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소수의 부자는 다수의 빈자를 착취하고, 이를 국가로 바꿔도 다르지 않다. 빈곤은 어디에도 널려있다. 그러나 관심은 그닥 없다. 그저 일상적인 현상으로만 치부해서일까. '함께 사는 길'은 별 것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예민해지면 된다. 일독하시라.
☞ 남의 고통에 무덤덤한 사회

빈곤은 바로 우리의 문제 아닌가?
하긴 어려운 문제다. 이 팍팍하고 비열한 세계에서,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그래도 하루만이라도 관심 가지면 좋지 않나. 나와 관련없다고 치부하지만, 언제 내 자신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아닌가. 어느 누가 친구, 연인, 친척이 될지 어떻게 아나.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 세계의,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이웃의 문제 아닌가? 하긴 귀찮다고 해도 그렇게 타박할 문제만은 아니다. 소수를 제외한 평범한 개인의 일상과 삶은 이미 어찌할 도리없이 숭악한 자본의 질서에 편입돼 죽지 않을정도로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정신의 빈곤.

묻는다.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가? 최근 읽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 갈라파고스 펴냄)가 제기한 문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조사에 따르면, 2005년 현재 8억5000만명이 굶주림에 스러진다. 미국의 생산가능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전세계적 식량과잉의 시대에도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이들을 접해야 한다는 사실. 참으로 불합리하고 흉포한 세계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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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냐",
고 묻던 (송)강호 행님의 말은 그저 허튼 농담이 아닌 셈이다. 이 책의 해제를 맡은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이런 말을 던진다. "기아에 대한 그의 고민(장 지글러)은 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과 자기가 속해 있는 작은 우주에 대한 질문 자체이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의 급격한 향상으로 물질적인 결핍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지만, 굶주림으로 죽음에 이르는 생명들은 아직 여전하다. 아니 굶주림은 더 심화되고 있지. 이 책은 말한다.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충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빈곤은 세습되고 배고픔의 저주는 대물림된다는 사실. 끔찍하지 않은가.

그러나 미디어들의 관심은 역시나 썰렁하다.
'지금-여기'의 대다수 미디어들은 빈곤 문제에 그닥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 끔찍한 문제에 눈을 감고 있는 것 같다. 빈곤은 너무도 익숙한 의제라서? 나서봐야 별 볼 일없다는 판단 때문에? 돈이 안돼서? 이유야 다양하겠지.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알만한 이유. 세상을 담는 그릇이자 공기임을 자임하지만, 많은 매체들은 오늘도 연예인 부부의 이혼소식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검색해도 관련 기사가 나온 곳은 몇개 없네. 알기나 하는걸까.
☞ "죽지 않을 정도의 원조로 빈곤 해결되나"
☞ "세상을 바꾸는 '천원'을 아십니까?"

너무해, 야만적인 미디어들.
빈곤 앞에 '악' 소리 제대로 내지 못한채 스러지는 빈자들의 아우성에 미디어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오늘 하루라도 미디어들이 부자 되는 법 설파를 멈추고, 빈곤한 자들의 아우성과 빈곤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 주면 안될까. 물론 그것이 '쑈'에 불과할 지라도 억지로 이런 날은 알고 가자고 속삭여주면 안될까. 그렇게라도 이 얼척없는 세계를 고민해주면 안될까. 미디어들의 야만성. 하긴, 바보 같은 바람이지.

물론 그것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아.
나도 충분히 알아. 그러나, 학교도, 미디어도 이를 충분히 알려주지 않는건 아닐까. 빈곤이나 기아의 원인과 결과는 세부적이고 정확한 분석을 필요로 하는데, 왜 그들은 침묵하지? 자기네들 배가 불러서? 미디어나 학교가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괴리된 인간애나 정서만 가질 뿐, 그 구조적인 원인과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아닐까. 그러니 이런 날 단 하루라도 얘기해 달라고. 당신들의 잘난 지식과 지혜로. 무엇이 빈곤을 심화시키고 세습시키는지, 대안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단 한사람이라도 그것을 제대로 고민하게끔 만들면 좋지 않겠나. 빈곤이 당장 없어지진 않겠지만, 한사람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좌파 낭만의 스토리텔러' '결핍된 계급의식의 저격수', 우리의 켄 로치 감독님의 일갈을 되새김질!
"희망은 없다. 정치가와 경제인은 대개 남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고용주는 고용인의 일자리를 뺏고, 헐값으로 대체 노동력을 산다. 이런 구조 안에서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유일한 희망은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소수의 탐욕에 봉사하는 경제가 아니라, 다수의 생계를 안정시키는 그런 구조 말이다."
나는 여전히, 이 말을 믿는다. 아니 신봉한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다.

이럴 때, '헬스보이'!
코너는 끝났지만, 나와서 함 소리쳐 주지 않겠어?

"미디어들은, 정녕 '빈곤'에 관심없는갸~"
"그렇다면 세상을 담는 그릇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갸~"
"언제까지 빈곤 문제를 방치하고만 있을 것인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