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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미디어

패리스 힐튼, 이효리를 위한 뒤늦은 변명

다소 늦어졌지만, 한국이 약간 떠들썩했다.
동갑내기 셀레브리티이자 패셔니스타, 패리스 힐튼과 비욘세 놀스가 한국을 방문한 탓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나 한국에서의 Talk, Play에 그닥 관심은 없지만, 미디어들은 역시나 집중포화를 부어대더군. 뭐 덕분에 심심찮게 그들의 패션이나 행보를 살짜기 엿봤다.

비욘세는 일단 차치하고, (그는 나의 열입곱번째 뮤즈 정도 되시겠다.ㅎㅎ)
패리스 힐튼. 나는 그를 아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영화(<하우스오브왁스>)에 나온 그를 보고, 앞으로 연기는 엔간하면 안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도. 갠적으로 호감가는 연예인은 아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주변에 패리스 힐튼하면 짜증내는 사람들도 꽤 많고, '머리가 비었다' 등으로 괜한 우월감을 확보하려는 사람들도 봤다.

그는 호감과 비호감이 극명하게 갈리는 연옌이 아닌가 싶다.
연출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사고뭉치' '무개념' '무뇌' '철부지' '백치미' '된장녀' 등 부정적인 뉘앙스의 레떼르가 그를 규정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아마, 멍청하다. 그것이 그의 명백한 상품가치다. 현실과 유리된, 쇼윈도의 공주님 같은 인상도.(그는 어쨌든 '힐튼호텔' 체인의 상속녀 아닌가!) 그런 한편으로 천부적이 아닐까 싶게, 미디어플레이에 능수능란하다. 미디어를, 사람들을 꼬이게 하는 재주, 그 하나는 끝내준다. 물론 제대로 전략을 짜서 하는 것 같진 않다. 섹스동영상이 발각되자, 이를 DVD로 제작 판매하던가, 음주운전에 따른 감방생활 경험을 팔아먹거나, 르완다로 가서 봉사활동 하겠다고 선언하다니. 그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알고,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것 같다. 아니면 주변에서 누군가 도와주거나. 미디어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거나. 오죽하면, 미국의 한 일간지가 말했듯, "패리스 힐튼에게 최악의 보도란 그녀를 보도하지 않는 것"이라지 않은가. AP가 일주일간 패리스 힐튼에 대해 보도하지 않겠다는 '실험'도 하고, 한 여성 뉴스진행자는 패리스 힐튼 보도를 않겠다고, 방송에서 선언함으로써 엄청난 화제를 모으지 않았던가. 역시나, 놀라운 패리스 힐튼.

어쨌거나, 나는 그를 평가하거나 재단할 생각은 없다.
세간의 평들이야 어쨌든, 나는 가끔, 패셔니스타로서 패리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가끔, 멋지단 생각도 한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패션을 통해 전달하는데 탁월한 면이 있다. 멍청하다는 그 이미지까지도! 무엇보다, 나는 패리스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데 동의한다. <어글리 베티>의 아메리카 페레라가 "대단하다"고 멘트했던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게 어떤 대단한 진실이나 생의 숨겨진 비밀을 캘 필요는 없다.
그건 그걸 잘하는 사람들이 해 주면 된다. 패리스의 역할은 분명 다른 것이고.
그는 아마, 계속 사고(!)를 치고 다닐 것이다. 사치하고, 파티 즐기고, 수시로 연애파트너를 바꾸고, 음주운전도 다시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식적인 고개 숙이기나 악어의 눈물을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이 그답다. 미디어들도 패리스에게 '공인'이라는 말도 안되는 잣대를 들이대며, 어떤 책임을 요구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면에서, 한국의 연옌들이 안스럽기도 하다.
이혼한다고 기자회견까지 해 대면서, 할 말, 안할 말 모조리 까발리고. 별로 그네들 사생활 알고 싶지도 않은데, 굳이 큰 소리로 말씀까지 하시고. 진상 미디어들은 그걸로 장사해 먹겠다고 혈안이고. 물론 연옌들 사생활은 어느 정도 까발려질 수밖에 없지만,
아쌀하게 패리스처럼 하던가, 아니면 조디 포스터처럼 입에 자물쇠를 채워놓던가. 미디어들도 좀더 솔직해지고.

그러다, 이런 기사도 마주쳤다.
이효리, 6일 약속대로 국민연금 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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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날짜, 한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볼드체로 아주 강조를 해 주셨더구만. 이전에 어떤 맥락이 있었는지 몰랐다. 국민연금을 아마 안 냈던거 같은데, 약속까지 하셨나보다 했다. 관련기사 제목을 대충 보아하니, 이 기사가 시발점이 된 듯 했다. '단독확인'하셨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취재력인가. -.-
[단독확인] 이효리, 국민연금 장기체납…"1년 이상 미납부" 물의

보다가, 폭소를 터뜨렸다. 얼척 없었다.
"...스타들의 도덕 불감증이 위험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다. 1년에 수십억원을버는 그들에게 매월 32만 4,000원(최대 납부액)은 큰 금액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깜빡했을 수도 있다. 적어도 자신의 이름앞에 붙은 공인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으려면 설령 그 법이 악법이라 해도 사회적책임을 갖고 먼저 이행해야 한다. 그것이 공인이라는 자의 의무다..."

물론 이효리쪽이 기본적으로 잘못한 거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32만4000원을 일부러 안 냈겠나. 그걸 악법이라 생각해서 버텼겠나. 과연 이효리가 국민들을 위해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공인이었나. 이걸 도덕불감증과 접목하는 저, 놀라운 센스! 후지다. 정말. 완전 후진 엄숙주의. 기사를 조용히 1단으로 처리하던가, 이효리 쪽에 살짝 언급만 해줘도 될 문제를 저렇게 후지게 다루다니. 지들이야말로 사회의 공기로서 제대로 의무나 역할을 하는지, 먼저 자문해봐야는 거 아닌가.

아이비는 또 어떤가.
연애한 게 무슨 죄라고. 그렇게 꽁꽁 숨어야되나. 죄라면, 그딴 남자를 연애상대로 택했다는 것 정도지. 동영상이 있니, 없니, 그게 뭐니. 둘 사이의 연애사를 시시콜콜 캐고, 동영상 찾아 헤매는 이 후진 미디어들. 하이에나 습성이지. 남들 먹다버린, 썩은 음식만 찾아 댕기는. 쯥.

21세기에도 여전히 후진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땅에 자유연애는, 1920년대에 기지개를 폈다. 당시 신여성이었던 나혜석은 "내 몸이 제일 소중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자유연애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게끔 만드는 후진 미디어들이 있는 현실, 나혜석은 이 꼬라지를 보면 뭐라고 할까.

이 땅의 연옌들은 패리스 힐튼이 아마도 부러울 것 같다. 아싸리 몸뚱아리를 국가에 헌납하고 연옌 생활을 하는 편이 훨 낫겠다. 후진 미디어들도 아예, 스스로 '옐로 페이퍼'라고 커밍아웃하던가. 괜히 엄숙한 척 하지 말고. 솔직한 애들이 되레 착해보인다니까. 기계적인 엄숙함을 강요하는 자들은 너무 끔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