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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

바람이 분다, 랭보를 만나야겠다

어제 8일, 입동이 지났지만, 낮에는 가을이 완연하다. 작년과도 다르게. 그래서일까. 올해의 랭보는 어쩐지, 더욱 쓸쓸해뵌다. 겨울바람이 슬슬 불어줘야 랭보는 어울린다. 대선(전야)바람도, 삼성(비자금)바람도 아닌, 시린 한기를 품은 바람. 가을을 향한 이별이 잘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지게끔. 어떤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린 연인처럼 가을이 멀어지고 있어야, 랭보는 바람구두를 신고 나타날 것 같단 말이다. 그렇다. 내일(10일)은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랭보의 116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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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오늘 문득 생각난 노래가 이것이었다. 소라 누나의 '바람이 분다'. 어쩐지 이 노래를 듣다가, 길을 나서면 문득, 멈춰서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바람이 불고, 눈물이 날 것 같은.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의 외로움과 불화도 그랬을 것 같다. 그의 이별도 어쩌면, 잘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졌을지도 모르겠다. 베를렌과도, 세상과도.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것 같아
이미 그친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것 같아 다 알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 이승환 작곡, 이소라 작곡, 이소라 노래 6집 앨범 '눈썹달' 중에서 '바람이 분다' -

최근 이사를 하면서, 고등학교 시절 샀던 <<랭보시선>>(현재본은 2001년 개정판)이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꼭꼭 숨거나 바람에 날아갔거나. 랭보를 다시 읽고 싶단 생각을 했지만, < 토탈 이클립스 >나 봐야하지 않나 싶다. 아니면 < 넘버3 >의 '얼치기 랭보'를 만나야할까?ㅋㅋ 그런데 12년 전, < 토탈 이클립스 >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정말 아름다웠다. 레오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12년 전의 그는, 내가 앞서 접하고 그렸던, 랭보의 현현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아름다운 천재시인의 사랑과 비극, 그리고 작품을 엿보는 범인은, 살리에르의 질투도 느끼지만, 매혹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랭보를 다시 읽고 본다손, 고딩 때와 같이 랭보에 매혹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에 말이다. 타락천사, 랭보. 그렇다. 기억이 다르게 적히듯, 매혹도 마찬가지다. 그저 바람이 불기를 바랄 뿐. 그리고 내뱉겠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그래도, 이런 하늘이 동공을 헤짚자,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죽고싶단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하늘.
랭보도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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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바람구두님이 랭보의 시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새겨두어야 한다고 한 말.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먼저 인생을 바꿔야 한다."

아울러, 랭보의 자장 안에 있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
2007/09/23 - [이야기가 있는 풍경] -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아래는, 지난해 랭보를 기억하며, 토해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