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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나도 그립다, 그 이름. 김.소.진.


1997년 4월22일.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김.소.진.에게도 이제 '10년'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소진에 대한 기억을 다룬 문집이 나왔다. <<소진의 기억>>이라. 소진...

목마른 한국문학 '그리운 김소진'
오늘 김소진 10주기 추모제

어제 술 한잔 걸쳤다. 사실 22일을 앞두고 술 한잔을 나누고 싶었다. 김소진을 기억하는 누군가와. 김소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서른 다섯(만 서른넷)의 나이에 소진은 떠났는데, 한참이나 어렸던 나는 이제 훌쩍 그 나이에 근접했다. 그렇게 지나버린 10년이지만, 소진을 기억하는 누군가와 기억의 문집을 꺼내보고 싶었다. 술이 목적이 아닌. 소진의 기억!

그러나 돌잔치 이후,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녀석들에게 소진을 기대할 순 없는 일이었다. 내 술잔 속에서만 소진은 그저 녹아들 따름이었다.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소진.

<<아버지의 미소>>였다. 소진을 처음 만났던 책. 1998년 이었으리라. 우연히 책을 샀고, 짠했다. 그리고 소진은 이미 내가 밟고 있는 세상에 함께 존재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누군가를 알았으나, 이미 떠나버린 것을 알았을 때의 안타까움이란. 역시 난 눈 밝은 독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행간행간에 박힌 소진은 세상에 눈 밝은 사람이었다. 여기저기서 찾아본 소진은 그랬다. 소진, 말을 건네다.

<<자전거 도둑>>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소진을 만날수록 안타까움은 더해갔다. 소진이 품은 뭇별들이 더 이상 반짝이지 못함이. 소진의 소진(消盡).

감히 선배라고 부르고 싶었다. 언론계에 몸을 담았던 나는 소진 역시 기자 출신임을 알았다. 그러면서 공연히 조금이라고 가까이 가고 싶었다. 그러나 소진의 기억을 품고 있는 선수들을 알지는 못한다. 소진을 화두로 꺼낸 적은 없었다. 1990년부터 한겨레 교열부와 문화부를 거쳐 1995년부터 선배와 지인 사무실에서 전업작가로 나섰다고 했다. 그러다 췌장암이 소진을 덮쳤다고 했다. 그로부터 10년. 소진의 10주기.

1963, 강원도 철원 출생   
1982, 서울대 영문과 입학
1990,『한겨레신문』 기자로 입사(~1995. 6)
1991,『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쥐잡기」로 등단
1993, 소설가 함정임과 결혼
1995, 소설가 전업
1996, 제4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1997, 췌장암으로 사망(35세)

※주요 작품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솔, 1993
『고아떤 뺑덕어멈』 솔 1995
『장석조네 사람들』 고려원, 1995
『자전거 도둑』 강, 1996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강, 1997
『아버지의 미소』 솔, 1998

그리고 생각날 수 밖에 없는 한 사람. 소설가 함.정.임. 소진의 부인이었던. 그리고 얼마전 재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간혹 보았던 글에서 소진을 향한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나던. 다시 결혼했다는 소식에 참으로 반가웠다. 소진과 함정임.

문득 함정임이 얘기하던 '사랑'을 다시 긁적여본다. <<호퍼의 주유소>>에 나왔던.

…사랑은 산소같은 것이지만, 또한 사랑은 벼락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사랑은  살게도 하지만,  또한 사랑은  죽게도 하는 것이었다.
사랑은 매번 첫사랑이고, 동시에  매번  마지막 사랑이라는 것을
동생은 서른 중반이 되어서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첫사랑은 산소처럼 가볍고 깨끗하지만
마지막 사랑은  죄처럼 무겁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소진에겐 화양연화가 언제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누군가처럼 절절한 기억이 아니더라도, 나도 김소진이 그립다.

선배 잘 계십니까. 그곳에서도 뭇별들 사이에 길을 놓고 계신거죠?

나도 당신처럼 눈 밝은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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