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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감탄한다...'에 해당되는 글 45건

  1. 2012.07.31 8월4일 그날, 심장이 시켜서 하는 일…정든님 정은임 by 스윙보이
  2. 2012.05.27 지금이 아니면 안돼! by 스윙보이
  3. 2012.01.06 '걷기'는 어떻게 '도시'와 내통하는가 by 스윙보이 (2)
  4. 2011.09.18 최동원, 부산 싸나이의 초상 by 스윙보이
  5. 2011.06.22 소중한 날의 꿈, 정은임 by 스윙보이
  6. 2011.03.30 혜화동, 홍세화 선생님 by 스윙보이
  7. 2011.03.08 이토록 멋진 여성(들) by 스윙보이
  8. 2011.03.03 세상 낮은 곳, 아픈 곳을 중심에 두고 노래해야 하는 이유 by 스윙보이
  9. 2010.12.10 '전태일' 알려주던 어른, by 스윙보이
  10. 2010.12.07 아, 리영희... by 스윙보이

8년 전부터 이맘 때면, 

심장이 시켜서 하는 일이 있어요. 

느닷 없이 닥쳐온 사건에 심장은 때론 격하게 반응을 하죠. 

그리고 특정 시간을 품은 심장은 때가 되면 몸과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 말을 다시 되씹어야 했던 그날. 2004년 8월4일.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꽃을 먼저 꺾어 식탁을 장식하듯, 

신은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먼저 데려가 천국을 장식하신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울었습니다. 

당시 울면서 썼던 누나에 대한 추모.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일. 

슬픔을 참고 견뎌내는 일 외에 그 사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 

추모바자회를 열고 있습니다. 

매년 8월4일, 1년에 단 하루,

심장이 시켜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 추모바자회를 열고 있어요.

아름다운가게의 도움을 받아서. 


 

올해도 열립니다. 

행여 집에서 팽팽 놀고 있는 책이나 CD 등이 있다면 보내주세요. (무료택배 방법 있슴다!)

아님, 추모바자회 행사 당일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책방'에 오셔서 자원봉사나 물건을 사주셔도 되고요.

뭐, 별로 보고 싶진 않겠지만, 행사 당일 저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ㅋ 


참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사람입니다. 정든님 정은임. 

<냉정과 열정사이>는 그랬습니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다."

 

아무렴요. 

누군가, 정은임은 누군가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있을테니 행복할 거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렇게라도 정든님을 우리는 기억하고 삽니다.

살아남은 자의 숙명이자 슬픔.

 

영원한 나의 누나. 

이젠 늙지 않는 나의 누나.

안녕, 은임 누나. 잘 있나요?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

8월4일(토) 아름다운가게 서 제7회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바자회 열려


8년여 전, 그날 즈음,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하늘도 슬퍼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불의의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며칠 뒤, 비가 많이 오는 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4년 8월4일. <정은임의 FM영화음악> 등을 통해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였던 그녀가 떠난 자리, 그녀를 기억하고 사랑했던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정든님, 정은임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청춘의 어느 한 시절을 정은임에 빚진 사람들, 그 사람과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아름다운 하루를 열기로 했습니다. 매년 8월4일,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날입니다. 추모바자회를 열고 있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는 8월4일(토) 모입니다.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책방에서 추모바자회를 엽니다. 우리 세상과 사회를 조곤조곤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 아직 기억합니다. 지난 2011년을 제외하고, 매년 8월4일 연 추모바자회는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합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입니다. ‘정은임 아나운서 팬페이지’(www.worldost.com)의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 등과 함께 열고 있습니다.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참여로 이뤄집니다.

행사 당일 아름다운가게에 모여 봉사활동도 하고 수집된 물품을 판매합니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수익금은 아름다운가게에 전액 기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렇게 해왔습니다.

지난 1회 바자회 수익금 전액(200만원, 특별후원금 70만원 포함)은 아름다운가게 수해지원금에 포함됐습니다. 2회 때는 바자회 행사와 추모 영상회를 가졌으며, 바자회 수익금 전액(182만7천원)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성금으로 활용됐습니다. 3회(136만2천원), 4회(155만4450원) 5회(187만2010원) 6회(111만원) 바자회 수익금 전액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 성금에 보태졌습니다.


이번 바자회도 자발적인 기증과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품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은 무료택배(1577-1113)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책방은 도서, 음반 등을 주로 받으며, 옷을 제외한 가로*세로 30cm 정도의 잡화류도 가능합니다. 무료택배 기증은 8월1일(수) 도착 분까지 가능하며, 직접 갖다 주셔도 됩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분은 당일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책방에 오셔서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정든님 정은임,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합니다. 

안녕, 정든임 정은임.

 

다음은 8주기 추모행사 내용입니다.


1. 행사일 : 2012년 8월4일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책방 (서울 종로구 종로1가 24번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지하2층 B215, 연락처. 02-732-6006)

3. 아름다운가게 기증 방법 : http://www.beautifulstore.org/Join/Giving/Process.aspx

 

관련사이트

http://www.worldost.com  정은임 추모사이트 ‘정든님’

http://www.cyworld.com/bastian2004  정은임 미니홈피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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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가 아니라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과거에 어떠했으며 미래가 어떨 것이란 개소리는 그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 그것이 사는 것이다.

 

변영주 감독, 존 레논의 'GOD'를 꺼내며 그것을 상기시킨다.

오롯이 믿을 것은 '지금'. 변절이니 뭐니 꺼낼 필요도 없겠다.

 

나는 지금을 산다. 현재를 산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변 감독의 이 말이 나를 더욱 자극시킨다.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딛고 서있는 공간에 대해 증명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40대라면 지금까지 해온 무엇보다 해야 할 무엇이 더 많기 때문이다."

 

 

[별별시선] 이제 나는 '지금'을 신뢰할 뿐이다.

...그러나 이젠 정말 못 참겠다. 나는 요즘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모습을 보며 이제 나의 세대 즉 1980년대 세대에 대한 존경을 버리려고 한다. 그토록 비겁했던 나의, 아직까지 남아있는 부채와 죄의식은 고스란히 당신들이 아니라 세상의 해고된 모든 분들과 20대에게 드리려고 한다. 정확하게 말해보자. 지금의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모습은 소위 엔엘(NL)과 피디(PD)의 사상투쟁이 아니다.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답게 애쓰며 살려는 태도의 문제다. 민주주의의 문제다. 그렇다. 우리가 적어도 간직해야 할 최소한의 것을 당신들은 버렸다.

과거의 투쟁경력이, 당신의 청춘이 차가운 감옥에서 소모되던 그 역사가, 당신의 희생이, 한낱 중세 교황이 날려주던 면죄부처럼 현재의 모든 것을 덮어주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이라면 당신은 이미 당신의 청춘이 그토록 경멸하던 그 괴물이 된 것이다. 최소한의 가치도 증발된 당신에겐 더 이상 자유와 권리를 말할 자격조차 박탈되었다. 그 치욕스러운 부정과 반민주적인 폭력사태를 목도한 그날 나는 하염없이 존 레넌의 ‘God’라는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존 레넌 스스로가 믿고 신뢰하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비틀스마저도 믿지 않는다는 그의 통렬한 자기고백에 감정이 끊임없이 동요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 역시 현재를 믿기로 결심한다. 왜냐하면 스스로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신뢰는 어느 순간 증명서처럼 발급되어져 유통기한 없이 인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순간의 결기 같은 선택 속에서 시험받고 선언되어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적어도 우리의 후배세대들을 걱정하는 심장이 있다면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딛고 서있는 공간에 대해 증명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40대라면 지금까지 해온 무엇보다 해야 할 무엇이 더 많기 때문이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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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였다. 도시. 내게 급작스레 던져진 화두. 태어나서 지금까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한 적, 없었다. 부산과 서울. 군대조차도 행정구역상 서울이었으니, 나는 저 두 곳에서 줄곧 서식하고 있다. 스물 셋, 잠시 미국에서 6개월을 꿈처럼 보냈던 외에는. 

부산과 서울. 이 도시(들), 딱히 좋아한 것 같진 않지만, 익숙했다. 물론 언젠가 이 도시를 떠날 것이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고는 있다. 평생 살고 싶은 곳은 아니거든. 서울은 너무 빡빡하고 대체로 권위적이다. 드물게 반짝반짝 빛나는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부암동. 그곳은 서울(의 일부)이라기보다 그냥 부암동이다. 나는 그저 이 도시가 그닥 매력적이 아니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니 누구도 내 사는 곳이 도시가 아니라고 말한 적, 없었다. 당연했다. 나는 '도시'에 대한 사유를 진지하게 해보지 않았다. 고작해야 시골의 대척점으로서 도시를 떠올린 정도?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 말, 그래서 도발이었다. 아니, 왜? 강하게 궁금증을 유발한다. 제목, 섹시했다. 들추고 싶고, 벗겨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봉인을 풀었다.

책을 읽는 내내, 덮고 나서,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나는 도시에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왜? 서울은 걷는 것을 박탈하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요즘 걷기 열풍이라 서울에서 걸을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걷다가 나자빠지는 소리냐고? 그러게. 그럼에도 서울은 걷기에 우호적이지 않다. 아니, 걷는 자들을 종종 능멸한다.

자, 이야기를 풀어보자. 

'걷고 싶은 거리'를 처음 접했던 건 이십대 초반. 파리가 그렇다고 했다. 내 이십대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새겨준 고종석 선생의 파리 예찬 이유 중 하나였다. 궁금했다. 걷고 싶다는 생각을 부르는 거리라니. 부산에서도, 서울에서도, 그런 느낌, 가져보질 못했다. 되레 그곳들은 걷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곳에 가까웠다. 차가 장악한 공간이니까. 사람은 차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

고종석 선생은 『도시의 기억』에서 다시 파리를 꺼냈다. "파리는 걷기를 유혹하는 도시였다. 오밀조밀한 볼거리들만이 아니라, 그 도시의 공기 전체가 걷기를 유혹했다." 그는 파리를 허송하면서 도시 한쪽 끝에서 맞은 편 끝까지 걷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해찰하며 느릿느릿 걸었다고 했다. 오래 전, 짧게 들른 파리를 다시 가고 싶었다. 파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나도 그런 걷기를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파리를 걸으면서 낭비하고 싶기 때문이다.

서울 곳곳에 '걷고 싶은 길'이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다. 오세훈이 '디자인'했던 서울은 그런 풍경을 낳았다. '걷고 싶은 길'을 통합해서 관리하겠다고 했었다. 헌데 걷고 싶은 길, 참 애매한 말이었다. 시민들이 걷고 싶은 것인지, 시민들에게 걷고 싶어지도록 만들겠다는 것인지. 자동차에 점령당해 걷기 힘들게 만들어 놓을 땐 언제고. 변덕쟁이들.

더 큰 문제. 걷기 혹은 보행환경에 대한 진단과 해결 차원이 아니었다. 오세훈은 거리 특성화나 디자인, 보도 포장 교체 등 보여주기 식 사업에 치중했다. 걷기 혹은 도시에 대한 진중한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은 그랬다. 도대체, 서울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차들이 자꾸만 인도로 올라오는 것이 불편했는데, 책은 역시나 그것을 꼬집는다. 그것이 도시를 망가트리는 것임을. 인도에 주차를 하는 야만적인 행위부터 규제하는 것이 디자인 거리 조성의 첫걸음이란다. 인도가 주차장으로 변모하는 현실. 그것, 걷기를 소외시키고, 도시 디자인에 삑살이를 놓는다.

도시를 판별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있다. <섹스 앤 더 시티>. 네 명의 여성들이 펼치는 뉴욕라이프와 스타일을 보여주는 드라마. 그 가운데,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가 구두에 유독 꽂힌 이유는 뭘까? 마놀로 블라닉의 명품적 권위 때문에? 패션의 종결은 구두라서? 천만에.

캐리의 구두는 곧 걷기다. 멋진 구두로 거리를 폼 나게 걷고 또 걷는 일. 도시의 본질이자, 도시성에 대한 애정임을 책은 말한다. 즉, 걷기야말로 도시 생활의 필수이자 상징이며 기쁨이란다. 그래서 묻는다. 당신의 서울은, 걸어 다닐 만합니까?

그러니 걷고 싶은 거리는, '둘레길'처럼 산책이나 운동을 위한 길을 일컫는 게 아니다. 도시 안에서 걷도록 만드는 일이다. 다양한 상점이 늘어서 있는 다양한 구경거리가 있는. 차들이 인도 곳곳에 포진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시는 즉, 걷는 것에서 비롯돼야 한다. 걷는 것에서 도시를 사유해야 한다. 혹은 걸으면서.  

“걷기는 도시라는 공적 공간을 즐기고 공동체에 참여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이다. 벤야민은 “도시는 이야기책이며 걷기라는 언어로서만 해독이 가능하다”고 했다. 《걷기의 역사》의 저자인 솔닛은 “도시를 점유하는 방식은 걷기”라고 단언한다.”(p.244)

저자인 이경훈 교수에 의하면, 도시성의 최전선은 '걷기'다. 헌데, 걷고 싶은 것에 대한 오해의 지점을 잠시 지적하자. 길과 거리에 대한 구분의 모호함. 길과 거리는 다르다. 이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않는 우리의 언어적 몰이해와도 연관된다. 

“길은 목적지향적 통로이나, 거리는 길의 일종이나 걷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한 도시의 영역이다. 영어로 보면, 길은 로드(Road)고, 거리는 스트리트(Street)다. 그런데 우리는 길과 거리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쓴다. 뭘 까다롭게 그러냐고 하는데, 길과 거리를 섞어 쓰는 건, 단순한 용어상의 혼용일 수 있지만, 도시에 대한 몰이해를 나타내는 방증이다.”

즉, 길은 이동과 도착이라는 목적 지향적이다. 반면 거리는 경험이라는 과정 지향적 성격을 띤다. 도시를 잘 모르니까, 서울시는 걷고 싶은 길과 걷고 싶은 거리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서울에서 '도시적 걷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장소는 어딜까? 가로수길이다. 길과 거리를 명확히 구분하자면, '가로수거리'가 돼야 할 곳. 압구정동 로데오길과 폭이 같음에도, 두 거리는 차이가 크다. 이 교수는 가로수길에 없는 두 가지를 든다. 

하나. 차가 인도에 주차하지 않는다. 인도 폭이 넓지 않아 차가 올라오기 애매하고 가로수가 촘촘하게 있어서 인도에 주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둘. 공원이 없고 상점이 연속돼 있다. 그것이 가로구길을 대표적인 도시 거리의 모습으로 보게 한다. 거리는 자연보다 상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가로수길의 처음과 끝까지 700m를 걷는 동안 힘들지 않다. 쇼윈도의 구두와 옷을 보고 카페 손님을 보는 동안 가로수길은 끝난다.

맞다. 옳소. 차가 왜 인도를 점유하는가. 인도에 차가 있는 건 특히나 불법임에도. 우리는 별다른 불만없이 차를 모신다. 왜? 다들 차를 가진 사람들이라서? 차를 인도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권리이자, 도시의 권리다. 자연스럽게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길. 그것이 도시의 모습이다. 그래서 가로수길에서 만난 유모차가 나도 참으로 반가웠다.
 

“‘서울은 자동차에 의해 살해된 도시’라는 프랑스 사진작가 얀 베르트랑의 말처럼 서울에서 걷기란 고행에 가깝다. 인도가 없는 좁은 이면도로에서는 차에게 길을 내주고 눈치를 보며 걸어야 한다. 인도가 비교적 넓은 대로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자동차가 인도에 올라와 주차하려고 낑낑거리고 있어서 차를 피해 조심히 걸어야 한다.”(p.24)

서울에 살고 있다면, 당장 당신 주변을 둘러보라. 건물 앞에 차를 주차하도록 만들어서 인도를 잡아먹는 행위가 얼마나 많이 자행되고 있는지. 서울은 그런 면에서 차와 사람과의 관계가 여전히 반도시적이다. 건물-자동차-사람-자동차의 배열.

서울에서 걷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눈치를 봐야 한다. 끔찍한 일이다. 더 많은 가로수길을 만들자는 이 교수의 주장은 그래서 반갑다. 가로수길과 같은 비싼 거리를 조성하자는 것이 아니라, 차에 종속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며 걷고 싶은 그런 거리.  

“자동차를 피해 조심스럽고 불편하게 걸을 필요가 없는 안전한 거리는 상점의 쇼윈도와 어우러져 지루하지 않은 ‘진짜 도시의 거리’를 만든다.… 나는 서울의 모든 거리가 가로수길처럼 바뀌길 바란다. 가로수길과 같은 ‘우리 동네’에서 이웃들과 인사하며 지내는 삶을 꿈꾼다. 진정으로 걷고 싶은 거리, 진정으로 살고 싶은 도시를 말이다.”(p.43)

아울러, 공원 등 녹화 공간에 대한 과도한 집착. 서울의 녹지는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자연을 별로 존중하거나 경배하지도 않으면서 자연, 자연 노래를 부르면서 공원 만들기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꼴불견이다. 

책은 도시에서 상업시설은 필수임을 강조한다. 그게 곧 도시성이다. 도읍 都에 시장 市, 즉, 행정과 상업이 합쳐진 것이 도시다. 고로, 상업도시라는 말은 없는 법. 도시라는 말에 상업이 내장돼 있으니까. 도시는 곧 '상업성'의 다른 말이다. 헌데, 우리는 상업성이라는 말에 묘한 거부감을 가지는데, 이 교수는 그것을 '가식'이라고 규정짓는다.

나무만 심는다고 '친환경'이 아니다. 도시에는 도시환경에 맞는 건축과 조경이 있다. 친환경도 말그대로 환경에 어울려야 하는 것이다. 친자연과 혼동해선 안 된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우리나라에선 친환경이라는 말에 대한 오해가 있음을. 특히나 상업성이 있어야 할 곳은 나무나 공원으로 채우고, 그렇지 않아야 할 곳은 광고로 도배질 한다. 시민들의 미감을 해치는 행위다. 개념 없고 품위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쇼핑몰에 대한 비판도 지금 서울이라는 도시를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몇 달 전, 신도림에 '디큐브시티'라는 거대 쇼핑몰이 들어섰다. 그런 메가 쇼핑몰이 들어설 때마다 자랑이랍시고 떠벌린다. 한국 최대, 아시아 최대, 어쩌고 저쩌고. 사람들이 그 규모에 압도당하도록, 저들은 자랑하기 바쁘다.

그러나 그것, 가짜 도시처럼 만든 것이다. 쇼핑몰은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무엇이다. 거리를 흉내 내고, 도시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곧 도시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전원에나 어울릴 상업시설이다. 그러니 도시는 점점 힘을 잃는다. 도시 안에서 쇼핑몰을 사유하지 못한 결과다. 더 넓고 더 크게 만들어 놓기만 하면 장땡인줄 아는 천박함이다.

과거, 나는 도시를 외따로 떨어진 개별들의 공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은 도시성의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로 공유공간을 꼽는다. 뉴욕의 예를 든다. 뉴욕의 아파트는 매우 좁아서 밥은 식당, 빨래는 빨래방, 야구경기는 바 등에서 해결한다. '홈(Home)'이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셈이다. 그러니 바깥의 지저분함에 대해 서로 지적하고, 규율을 한다. 결과적으로 도시가 아름다워진다.   

“이렇게 최소화된 개인 공간은 역설적으로 도시 전체를 ‘나’와 ‘우리’의 공간으로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아파트보다는 한 도시에 산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도시 전체를 자신의 공간으로 확장하며, 자연스레 공공의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나타난다.”(p.125)

도시성의 의외의 발견이다. 헌데, 서울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공유공간의 기회를 숱한 '방'에 뺏긴다. 가령, 노래방에 가는 건, 아는 사람과 함께다. 뉴욕에서 브런치를 먹는다는 건, 이웃과 사귈 수 있는 계기다. 그러나 지금 서울에서 브런치를 먹는다는 건, 과시적이거나 그것이 뉴욕 라이프인양 경험하는 것에 불과하다. 상업시설은 접촉의 기회를 줘야 하나, 우리는 되레 그것을 과시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장담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의 서울이, 당신의 도시가 달라질 것이다. 책 제목에 완전 공감할 것이다. 서울로만 한정할 필욘 없다. 당신의 공간, 자체다. 당신의 시각과 관점을 달라지게 할 것이다. 이 책은 서울을 비판하는 것보다 서울에 대해 애정한다. 도시를 애정한다. 내가 사는 공간을 사유한다는 것은 곧 애정을 보태는 일이다. 

서울이 도시겠거니 살았던 나나 당신이나, 도시와 서울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만큼 책이 주는 충격이 만만찮다. 낯설게 보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책의 장점은 분명하다. 세계는 넓어지고 감각이 열린다. 눈은 번쩍, 귀는 쫑긋, 말초신경은 아~ 

2011년, 다양한 책을 읽었다. 사유를 가능케 한 좋은 책들도 많았고, 쓰레기 같은 책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서 '2011년의 책'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를 손에 든다. 도시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마침 서울시장 선거도 있었는데, 나로선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이 도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떤 시장후보가 내 서식지를 도시로서 손색없게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둘 수도 있었다.

언제까지 내가 서울에 살게 될지는 모를 일이나, 나는 내 사는 동안 서울이 도시라는 이름을 획득하게 됐으면 좋겠다. 뉴타운으로 범벅된 토건의 공간이 아닌 걷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그런 도시를 꿈꾸는 일, 나쁘지 않다. 

건축가 루이스 칸은 말했다. "도시는 소년이 일생 동안 거닐면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교시를 찾는 곳이다." 거닌다고 했다. 교시를 찾는다고 했다. 도시는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서울이, 혹은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각자의 도시가 된 것은 우연이지만, 우리는 그 우연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공간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교시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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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준열 2012.07.18 18:4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재밌게 읽었습니다.
    전원도시적 맥락에서 글을 쓴 것 같은데요, 저도 한번 들춰보겠습니다.
    서평 고맙습니다.

1. 나는 한때, 이'동원'이었다. 
누구도 그렇게 날 부르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지칭했다. 야구를 할 때, 마운드에 섰을 때, 나는 본디 이름이 아닌, 이동원이었다.

맞다. 최동원 때문이었다. 금테 안경을 끼진 않았지만, 소년 이동원은, 최동원의 역동적인 투구폼을 따라 온 몸을 비틀면서, 힘껏 야구공을 뿌렸다. 최동원의 투구폼을 아는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나는 투구폼뿐만 아니라 표정도 따라했다. 앙 다문 입술로 눈 앞의 타자를 제압하겠다는 번뜩이는 눈빛.

비록, 나의 공은 대부분 그곳이 아닌 저 어딘가, 를 향했지만. 땡깡을 부려 마운드에 오른 포볼 공장장이었지만. 나는 그때만큼은 최동원이고 싶었다. 그렇게 강속구를 뿌려댔으면 하는 바람. 아리랑볼 같은 마구로 타자를 꼼짝 없이 묶고 싶었다.

야구소년에겐 다른 뭣이 필요하랴.  
최동원.  
동네에서 야구놀이 한답시고 꼼지락대던 야구소년에게 그 이름은 '야구 그 자체'였다. 그땐, 야구라고 쓰고, 최동원이라고 읽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1984년은 그런 해였다. 초딩 낮은 학년부터 야구 스크랩을 하던 내게 진짜 야구의 알싸한 맛을 알게 해 준,  진짜 부산 싸나이의 태도를 알려준.

불 같은 강속구도, 뽕삘 나는 아리랑볼도 없는 내가 야구를 하고 싶었던 건,
온전히 최동원 때문이었다. 그때 그 시절, 최동원은 야구의 다른 이름이었다.

2. 신은 부산에 최고의 팬과 최악의 팀을 주셨다. 
노떼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팬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는 이 문구. 최고의 팬?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는데, 사직 야구장에 가서 노떼 경기에서 자체발광하는 팬들의 모습을 보면 단박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최악의 팀이라는 지칭은 노떼 프런트 때문이다. 동원이 형의 이른 죽음에 노떼 역시 책임이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올해로 프로야구 30년. 노떼는 쌈썽 라욘즈(삼성 라이온즈)와 더불어 연고지나 팀이 바뀌지 않은 유이한 구단이다. 여지껏 꼴랑 2번 우승한 팀 치고는 팬들의 열광이나 응원은 다소 의아한 측면이 분명 있다.  

첫 우승은 84년이었다. 열혈 그 이상의 폭풍팬들이 몸과 마음을 기댄 곳이 노떼다. 나도 노떼팬이지만, 그 생리는 참 묘하다. 애증 그 이상이다. 84년 우승으로 노떼의 건국 신화가 비로소 세워졌는데, 그건 동원이 형의 몫이 가장 컸다. 쌈썽의 져주기 추태로 노떼와 쌈썽이 한해 우승팀을 가리는 코리안시리즈에서 맞붙었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코리안시리즈를 앞두고 노떼 선수단이 결의를 다지는 회의를 했다. 당시 강병철 영감(감독)은 선수들에게 7차전까지 갈 생각하라는 말과 함께, 동원이 형에게 1, 3, 5, 7차전을 준비하라고 했다. 한 마디로, 그건 "너 죽어라"는 말이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혹사 명령이다.
 
그해, 정규시즌의 절반 가량을 나온 철완이었다지만, 동원이 형이라고 뜨악하지 않았겠나. 되물었다. "감독님, 너무 무리 아닙니꺼?"
(동원이 형의 1984년. 총100경기 중 51경기 출장, 284.2이닝 투구. 27승13패6세이브)

잠시 생각하던 강 영감의 답변이 또한 가관이었다.  
"동원아, 우짜노 여기까지 왔는데...(이번에도 니가 해줘야겠다! 독이 들었지만 마셔줘야겠다)"

뭐라고 답했느냐고? 동원이 형의 반응은 짧고 굵었다.
"네, 알았심더. 한번 해보입시더." 독이 든 성배를 그는 기꺼이 마셨다.

나는 그 말을 했을 동원이 형의 앙다문 입술과 표정이 떠올랐다.
'완전연소'가 아니라면 차라리 사라지고야 말겠다는 승부사의 단호한 표정.

알다시피, 동원이 형은 1, 3, 5, 7을 넘어 1, 3, 5, 6, 7차전을 나왔다.
1패가 있었지만, 4승을 거뒀고, 노떼의 첫 우승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미친 짓이지만, 그는 그렇게 했다.

스포츠춘추의 박동희 기자가 물었다. 분명히 후유증이 왔을 텐데?  

물론 이상이 찾아왔고, 무리는 대가가 있게 마련이라는 답변을 동원이 형은 내놓는 동시에,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나는 뻑 갔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난 1차전부터 7차전까지 던질 거다.
왜냐? 그게 최동원이니까."

이게 바로 동원이 형의 실체다. 

그런 동원이 형이 최고의 팬을 낳았다.
노떼 팬은 동원이 형에게 일정부분 빚지고 있다.
 
노떼 팬들, 8888577 그 저주의 숫자를 뚫고, 지금도 미친 듯이 노떼를 열광한다. 왜냐? 그게 노떼 팬들이니까.

3. 1984년 최동원의 호투가 없었다면. 당신은 야구를 사랑할 수 있었겠는가.

박동희 기자는 그렇게 물었다.

나는 답할 수 있다. 아니, 최동원 때문에 야구가 가슴에 팍 들어왔다.
세살배기 야구가 국민스포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최동원이라는 불멸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동원이 형은 피하지 않는 남자였다.
지승호씨의 표현이었던가. 단 한 번도 치사하지 않았던 남자, 라고 했다.

그도 홈런이나 안타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았고 되레,
다음 타석에서 똑같은 구질의 공을 던지며 윽박을 질렀다. 칠 테면 쳐봐라.

동원이 형을 묘사할 때, 자존심이 강했다는 말을 빼놓질 않는다.
그 말도 맞지만, 나는 그것을 자존감이라고 봤다.
모르긴 몰라도, 자아존중감으로 충만한 야구인, 그리고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마지막 로망이 있었다.

 
4.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감독!
나는 그것을 강력하게 바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노빠(노떼 빠돌이)였다.
동원이 형 또한 그것을 오매불망 바라고 있었다.  
 
선수협의회 결성 등으로 그를 쫓아낸 노떼.
그런데도 그는 고향팀의 감독을 꼭 한 번 하고 싶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팬들도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원하고 있었다.

그에게 부산은 어떤 곳인가, 물었다.
"차를 몰고 부산 요금소에 들어서면 기분이 참 묘하다. 따뜻한 촉감의 무언가가 몸을 감싸는 기분이 느껴진다. 그러면 속으로 '이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고향집에 찾아가 어머니를 뵙고 나를 기억하는 고향 팬들과 만나면 늘 뿌듯하고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고향을 위해, 야구를 위해, 노떼를 위해,
동원이 형은 그것을 하고 싶었고, 그것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결국 노떼 구단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뒷끝 작렬이었던 것일까. 동원이 형이 그나마 코칭 스태프로 머물렀던 곳은 한화 이글스였다. 롯데 자이언츠가 아니라!

제기랄, 지랄한다. 노떼. 최악의 팀, 개버릇 남주지 않는구나.

5. 대한민국은 죽어서야 대접한답시고 깝친다.
그래, 어딘들 안 그렇겠느냐마는. 노떼의 호들갑은 넘사스러운 데가 있다.

노떼 자얀츠 구단은, 불멸의 야구인이 숨을 거둔 직후에도 대체로 묵묵부답... 
팬들의 원성이 끓어오르고, 동원이 형과 노떼 구단의 불편한 관계가 널리 알려지자, 슬슬 움직이는 듯한 액션을 취했다.

그 높디높으신 신 회장님의 재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겠지.
바지사장 따위가 뭘 결정하겠나.

동원이 형의 등번호 11번을 이제야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고,
9월30일을 최동원의 날로 정해 추모행사를 준비한단다. 
살았을 적, 제대로 영웅을 대접하지 않은 것이 찔렸는지, 팬들의 성화에 밀렸는지, 동원이 형을 명예감독으로 추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단다.

늘 죽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고 뭔가한다고 깝치는 버릇. 씨발.

살았을 적에 노떼의 진짜 레전드, 한국야구의 레전드에 대한 예우나 제대로 하지. 

노떼는 동원이 형이 암 투병할 때, 제대로 문병이나 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5. 노떼와 쌈썽은 둘 다 쪼잔하다.  
양준혁에게 성대한 은퇴식 치뤄줬다고 '역시 삼성~'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던데,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를 알면, 절대 그런 말할 수 없다. 
쌈썽이 그렇게 하는 건, 분명 바람직하고 잘한 일이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선수들의 진짜 권익이다.
노떼와 쌈썽이 최근 돌아가신 두 레전드(최동원, 장효조)에게 행했던 작태는, 두 재벌의 실체와 다르지 않다. 두 레전드가 노떼와 쌈썽에서 선수생활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참 아이러니한 면도 있다.

두 구단은 노조를 용납하지 않으며, 직원들의 권익 따위, 그들의 (육체, 감정)노동 따위로 깝치지 말고 백기 들고 투항하라는 식이었다. 구단을 대표하는 선수를 트레이드한 건 팬들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처사였다.

노떼는,
선수들 권익을 위해 선수협의회 결성에 앞장 선 최동원을 삼성으로 트레이드했으며, 쌈썽은, 
역시 선수협 결성에 나서고 연봉문제로 늘 부딪히는 장효조를 롯데로 보냈다.   

고향팀을 떠나 몸에 맞지 않는 유니폼을 입자니, 열정이 자연 식어갔을 거다.
진짜 문제는 이들로부터 야구를 앗아갔다는 거다. 병이 안 생기고 배겨?

두 쪼잔한 재벌들이 그들에게 암을 발병할 바이러스를 투하한 셈이다.  
이 연놈들은 나중에도 비슷한 트레이드를 통해 선수들에게 괘씸죄를 부여한다.
나는 선수협 문제로 간판타자 마해영을 트레이드한 노떼 때문에,
노떼를, 마침내 야구까지 한때 버렸던 적도 있다. 

이 개새끼들, 야구판에서도 암적인 존재들이고,
사회에도 그렇다. 쌈썽이나 노떼는 같은 피가 흐르는 족속들이다.

6. 부산 남자가 가고, 부산 남자가 온다!

부산하면 최동원이었고, 최동원 하면 부산이었다. 노떼하면 최동원이었고, 최동원하면 노떼였다. 그런 부산 남자가 갔다. 하늘에선 공을 만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슬픔은 고스란히 남은 자들의 것이다.  
지난 14일 저녁 세브란스 병원을 뺑과 함께 찾았었다.
동원이 형이 환하게 웃는 영정사진 앞에서 눈물이 울컥 나오려고 했다. 

나도 한때 저런 부산 남자가 되고 싶었다. 
홈런 따위 맞아도 괜찮아. 난 너와 정면 승부를 하겠어. 어디 칠 수 있으면 쳐봐라. 

그날, 뺑과 나눈 얘기였지만,
동원이 형은 한국 야구사상 '최고의 투수'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강렬하고 최고의 기억을 안겨준 투수는 없다. 
선동렬도 박찬호도 하지 못한, 류현진과 김광현도 하지 못할, 전무후무한 투수.

그는 한편으로 스토리텔러였다. 
이보다 더 짜릿할 수 없는 환희의 순간을 만들어낸 동시에,
역경과 비난, 좌절이 범벅된 세월을 보낸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맞다. 최동원이니까! 
그는 다시 태어나도 1차전에서 7차전까지 던질 테고, 
트레이드를 거부할 것이며, 먼길을 돌고 돌아 노떼 감독이 되는 순간을 기다릴 것이다. 단 하나 바뀐다면, 그가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된다는 것. 

동원이 형이 진짜 '부산 싸나이'였던 것은, 실력 때문은 아니다.

1980년대 후반 올림픽이다 뭐다 흥청망청 거품이 부풀던 시절,
당대 최정상급 투수는, 야구만 잘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을 불태우지 않았다.
당연 야구만 잘해도 충분했을 테지만, 스스로의 필요성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주변을 볼 수 있었던 눈을 가졌던 것이다.

1988년 해태 타이거스의 투수 김대현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선수 보호는 물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동료들이 보였다. 아, 이래선 안되겠구나. 팬들에게 좀 더 좋은 야구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좀 더 야구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러면 안되겠구나.

이른바 있는 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만 신경을 쓰지만, 이 부산 싸나이는 달랐다.
한 달에 20만원을 받는 2군 선수들의 애환이 시렸다.
동원이 형은 야구선수협의회를 추진했고 초대 회장이 됐다.   

그것이 그를 마운드에서 내려가게 한 결정적 이유가 됐지만, 
그는 부산 싸나이의 기질을 결코 버릴 수 없었다. 야구계를 은퇴하고, 
1991년 초대 광역선거에서 부산 서구 지역구에 출마했다. 

당시 고딩이었던 나는 그의 선거 사진을 기억한다. 야구판에서만 보던 얼굴이 선거벽보에 붙은 것을 보니, 희한했다.

어쨌든 그 판에서도 그는 남달랐다. 대통령 병에 걸린 김영삼의 중고등학교 후배였지만, 3당야합으로 이뤄진, 부도덕한 민자당 후보로 나서지 않았다. 3당야합에 반대하고 노무현이 주도한 꼬마민주당의 후보였다. 민자당 후보로만 나서면 당선 확정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진짜 부산 싸나이였다.

"선수협 등을 거치면서 사회적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그래서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꼬마)민주당 후보로 당선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시에 민자당에서도 제안이 있었지만 민주당을 택했어요. 그것도 일종의 반골기질 이었는지 모르죠. 하지만 그래야 진정성을 이해 받을 것 같았어요."

당시 노떼 자얀츠 구단 주식의 일정 부분을 시민 공모주로 바꿔 시민구단으로 재탄생시킨다는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동원이 형은 그런 싸나이였다.

선거에서 떨어진 뒤, TV예능프로에 패널로 출연하거나 의류사업 등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야구판에서 멀어진 야인 생활을 했던 영웅의 시련.

지승호씨의 표현은 딱일 것이다. 단 한 번도 치사하지 않았던 사내.
불이익이 충분히 예상됐던 일 앞에서도 그는 무릎을 꿇거나 피하지 않았다.
아마 홈런을 맞고도 똑같은 공을 던져댈 정도의 배짱과 자존감을 갖춘 최동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부산 싸나이가 갔다. 노무현에 이이서 최동원도 갔다.
바보 같았으나 영웅이었던 부산 싸나이들.  
그라운드만 지배했던 것이 아닌, 누군가의 마음을 지배했던 영웅, 최동원.

누가 그들의 향기를 이어줄까 두리번 거렸더니,
대번에 레이더망에 걸리는 부산 남자(들)가 있다. 안문조.
안철수요, 문재인이요, 조국. 넓게는 박원순까지. 이른바, 부산(경남) 남자들.


물론, 그들은 각기 다르다.
프레시안은 최동원, 노무현을 '아들 삼고 싶은 남자'라면,
안철수, 문재인, 조국은 '사위 삼고 싶은 남자'라고 표현했다.

재밌는 표현 같은데,
글쎄 나는 마초향 나는 앞선 남자들에게 더 끌린다.
최동원의 강속구에 꽂힌 내 유년시절의 기억 때문이리라.


나는 이제 더 이상 이'동원'이라고 스스롤 지칭하지 않는다.
야구를 하기보다 보는 것이 더 편하고 익숙한 나이가 됐고,
내 이름에 더 책임을 질 나이가 됐다.

그럼 같은 부산 남자인 너는 어디냐고?
에이, 부산 남자가 딱 저 두 부류만 있는 건 아니다. 
영웅을 추모하고 떠올리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남자를 지지하는 소시민도 있다. 

그러니까, 아들도, 사위도 아닌,
친구 삼고 싶은 남자, 애인 삼고 싶은 남자, 그게 바로 나다. 하하하.
부산 싸나이들이 가고, 부산 남자들이 온 시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만, 가을에 내 피를 끓게 해줄 것은 이것.
가을야구. 지독한 습관이며 운명인 노떼 자얀츠의 가을야구다.
동원이 형을 위해서라도 세 번째 우승(V3)을 해야 할 때다. 나의 30대를 빛내달라.
나는 부산갈매기다~ 끼룩.


안녕, 나의 우상, 나의 영웅, 나의 야구, 나의 부산, 동원이 형...
당신 덕분에 행복했던 시절이 있어서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의 혼과 불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
당신은 어쩌면 행복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은 내게 야구였고, 부산이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조만간 개봉하는 <투혼>과 조승우가 당신 역할로 나오는 <퍼펙트 게임>.
전자는 노떼 자얀츠와 부산이, 후자는 당신과 선동렬의 혈투(?)가 벌어지는 야구영화니만큼 당신을 다시 기억할 것 같아요. 보고 싶을 겁니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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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여름이 오면, 여름 안에서, 생각나는 그 사람, 누나 정은임.
☞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

얼토당토않게 6월에 추모바자회가 있을 거란 지난주의 오보 해프닝은,
아마도 8월의 누나를 빨리 보고파서 벌어진 일이겠거니.

오늘 본, 이 짧은 글이 눈을 시큼하게 만들었다. 킁킁.  



특히 이 구절.
"사람은 살며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충분한 인연이 있다.
때때로 나오는 그 분의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가에 알 수 없는 내 그리움이 나온다."

그리고 이 말도.
"누군가의 꿈에 대해 귀담아 들어 주는 것이 얼마나 한 청춘을 가슴 뛰게 하는지."

나도 그런 인연이 있었고,
내 허술한 이야기와 꿈을 귀담아 들어 주던 그 사람 덕분에 한껏 가슴이 뛰었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인연이었으면 하기도 하고,
나도 누군가의 꿈에 대해 귀담아 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특히 지금 만나곤 하는 그 아이들의 이야기와 꿈에 대해. 

8월4일.
8주기다. 그날을 위해 나는 슬슬 준비를 해야할 테고, 워밍업을 해야지. 
그날, 나는 또 1년 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누나를 기억하고 이야기할 테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하루. 

당신이 혹시 함께 참여하지 못해도,
그날만은 은임 누나를, 은임 누나 말을, 떠올리고 옆사람과 이야길 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바자회에 당신의 마음을 전하고, 잠시 들렀다 가면 더욱 좋겠다. 
그날 행사의 윤곽이 나오면 당신에게 꼭 알려주겠다. 짜잔~ 


모쪼록, 
은임 누나가 귀담아 들어줬던 <소중한 날의 꿈>,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그 마음 안에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꼭 보려고 'Must-See'에 올려놨던 영화였다. 
극장 가서 보겠다. 당신도 함께 보자. 은임 누나가 꼭 언급했을 법한 이 영화.

참 좋은 이름, '연필로 명상하기(애니 제작사)'의 명상이,
계속 됐으면 좋겠다. 안재훈, 한혜진 감독님을 응원한다!  

마지막으로, 누나.
누나누나, 잘 있나요? 
두 사람, 만났겠다. 그러고보니, 두 사람 참 닮았네. 두 사람, 얼마나 많은 수다를 떨고 있을까. 보고 싶다.

여름 안이다. 여름 안에서.
김범수 리메이크, 나는 참 괜찮았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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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3월30일) 여러 기분 좋은 사건 가운데,
가장 째지게 좋은 사건. 당신에게 속살속살하고픈 이야기.

아마, 당신도 이 얘길 들으면 함께 꺄아~하고 소릴 지르지 않았을까.

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혜화,동으로 향하던 길.
2호선에서 4호선을 갈아타는 통로 앞.
앗, 낯익은 얼굴. 갑자기 커진 동공.

홍세화 선생님!!!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버나드 쇼의 묘비명),
하는 후회에 대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꾸벅 인사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

그러니까,
1년 하고도 3개월여 전의 만남을 말씀드렸더니, 마침 선생님도 기억 나셨나봐. ^^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 스스로 묻는 소수와 함께


마침 선생님께서는,
대학로에 사회풍자연극인 <택시 택시>를 보러 가시는 길.
나의 목적지도 대학로에 있었기에, 함께 지하철을 타고 말씀을 나눴어.

사모님께서는 다행히 치유되고 있다고 하셨고,
작년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구독 이야길 풀었으며, 
가산동에 공정무역 커피하우스를 열었음을 알려드렸고,
혁명과 사회적 담론이 오가는 커피하우스에 대한 이야길 나눴어.

재밌는 건,
선생님을 조만간 꼭 뵐 일이 있었다는 거야.
곧 추진하는 프로젝트 첫 시작이 선생님이라, 만나뵙고 부탁드리려 했었어. 
마침 4월9일, 사회적기업가학교 입학식 특강이 예정돼 있으셔서,
이 자리에서 뵙고 부탁드리려 했는데, 쇠뿔도 단김에 뺐지. 
승낙을 받았어, 야호~ 


뭐 어쩌다 그 짧은 시간, 개인적인 이야기도 잠시 나누게 됐는데,
새롭게 안 사실은, 선생님 따님이 나랑 동갑이라는 거야. 허허.
현재 프랑스에 있는 선생님 따님은 결혼을 안 한 상태인데,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딸이) 결혼은 안 해도 좋은데, 아이는 꼭 낳아봤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되어 본다는 것, 그건 꼭 해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보고 들은 선생님의 눈빛과 목소리는 그것이 진정임을 알려줬고,
순간, 존경할 만한 노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내가 괜히 뿌듯해진 거지.  

내가 아는 멋진 여성, 물론 선생님도 알고 계신 목수정씨 이야길 잠시 했고,
미모채집자에 미모밝힘증을 가진 나는 번뜩 이런 불순한 생각도 했어.
'아, 이런 멋진 분 따님이라면, 까짓 여자 얼굴 안 보고 결혼 할 수 있겠다. 온전하게 장인어른만 보고 말이지. 캬캬'

시민연대계약이 떠올랐고,
아주 간혹 생각을 해 본, 결혼 않고 아빠가 되는 것을 다시 끄집어내 봤어.
혹시 그렇게 된다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지만, 난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아.ㅋ

선생님을 다시 만난 아직은 쌀쌀한 봄날의 풍경.
집으로 가는 길, 한때 내 봄날을 장식하곤 했던 후리지아를 오랜만에 샀어.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방법, 밤 9시 1000원으로 내려가는 후리지아 한단.
내일 커피하우스에 꽂아둬야지!

이날, 하울이(내 오래된 휴대폰 이름)가 참 좋아했었어.
내가 선생님 전화번호를 땄고,
그닥 많은 사람 담고 싶지 않은 녀석에게 선생님 전화번호를 알려줬거든.
삑삑 거리며 그 번호를 담으면서 어찌나 좋아하던지.
녀석, 너도 참 좋았구나. 토닥토닥. ^.^

(지)하철이가 아주 간혹 주는 선물에 행복했던 하루.

선생님, 9일에 다시 뵐게요~
약속드렸던 공정무역 유기농 커피, 잘 볶아서 가져가겠습니다. ^.^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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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8일, 여성의 날. 
우리, 아이 좀 낳게 해 주세요~ 네에~~
남자는 맞아야 한다!
'여성의 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침, 우리 쉐프(어머니)께 장미 한 송이 미리 건네지 못한 불찰은 아쉽고.

다만, 오늘 두 명의 멋진 여성들을 알현하고,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 나는, 그저 강호의 지질한 수컷. 아오~~~

한 분은, 양동화 간사님.

21세기 최초의 독립국, 동티모르의 사메지역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공정무역 커피 산지를 가꾸고, 동티모르 사메 사람들의 지속가능한 삶과 커뮤니티를 위해 '번짐'을 실천하는 사람.

스스로는 그것을 헌신이라기보다 '놀이'라고 말한다. 뭣보다 올해로 5년째 그곳에 있는 그녀의 이 말. "나에겐 선택이었지만, 이 사람들에겐 삶이였어요."

나는 다시 이 명제를 생각한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가 마시는 커피에는 누구의 노동과 삶이 묻어있을까.'

한 분은 김신양 교수님.
 
오늘부터 내가 수업에 들어간 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복지대학원의 '지역개발과 사회적기업'의 강의를 맡은 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보는 다른 시각으로, '다른경제(alter-economie)'를 말하는 사람.

자본을 인간과 노동보다 우위에 놓은 것은 불과 50년이 되지 않았다. 사회적경제는 고로, 본디 인간 사회가 지닌 DNA였다. 경제 활동의 목적은 대박이나 부자가 아니다. 그 궁극적인 목적은 구성원과 지역사회에 복무하는 것이다. 아무렴.

지질한 나를 지탱하고 있는 이 명제들. (책 제목이기도 하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이 두 여성, 알흠답기까지~

세상엔 살펴보면,
수컷들의 지질함을 커버해주는 어메이징한 여성들이 있는데,
나한텐 오늘 이들 여성이 그랬던 것 같아.
지질한 수컷들은 이런 여성들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봐!

이 어메이징한 여자들아, 
난 그렇게 멋진 여자를 본 적이 없어. 이게 내 대답이야. 

그래서 장미 한 송이. 
직접 건네드리지 못해 아쉽긴 해도. 
내가 줄 수 있는 건, 장미 한 송이, 장미~ 
 
그나저나,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긴한데,
혜교와 헤어짐을 경험하고 군대를 간 남자(현빈)의 마음은 어떨까.
아마도 그에게도 혜교는 어메이징한 여자였을텐데...
나는 자꾸만, 그의 마음이 아프다.
나는 현빈이 아님에도, 현빈이 아프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노래를 듣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온도의 차이, Soul 36.6에서~



내년 3월8일,
Soul 36.6에선 세상을 바꾸는 온도를 실천하는 여성들에게,
장미 한 송이씩!!! 약속한다.
이 못난 수컷이 어메이징한 여성들에게 약속할 수 있는 한 가지.

3월9일 드뎌,
준수의 '소셜 카페' 시즌 2.01, Soul 36.6이 소박하게 문을 연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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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금천구 사회적기업가 학교 수료식 축사를 하러 가서,
이지상 선생님을 뵀다. ^^

그리고, 올해 지키고 싶은 약속 중의 하나.

비 나리는 어느 날,
이지상 선생님의 연희동 작업실에서 막걸리 한 사발.

지상 선생님의 멋진 음성과 어우러진 음악을 들으며,
승리할 때까지!

더불어,
 세상 아픈 곳에 대한 인식과 실천.
그리고 많은 고마운 당신들이 보태준 응원에 대한 빚갚음.

올해 나의 약속을 지킬 수 있길.
그렇게, 세상에 건강하게 썩어들어갈 수 있길. 

쿠바 독립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며, 문인이자 정치가·혁명가였던, 체 게바라의 사상에도 큰 영향을 준 이 사람, 호세 마르티(Jose Marti, 1853.1.28~1895.5.19.). 이런 말씀, 남겼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잘 권리가 없다.” 그의 영향을 받은 쿠바 혁명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그 단초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불행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굳이 설명 안 해도 아시겠죠?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은 이런 말씀, 했었다죠. “작곡가는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라 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무심할 수 없다. 인간적인 고뇌, 압제, 부당함이 이 세상에 여전히 존재한다... 고통이 존재하고, 오류가 존재하는 그곳에 나는 내 음악을 가지고 나아갈 것이다.” (『음악과 권력』 중에서) 음악 역시 한 시대의 산물로서,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준 말씀이지 싶어요.

모든 것이 정체 혹은 퇴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대입니다. 음악이라고 예외일까요. 단적으로, 음악을 받아들이는 제 태도가 과거와 다릅니다. 이젠 가사를 품지 않아요. 아니 못해요. 노래방에서처럼 가사가 눈앞에서 제시되질 않으면 꿔다놓은 보릿자루입니다. 아이돌들의 얼굴은 선해도, 그들 음악은 이상하게 마음에 등재되질 않아요. 부러 기억하지 않아도 절로 내 몸과 마음에 각인됐던 예전 음악과 다릅니다. 매체와 청취환경의 변화가 불러온 것도 있겠지만,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음악이 혹시 세상을 품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네가 무슨 음악을 안다고 그래?, 라고 타박하신다면. 그러게요. 제가 무슨 음악을 논하겠습니까마는, 삶과 세상을 노래하던 음악가, 가수들이 우리의 시야와 청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정태춘 선생님처럼, ‘이 풍진 세상, 더 이상 무엇을 노래한단 말인가’라며 칩거 아닌 칩거에 들어갔던 분도 계시고. 영화음악이 품은 세상을 속삭여주던 정은임 아나운서는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세상에 공명한 아프리카의 목소리 미리엄 마케바와 아르헨티나 민중의 목소리 메르세데스 소사도 세상을 떠나시고.

아아, 어쩌면 돈이 삼킨 주류 미디어가 음악을 전파하는 방식에 젖어든 제 탓도 있겠네요. 그야말로, 주류음악만 틀어대는 더러운 세상~


오해는 마세요. 아이돌 음악을 폄하하거나, 그들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 아닙니다요~ 저 애프터스쿨도 좋아하고요, 특히 박가희! 아주 좋아 죽습니다. 하트♥♡♥ 작렬!! 음악 좋은 아이돌,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나르샤, 아웅 예뻐요, 예뻐. 꺄아아~ 카라의 니콜은 어떻고요! 생각만 해도 므훗(!)합니다. 동방신기의 시아준수와 2PM의 김준수만 보면, 괜한 뿌듯함이. (음, 이름에서 이상한 냄새가...^^;)

그래도 세상엔 여전히 ‘다른’ 음악도 있습니다. 돈을 처바른 주류적 가치가 전파하는 음악 말고도, 세상 낮은 곳을 향한 울림이 있습니다. 작아서 잘 들리지 않을지 몰라도, 중얼거리듯 낮은 세상과 생명을 노래하는 음악이 있습니다. 파탄 직전까지 몰린 주류 경제구조 아닌 다른 경제구조가 지구상에도 있듯, 다른 삶도 존재하며, 역시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사는 마을’의 음악. 아주 약간은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이돌은 아니지만, 성인돌도 아니지만, ‘중얼돌’이라고 붙여도 좋을, 어떤 ‘다른’ 음악. 이 마을에는 못난 놈들은 못난 놈들끼리 보듬고 삽니다. 배척하거나 분리하지 않습니다. 마을 공동체를 구성하는 누군가에게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도 편안하게 잠들지 못하며, 고통과 오류가 존재하는 곳에 음악이 함께 하는 그런 마을. 

그곳, 사람과 사람 사이엔, ‘급’이나 ‘깜냥’ 같은 것 없습니다. 어울려 살아도 부족할 세상에 무슨무슨 급을 나눠 칼을 겨누고, 어디 그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급이나 깜냥을 나누는 게 편한 사람들이야 그렇게 해서, 자신의 우월감을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겠지만, 아유, 남들 보기에 잘 나서 참 좋겠습니다요, 그려.

동물도 위험에 처하면 나눠먹고 무리에서 보듬어주건만, 아예 없는 사람들 것까지 다 털어먹으려는 급을 보자니, 그들에게 급을 붙여주고 싶습니다. ‘병맛급’이라고. 병맛이 무슨 말이냐고요? 모르면, 찾아보시고. 그것보고 혹 스팀 받으면, 제목에 ‘님하, 싸울래염?’하고 결투 신청하세요. ‘급’이 맞으면 상대해 줄게요.  


참, 본론 들어가야죠. 지난 9일, 다른 노래를 청하고자, 서울 연희동의 한 옥탑작업실 혹은 옥탑놀이터를 찾았습니다. ‘고단한 사람들의 일상에 희망의 언어를 들려주는 가수 겸 작곡가’ 이지상 선생님을 만나 뵌 거죠. 최근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이지상 지음|삼인 펴냄)를 내신 것도 있고, 공산품 노래가 아닌 사람의 소리가 그리워서 찾아뵀습니다. 그곳은 말하자면, 사람이 사는 작업실, 사람이 노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는데, 한 번 들어보시렵니까. 당신의 귀, 열어주세요.


사랑의 이유를 되새김질한 작업

이번 책,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으고 다듬은 선생님의 첫 산문집입니다. 앨범만 내시던 분이,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또 다른 노래를 들려주신 거죠. 어떤 사안이 벌어지면 머리보다 발부터 움직이고 마음이 먼저 갔던 그런 것에 대해 글로 풀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확실히 사람을 정확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선생님도 그러세요. “내가 어렴풋이 사랑한 것을 구체적으로, 사랑의 이유와 근거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도록 해 줬어요.”

물론 그만큼 글 쓰는 게 어려우셨대요. 노래 만드는 것보다 더. 하룻밤 한 편 쓰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오죽하면, “글을 한 편 쓰느니 노래 다섯 곡을 숙제로 받는 게 나아요”라고 하실까요. 그래도, 책을 엮으신 것은 강의를 위한 목적도 있으셨대요. 선생님은 현재 성공회대학교에서 ‘노래로 보는 한국 사회’를 강의하고 계신데, 강의 텍스트로 삼을만한 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품어오고 계셨거든요.

그런데, 준비된 원고는 없지, 오디션이나 검증 받는 건 생래적으로 싫어하지. 몇몇 출판사에 대뜸 책 내겠다며 떠봤습니다. 당연, 통할 리가 있나요. 대부분 정중하게 난색을 표하는데, 이때 짜잔. 삼인출판사에서 편집자 회의를 거쳐 그렇게 하자며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나름 큰 사건이었다죠. 출판계에서 흔치 않은 일이라. 허허. 대인배끼리의 만남인가 봅니다. 무작정 책 내겠다는 사람이나 덜컥 이를 받아준 사람이나. 도대체 뭘 믿고! 아, 물론 약간의 친분은 있었다는 귀띔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이것 역시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사건이 아녔을까요. ‘기다림은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 선생님께서 쓰신 프롤로그의 제목입니다. 알다시피, 누구든 삶의 대부분은 기쁘지 않지요. “슬픔이 (삶의) 70~80이죠. 나머지에서도 기분이 평안하고 기쁜 때는 5~10정도랄까요. 그렇다면 슬픔이 지난한 세월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희망이란 단어를 품지 않으면 안 되죠. 그런 희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라고 할까.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책에도 있지만,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 순간부터 이뤄지기까지의 시간입니다. 국어사전에는 그리 안 나오지만. (웃음)”

“인내는 기다림을 수단으로 삼습니다. 잘 참는 사람은 많이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기다림이란 단어의 의미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순간부터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의 모든 시간 혹은 행위’입니다. 그러니 wait가 아니라 hope가 맞습니다. 갈망이 현실이 되어 더 이상 바랄 필요가 없을 때가 기다림의 끝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발 딛고 희망하며 사는 사람들은 모두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p.6)

비주류, 거의 대부분의 삶

책을 관통하는 핵심 중의 하나가 ‘비주류’입니다. 말하자면, 비주류로서 노래하고, 살아온, 아니 선택한 선생님이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것이겠죠. 물론 비주류와 소수자를 혼동하진 마세요. 소수자가 차별 받는 사람이나 약자라면, 비주류는 말 그대로 주류가 아닌 사람들. 바로 가장 보통의 사람들이 되겠죠. “주류라면 명확합니다. 돈 많이 갖고 편히 먹고 살 수 있거나 영향력을 발휘하는 부류들인데, 그런 부류가 아니면 다 비주류죠. 물론 그 중에서도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은 소수자입니다. 소수자가 평안하지 않으면, 비주류 평안하지 않으면, 주류도 평안하지 않습니다.”

주류라고 단독으로 존재할 수는 없지요. 비주류가 있으니 주류라는 딱지도 붙일 수 있는 법이지요. 아무리 잘나도 혼자 잘난 법 없습니다. 이른바 못난 사람 있으니까, 잘나 보이는 게지요. 그런데도 혼자 잘나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한다면, 참 네(사)가지 없는 꼬락서니랄까요. 뭣보다 선생님의 이 말씀, 꾹꾹 눌러 담습니다. “사람의 중심이 아픈 곳입니다.” 왜냐고요? 어디 몸 한군데, 아주 작은 부위라도 아팠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온 몸의 신경이 그 아픈 곳을 향하고 있음, 명백하죠.

“모든 생활의 아픈 곳이 중심입니다. 사람도 그렇고, 가정도 마찬가지죠. 사회라고 왜 안 그러겠어요. 사회도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발가락이 부러진 사람이 온전한 몸이 아니듯, 발가락 부러진 것보다 더 큰 고통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온전한 사회가 아닙니다. 아무 불편 없이 살지만, 우리보다 못 사는 불편한 사람들이 있는 한, 내 마음도 편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말머리에 언급한 ‘호세 마르티’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환자 만 명에게 약을 써서 세 명만 듣는다면 그것을 약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던,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 묵자의 탄식을 온전한 9997명을 놔두고 병이 난 세 명을 위해 약을 추렴하는 지혜로 바꾸어야 합니다. 사회 또한 미운 곳, 약한 곳, 작은 곳, 아픈 곳이 중심이기 때문입니다.”(p.129)

아울러, 책은 전쟁과 식민지배 등으로 인한 역사의 한이 있음에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 상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즉, 고통 받았던 민중에 대한 되새김질. 선생님께서는 “글에는 못 썼지만, ‘새로운 과거, 오래된 미래’의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사에서 몰랐던 일을 알면 새로운 과거가 되고, 그대로 모르는 채 넘어가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습니다. 반성하지 않은 과거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습니다. 사회도 한 시대의 폭력으로 병든 부분이 있다면 이를 고치고 넘어가야 합니다. 설혹 고치지 못해도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노래의 힘은 세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건강의 3대 필수요소가 맑은 공기, 깨끗한 물, 그리고 노래 부르기라고. 선생님 역시 책을 통해 노래는 삶에 대한 경외의 산물이라고 하셨다죠. 그래서 여쭸습니다. ‘노래의 힘’, 말씀 좀 해 주세요! 겸손의 말씀부터 던지십니다. “다른 사람의 노래의 힘은 모르겠지만, 내 노래에 대해 근사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노래하고 작곡하지만, 다른 사람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따지자면, 나는 내 노래 전문가일 뿐, 다른 노래를 잘 몰라요.” 흑, 그럼 저는 어떡하라고요. 선생님 노래를 듣곤 마음의 울림이 있었고, 잠시나마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계를 생각했던 저는...

그래도 노래를 계속 부를 것이란 반가운 말씀, 하십니다. “한때는 세상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도구로 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노래를 시작했어요. 근데 20년 정도 지나다보니, 노래로 이룰 수 있는 게 없어요. 스스로 내 노래에 대한 신뢰는 못해요. 다만 한 가지. 앞으로도 노래로 해야 할 것은 많습니다. 정리하자면 내 노래의 힘은 모르겠지만, 노래를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지만, 해야 할 것들은 있습니다.”

전 사실, 글보다 노래의 힘을 믿는 사람 중의 하납니다. U2의 보노와 같은 인물, 보세요. 완전 멋지죠. 노래라는 것, 사적인 경험이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사회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철저한 상업적 기획에 의해 공산품처럼 생산되기도 하는 아이돌의 노래도 대중이나 트렌드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잖아요. 물론 ‘사회적’이라는 의미에서 괴리된 측면도 있지만.
 


선생님도 아이돌 음악을 배척하진 않으십니다. 아이와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듣기도 하신대요. 아이돌 음악 역시 음악 산업의 일부인데, 한 가지 바람을 건네십니다.

“결국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음악이고 그건 명확합니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고,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거칠게 말해서, 대중들에게 당신들의 돈을 빼내기 위해서 일을 한다고 말하고, 대중들도 그걸 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뭣보다, 다른 음악도 존재한다는 것. 분명 획일화된 무엇이 아닌, 꼭 주류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가치가 꼭 하나인 것은 아니듯, 다른 삶이 존재하듯, 다른 음악, 있습니다. 그 다른 음악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네 사람살이는 좀 더 세계가 넓어지고, 우주가 커지지 않을까요. 

“인터넷 P2P 사이트에서 돈을 지불하지 않고 음악을 다운받는 게 창작자의 의욕을 꺾고 음악을 고사시키는 행위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삶에 대한 경외’를 품은 창작자의 욕구는 시들지 않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예술가의 고집과 자존은 시대와 사회적 관계로부터 부여받는 것이지 단 돈 몇 푼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음악 산업이 고사하는 것이지 음악 자체가 고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업적 영역으로부터 눈을 떼게 되면 그 전에 알았던 노래보다 더 많은 노래의 선율이 역동성 있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p.25)

그런 의미에서, ‘노래 듣고 울어보기’, 어때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내주는 과제명입니다. 시도해볼 의미, 이유, 충분히 있습니다. “시 한 구절을 외우는 사람과 못 외우는 사람은, 삶에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노래의 한 구절이라도 가슴을 때리지 않으면, 노래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래는 물론 감성을 일깨우는데도 꼭 필요합니다. 노래를 그냥 듣지 말고 자세히 들으면서 노래가 가진 역사나 상황, 애절함을 함께 공유해보세요. 반드시 어떤 지점에서 자신의 경험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있고, 자신을 울릴 겁니다.”

그것은 어쩌면 아까 언급한, 노래의 힘과도 연결됩니다. 작고 사소하지만, 어쩌면 거대한. 생활과 사고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 “노래 자체는 그런 힘이 있는데, 우리는 이를테면 지나친 상업적 관점 때문에 놓치고 있는 겁니다. 창작자가 삶에 충일한 상태에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면, 청자도 만든 사람과 비등한 경험을 느끼고 일치시키면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가 당연히 있습니다. 수용자 뿐 아니라 공급자가 경외라는 경험으로 만나서 눈물 흘릴 때, 가장 훌륭한 노래가 됩니다.”

“그 많은 노래 중 자신의 가슴에 각인되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연장처럼 눈물이 되고 또 힘이 되는 노래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소위 ‘돈이 되는’ 일에만 몰두해 있는 대중매체를 노래정보의 원천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유통구조상 ‘사랑아! 네가 떠나서 나는 운다’류의 한정적 주제 외에 노래를 통해 더 다양한 문제의식을 가지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럼에도 가슴속 진동과 심장의 두근거림을 불러일으키는 눈물의 노래를 찾는 일은, 단순한 감정의 배설물로서가 아니라 차고 넘쳐나는 음악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쉬게 할 작은 배를 만드는 것이고, 일생을 두고 함께할 정서적 의지처를 확보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pp.240~241)

선생님이 동인으로 활동하고 계신 ‘나팔꽃’의 시노래 운동도 이에 한 몫 합니다. 나팔꽃,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좋은 시 구절, 노래 구절을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인과 가수들의 앙상블. 시와 노래의 결합이면서 시너지. 이런 것이죠. “또 다른 자본 축적 수단이 된 노래에 빼앗긴 원래 노래의 시심을 회복하고, 우리 언어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확인하며, 동시대를 사는 이들의 해학과 풍자, 삶의 고민과 눈물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p.119)         

참, 노래의 여러 힘과 의미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저는 4월이면 어쩔 수 없이 틀게 되는 노래들이 있어요. 아마, DNA의 조건반사? 딥 퍼플의 ‘April’,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등을 듣곤 해요. 4월의 잔인함에 대한 각인효과랄까요. 아, 그러고 보니, 올 4월은 날씨 때문에 참 잔인해요, 그렇죠? 뭐 그보다, 시대의 잔인함이 더 온 몸을 찌르긴 해도 말입니다. “노동자의 생존을 위한 파업도,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철거민의 투쟁도, 이 땅에서 벌어지는 어떤 싸움도 공권력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면 목숨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p.37) 있는 놈들만 인간 취급하는 더러운~ 세상.

세상 낮은 곳, 당신의 눈길은 향해 있나요

알다시피, 세상은 불평등하고 높낮이가 있죠. 어릴 때 교과서엔 ‘직업에 귀천이 없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등등의 말이 찍혀있고, 어른들도 그렇게 쫑알대지만, 훌쩍 커버리는 순간, 우리는 압니다. 이 구라쟁이들, 새빨간 거짓말이나 해대고. 그러면서 사람들 눈길은 이상하게 세상 높은 곳으로만 향해 버립니다. 세상 낮은 곳, 안중에도 없도록 만들고, 높은 곳만 바라보게 만드는 지배세력의 만행이 작렬하는 영향도 큽니다.

“능력이라는 언어로 포장된 효용이라는 잣대는, 알을 많이 얻기 위해 좋은 사료를 공급받는 양계장의 닭과 똑같은 방식의 삶을 인간에게 요구합니다. 무한 경쟁체제의 또 다른 말인 효용성 중심의 세계에서, 그 안에 갇힌 모든 것들은 볏 색깔이 점점 바래져가는 줄도 모르고 알 낳기에 열심인 양계장의 닭처럼 자신의 생산력에 감탄하며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자랑스레 설파합니다.”(p.103)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은, 그런 면에서 세상 낮은 곳에 대한 절절한 애정입니다. 그 애정, 읽다보면 이 사회 시스템의 허점과 폐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스템의 전환이겠구나! 속된 말로, 돈 있는 놈만 꾸역꾸역 처먹는 지금의 구조로는 안 되겠구나. 역시나 얼마 전 만나 뵌 윤구병 선생님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 분들이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지금의 구조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곧 재앙에 직면하리란 예언(!). 저는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 번 주변을 둘러보세요. 마음 편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마음 놓고 사는 사람이 있는지. “요즘 돈 많이 받고 각광 받는 직업군이 증권맨이나 대기업에 있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조차 편하지 않아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득합니다. 경쟁을 통한 효율 중시 사회에선 사람이 중심이 아닙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려면, 피곤한 사람은 쉬어야 하고, 집 없는 사람에겐 집이 제공되고, 먹을 것 없는 사람에겐 먹을 것이 주어져야 합니다.  우린 알을 낳을 만큼 낳고 폐기되는 닭장 속의 닭이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부 속담에 대한 ‘다른’ 해석을, 아니 잘못된 해석을 일깨웁니다. 이 속담들, 한 번 봅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통념으로 해석됐던 말이죠. 하지만, 선생님은 이 속담이 실은 과정의 다양성을 훨씬 더 강조된 말이라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지만, 과정에 대해 중요시하지 않고 결과만 내놓길 바라는 것에 대한 일침 같은 것.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어떨까요. 미운 놈이 진짜 감정적으로 미운 그런 사람, 아니랍니다. 이 사회에서 어떤 이유로든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특히 소수자들이 살 궁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이 속담의 본질이라는 말씀. 한 번 곰곰 생각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온갖 부정을 해도 좋으니 오직 일등만 하라는 천박한 경쟁의 논리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으로 대치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p.58)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에서 미운 놈은 자신에게 피해를 준 나쁜 사람을 뜻한다기보다는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수자를 의미한다고 봐야 합니다... 누구의 이해와 도움이 없이는 정상적으로 활동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떡 하나 더 얹어주어 그 사회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공동체적 인식과 합의를 우리 조상들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으로 표현했던 겁니다.”(p.129)

지금, 우리의 국가, ‘진짜’ 국가 맞나요?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공공부조 의식의 결핍을 메우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서민들의 공공부조 의식이나 온정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터지면 십시일반하면서 나눔을 실천하는 그 많은 인민들, 가장 보통의 인민들을 보세요. 선생님께선 문제는, 바로 정책입안자나 힘 가진 사람들의 의식 부재라고 지적하십니다. 사회의 아픈 부분은 누군가의 시혜가 아닌 공공정책을 통해 치료해야 할 것임에도, 정부나 국가는 희한하게 ‘배째라’입니다. 국가가 국가의 의무를 못하면서, 뻔뻔하게 국민은 국민의 의무를 다 하라고, 강권합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죠.

재벌에 대한 정서가 나쁜 것. 딴 이유 있겠습니까. 그들이 사회의 고마움에 대해, 사회적 책임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이지요. 자신들의 상품을 사주고, 이용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네들이 컸지, 혼자 잘나서 그리 기업을 축조한 것으로 생각하는 뻔뻔함은 대체 무슨 몰염치랍니까. 개새끼들.  

국가가, 우리가 아는 국가가 아닌, ‘기업’국가로 전락한 지금. ‘천안함’ 사태는 단적으로 그것을 증명하는 사례가 아닐까요. 실종․사망한 대부분의 이들은, 국가 수호의 의무를 받들어 복역했음에도, 정작 국가는 국민 목숨을 지킬 의무를 방기한. 더구나 죽음에 대한 예우조차 못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이 짜증나는 혼란스러움. 선생님 말씀대로, “현 국가의 운영방식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가라는 것이 국민의 희생을 통해서 유지되는 건 아니잖아요. 정책을 통해 국민을 살게 해 줘야 하는데, 지금의 우리 국가는 그렇질 못합니다. 우리 영해에서 초기함이 가라앉았는데, 이유를 모르는 것도 그렇고, 우리 국방이 그렇게 허접이었습니까. 뭔가 감추는 게 있는 것 같은 은폐 의혹이 빨리 해소돼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도 국가를 신뢰 하죠. 제발 신뢰를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하긴 말로 하자면 밑도 끝도 없지요. 거짓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쇼’를 했다가 3개월 만에 복귀하신 엽전 회장님을 비롯해, ‘언론’이라는 허울로 가장한 엽전 찌라시들은 또 어떻고요. 선생님의 ‘무지개’라는 노래, 권합니다. 참, ‘엽전’이 뭔 뜻이냐고요?

“그러고 보면, 이 ‘엽전들’이란 말은 『허삼관 매혈기』의 "자라 대가리"처럼 찌질하고 궁상맞고 못난 것들이나 『완장』에 나오는 저수지 관리인 종술이처럼 서 푼짜리 벼슬을 조자룡의 헌 창인 양 휘두르는 어리석은 무리들, 또는 회장님 방귀 소리에 화장지 미리 갖다 바치는, 그야말로 알아서 척척 기어주는 딸랑딸랑 잔챙이 나리들의 능글맞은 웃음까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p.87)

“어떻게든 되겠지”에 담긴, “적당한 갈망, 지나친 낙관”

선생님의 작업은 그렇게 계속 이어질 겁니다. 비주류, 소수자에 대한, 낮은 곳을 향한 애정. 첫 책, 글모음집이 나왔는데, 앞으로도 선생님이 속한 부류의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글을 쓰고, 노래도 계속 부를 거랍니다. 더불어, 더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역사에 대한 접근입니다. 잊고 있는,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지만 꼭 기억해야할 어떤 역사들. 과제로 상정해 놓은 상태랍니다. 까레이스키와 일본군의 성노예로 고통당한 여성들. 20세기의 혼란스러운 국내외 정세에 휘둘려 삶을 송두리째 잃어야했던 우리의 역사, 우리의 상흔.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놓치고 있는. 계획대로 된다면야, 선생님은 오는 7월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과제 풀기에 나설 터인데, 한 번 기대해 봐도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글도, 노래도, 다 선생님의 필살기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할 거라고 하십니다. “대화 상대가 맞장구를 쳐주면 좋겠지만, 안 쳐줘도 좋습니다. 혼자라도 중얼거릴 겁니다. 기억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아, 물론 밥벌이를 위해서 중요하기도 해요. (웃음) 그래도 그런 걸로 나를 규정짓고 싶진 않아요.”

아, 그리하여, 5집 앨범도 올해 말이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실 생각이십니다. 음악은 다 준비가 됐으나 레코딩 등 여러 가지 함께 진행돼야 할 사항이 남아서 일정을 일단 그 정도로 잡으셨대요. 모쪼록 앨범도 얼른 나왔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건 아닙니다. 오는 6월부터 전국의 조그만 서점 등을 중심으로 강의콘서트, 북콘서트가 진행될 예정이랍니다. 출판기념회는 가을쯤? 늦게 한다고 누가 탓하겠어요.

이 모든 것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선생님 댁의 가훈에 수렴될 수도 있겠군요. 아, 이 가훈에는 함의가 당연 있는데, 간단하게 어떤 낙관 같은 거죠. 희망을 품는 일은 가만히 있는 게 아니고 움직이는 것임을. 그 다음 중요한 것은 낙관. “당장 안 된다고 조바심 낼 것이 아니고 꾸준히 하는 한 언젠가는 이뤄질 수 있다는 거죠. 독 짓는 늙은이 같은 심정입니다. (웃음) 사실 돈을 벌겠다고 벌리나요. 아무리 쫓아가도 안 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기왕 안 벌리는 거, 낙관을 갖고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무렴. 움직이고 싸워야죠. 적당한 갈망, 지나친 낙관. “희망의 방식으로 싸워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서 아름다워지는 투쟁이 필요합니다. 공동체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두터운 방호벽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소통을 가로막는 집착의 벽을 우리 스스로 허무는 희망의 싸움 말입니다. 요즘과 같은 절망의 시기에 이런 말을 드리면 욕하실까요? "적당한 갈망, 지나친 낙관."”(p.61) 다만, 이것은 조심에 주의하면서.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p.91)

알다시피, 쿠바혁명도 그렇게 성공했잖아요. “승리할 때까지 Hasta la victoria Siempre”. 더불어 안타까이 사그라졌지만, 1973년 9월11일, 선거를 통해 집권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인 칠레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쿠데타군의 해외 망명 제의도 거절하고 칠레 민중의 영원한 대통령으로 남겠다던 이 마지막 연설.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내 희생이 헛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렇게 선생님의 노래를 듣고, 글도 읽으면서, 기왕이면 노래도 함께 불러봅시다. 아니, 그런 기회가 있냐고요?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장마 무렵의 어느 날, 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세어보면서 막걸리에 파전 곁들여, 옥탑 작업실 혹은 놀이터에서 콘서트를 가지자고. 꼭 비 오는 날. 한바탕 놀아봅시다. 선생님이 마련해 주신다니. 까짓 거, 저도 막걸리 마시고 취하면 한 곡조 뽑아보렵니다. 다들 취한 마당인데다, 빗소리가 제 노랠 코러스도 넣어줄 텐데, 덩달아 사람을 노래하는 일에 동참해 보렵니다. 님하, 어때요? 함께 하실래요? ^^

일단 예습도 필요하니, 선생님의 노래나 글을 보자면, 블로그, ‘이지상의 발자국(http://blog.naver.com/chonchang)’나 ‘가수 이지상의 누리집(http://www.poemsong.pe.kr)’ 참조하시고요. 비 오는 그 날, 봅시다. 우리는 그렇게 잇닿은 사람들이 될 겁니다. 다행이에요. 선생님이 계셔서, 당신이 있어서. 또한 기다릴 수 있어서. 

그렇게 비가 오고, 당신이 내리는 날, 선생님의 이 노래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창밖엔 비가 내리고 (이지상 작사 / 이지상 작곡, 4집 음반 《기억과 상상》 중)

창밖엔 비가 내리고 늦은 침묵에 젖어서
읽다만 책장을 뒤적이는 이 뿌연 새벽
그립다 말은 못하고 애매한 웃음만 짓던
엊그제 너와의 만남을 다시 생각하면
사랑이란 얼마나 많은 기다림일까
창가에 얼룩진 눈물만큼의 세월일까
내리는 빗방울보다 더 많이 울었는데
반갑다 말을 하겠지 언젠가 널 또 만나면
으레껏 건네는 인사로만 웃고 있겠지
사랑한단 말하고픈 내 맘은 애써 감추며
아쉬운 커피 한 잔에 날 저물겠지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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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변호사니, 그런 게 뭔지도 모르던 시절.

함께 하숙하던 친구놈이 읽어보라고 툭 던져줬던,  
《전태일 평전: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


읽으면서 분노와 놀라움이 범벅된 줄줄줄, 읽고나서도 줄줄줄. ㅠ.ㅠ
아,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땅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왜 교과서는, 어른들은 이런 걸 알려주지 않았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감추고 싶은 자신들의 치부는 알려주지 않는 사람이고,
교과서는, 
지배세력에 반했던, 그러나 세상을 바꾼 일은 기록하지 않는 책이구나,
생각했었다. 

고 조영래 변호사님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어른이셨고, 세상을 알려준 책이자 교과서였다. 

마흔셋, 충분히 젊은 나이였다. 1990년 12월12일.

인권변호사로서 인권감수성과 인권실천력이야 두말해 잔소리고,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됐는데, 
문장력을 높이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셨단다. 

아, 《전태일 평전》은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니었구나!

오늘, 세계인권선언일.
이땅에서 인권일랑, 4대강 공사현장에서 포크레인에 짓밟히고 있는 시절.
아니면, 철권통치(현병철)로 인권(국가인권위원회)이 가출한 시절.

인권선언은 땅 파고 질러대야할 판이다. "임금님 귀는, 조까라 마이싱!"

모레(12월12일), 변호사님 20주기다.
고맙습니다. 어쩌면, 나의 첫 '어른'이었을지도 모를 조영래 변호사님... 

2010년.
뜨거웠던 청년 노동자, 전태일 40주기,
뜨거움을 세상에 전한 불씨 인권변호사, 조영래 20주기, 
'우상과 독단에 맞서 이성의 붓으로 진실을 밝힌 겨레의 스승' 리영희가 영면에 든 2010년.

우리는, 자꾸, 또 자주 '거울'을 잃는다.
괴물로 변하거나 변하고 있는 우리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런 겨울을.
진짜 어른, 눈 밝은 어른은 그렇게 떠나가신다.
추모와 슬픔은 물론, 거울을 살펴보는 것도 남은 자들의 몫이로구나.

‘인권 변호사 조영래’를 추억하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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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선생님의 이 말씀. "부음을 듣고 내내 마음이 울적하다. 육친도 아니고, 특별한 사적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 자유인 리영희 / 김종철

아, 리영희 선생님...
고맙습니다. 편히 잠드십시오...
눈 밝은 노장을 잃은 슬픔이 겨울위에 내려앉습니다...

저도, 눈 밝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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