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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8월4일 그날, 심장이 시켜서 하는 일…정든님 정은임 8년 전부터 이맘 때면, 심장이 시켜서 하는 일이 있어요. 느닷 없이 닥쳐온 사건에 심장은 때론 격하게 반응을 하죠. 그리고 특정 시간을 품은 심장은 때가 되면 몸과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 말을 다시 되씹어야 했던 그날. 2004년 8월4일.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꽃을 먼저 꺾어 식탁을 장식하듯, 신은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먼저 데려가 천국을 장식하신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울었습니다. 당시 울면서 썼던 누나에 대한 추모. ☞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일. 슬픔을 참고 견뎌내는 일 외에 그 사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 추모바자회를 열고 있습니다. 매년 8월4일, 1년에 단 하루, 심장이 시켜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 추모바자회를 열고 있어요. .. 더보기
지금이 아니면 안돼! 지금, 현재가 아니라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과거에 어떠했으며 미래가 어떨 것이란 개소리는 그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 그것이 사는 것이다. 변영주 감독, 존 레논의 'GOD'를 꺼내며 그것을 상기시킨다. 오롯이 믿을 것은 '지금'. 변절이니 뭐니 꺼낼 필요도 없겠다. 나는 지금을 산다. 현재를 산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변 감독의 이 말이 나를 더욱 자극시킨다.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딛고 서있는 공간에 대해 증명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40대라면 지금까지 해온 무엇보다 해야 할 무엇이 더 많기 때문이다." 더보기
'걷기'는 어떻게 '도시'와 내통하는가 도시였다. 도시. 내게 급작스레 던져진 화두. 태어나서 지금까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한 적, 없었다. 부산과 서울. 군대조차도 행정구역상 서울이었으니, 나는 저 두 곳에서 줄곧 서식하고 있다. 스물 셋, 잠시 미국에서 6개월을 꿈처럼 보냈던 외에는. 부산과 서울. 이 도시(들), 딱히 좋아한 것 같진 않지만, 익숙했다. 물론 언젠가 이 도시를 떠날 것이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고는 있다. 평생 살고 싶은 곳은 아니거든. 서울은 너무 빡빡하고 대체로 권위적이다. 드물게 반짝반짝 빛나는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부암동. 그곳은 서울(의 일부)이라기보다 그냥 부암동이다. 나는 그저 이 도시가 그닥 매력적이 아니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니 누구도 내 사는 곳이 도시가 아니라고.. 더보기
최동원, 부산 싸나이의 초상 1. 나는 한때, 이'동원'이었다. 누구도 그렇게 날 부르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지칭했다. 야구를 할 때, 마운드에 섰을 때, 나는 본디 이름이 아닌, 이동원이었다. 맞다. 최동원 때문이었다. 금테 안경을 끼진 않았지만, 소년 이동원은, 최동원의 역동적인 투구폼을 따라 온 몸을 비틀면서, 힘껏 야구공을 뿌렸다. 최동원의 투구폼을 아는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나는 투구폼뿐만 아니라 표정도 따라했다. 앙 다문 입술로 눈 앞의 타자를 제압하겠다는 번뜩이는 눈빛. 비록, 나의 공은 대부분 그곳이 아닌 저 어딘가, 를 향했지만. 땡깡을 부려 마운드에 오른 포볼 공장장이었지만. 나는 그때만큼은 최동원이고 싶었다. 그렇게 강속구를 뿌려댔으면 하는 바람. 아리랑볼 같은 마구로 타자를 꼼짝 없이 묶고 싶었다... 더보기
소중한 날의 꿈, 정은임 아무렴. 여름이 오면, 여름 안에서, 생각나는 그 사람, 누나 정은임. ☞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 얼토당토않게 6월에 추모바자회가 있을 거란 지난주의 오보 해프닝은, 아마도 8월의 누나를 빨리 보고파서 벌어진 일이겠거니. 오늘 본, 이 짧은 글이 눈을 시큼하게 만들었다. 킁킁. 특히 이 구절. "사람은 살며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충분한 인연이 있다. 때때로 나오는 그 분의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가에 알 수 없는 내 그리움이 나온다." 그리고 이 말도. "누군가의 꿈에 대해 귀담아 들어 주는 것이 얼마나 한 청춘을 가슴 뛰게 하는지." 나도 그런 인연이 있었고, 내 허술한 이야기와 꿈을 귀담아 들어 주던 그 사람 덕분에 한껏 가슴이 뛰었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 더보기
혜화동, 홍세화 선생님 오늘(3월30일) 여러 기분 좋은 사건 가운데, 가장 째지게 좋은 사건. 당신에게 속살속살하고픈 이야기. 아마, 당신도 이 얘길 들으면 함께 꺄아~하고 소릴 지르지 않았을까. 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혜화,동으로 향하던 길. 2호선에서 4호선을 갈아타는 통로 앞. 앗, 낯익은 얼굴. 갑자기 커진 동공. 홍세화 선생님!!!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버나드 쇼의 묘비명), 하는 후회에 대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꾸벅 인사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 그러니까, 1년 하고도 3개월여 전의 만남을 말씀드렸더니, 마침 선생님도 기억 나셨나봐. ^^ ☞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 스스로 묻는 소수와 함께 마침 선생님께서는, 대학로에 사회풍자연극인 를 보러 가시는 길. 나의 목적지도 대학로에 있었기에, 함.. 더보기
이토록 멋진 여성(들) 3월8일, 여성의 날. ☞ 우리, 아이 좀 낳게 해 주세요~ 네에~~ ☞ 남자는 맞아야 한다! ☞ '여성의 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침, 우리 쉐프(어머니)께 장미 한 송이 미리 건네지 못한 불찰은 아쉽고. 다만, 오늘 두 명의 멋진 여성들을 알현하고,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 나는, 그저 강호의 지질한 수컷. 아오~~~ 한 분은, 양동화 간사님. 21세기 최초의 독립국, 동티모르의 사메지역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공정무역 커피 산지를 가꾸고, 동티모르 사메 사람들의 지속가능한 삶과 커뮤니티를 위해 '번짐'을 실천하는 사람. 스스로는 그것을 헌신이라기보다 '놀이'라고 말한다. 뭣보다 올해로 5년째 그곳에 있는 그녀의 이 말. "나에겐 선택이었지만, 이 사람들에겐 삶이였어요." 나는 다시 이 명제를 생각한다. .. 더보기
세상 낮은 곳, 아픈 곳을 중심에 두고 노래해야 하는 이유 며칠 전, 금천구 사회적기업가 학교 수료식 축사를 하러 가서, 이지상 선생님을 뵀다. ^^ 그리고, 올해 지키고 싶은 약속 중의 하나. 비 나리는 어느 날, 이지상 선생님의 연희동 작업실에서 막걸리 한 사발. 지상 선생님의 멋진 음성과 어우러진 음악을 들으며, 승리할 때까지! 더불어, 세상 아픈 곳에 대한 인식과 실천. 그리고 많은 고마운 당신들이 보태준 응원에 대한 빚갚음. 올해 나의 약속을 지킬 수 있길. 그렇게, 세상에 건강하게 썩어들어갈 수 있길. 세상 낮은 곳, 아픈 곳을 중심에 두고 노래해야 하는 이유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쿠바 독립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며, 문인이자 정치가·혁명가였던, 체 게바라의 사상에도 큰 영향을 준 이 사람, 호세 마르티(Jose Marti, 1853.1.28~18.. 더보기
'전태일' 알려주던 어른, 인권변호사니, 그런 게 뭔지도 모르던 시절. 함께 하숙하던 친구놈이 읽어보라고 툭 던져줬던, 《전태일 평전: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 읽으면서 분노와 놀라움이 범벅된 줄줄줄, 읽고나서도 줄줄줄. ㅠ.ㅠ 아,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땅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왜 교과서는, 어른들은 이런 걸 알려주지 않았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감추고 싶은 자신들의 치부는 알려주지 않는 사람이고, 교과서는, 지배세력에 반했던, 그러나 세상을 바꾼 일은 기록하지 않는 책이구나, 생각했었다. 고 조영래 변호사님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어른이셨고, 세상을 알려준 책이자 교과서였다. 마흔셋, 충분히 젊은 나이였다. 1990년 12월12일. 인권변호사로서 인권감수성과 인권실천력이야 두말해 잔소리고,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 더보기
아, 리영희... 김종철 선생님의 이 말씀. "부음을 듣고 내내 마음이 울적하다. 육친도 아니고, 특별한 사적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 자유인 리영희 / 김종철 아, 리영희 선생님... 고맙습니다. 편히 잠드십시오... 눈 밝은 노장을 잃은 슬픔이 겨울위에 내려앉습니다... 저도, 눈 밝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