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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미디어

미디어가 '꺼리'를 소화하는 방식 '변-신'이면 모를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대다수 미디어들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꺼리'에만 함몰돼 있을 때, 그는 지속적으로 기사를 생산하면서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머나먼 소말리아에서 당하고 있는 선원들의 고통은, 아니, 정확하게는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고통 따위는, 대다수 (주류)미디어로부터 환대는커녕 시선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바로 앞서 있었던 아프간 인질 사태와도 확연히 다른 풍경. 물론 국제정세나 사태의 주체 등 주변 변수들의 차이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래도, 그는 꿋꿋이 자신이 책임져야할, 저널이 맡아야할 책임을 끝까지 완수했다. 피로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자신이 낳은 기사가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감금돼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선원들.. 더보기
'외국인노동자' 아니죠~ '이주노동자' 맞습니다~ '외국인노동자'보다는 '이주노동자'가 더 적합한 이유. 외국인노동자는 "한국 사람이 아닌 외국에서 온 노동자"를, 이주노동자는 "노동하기 위해 생활 터전을 옮긴 노동자"를 의미한다. '이주노동자'는 외국인이라는 국적의 차별성을 강조하던 기존의 명칭 대신 노동자라는 동질성에 주목하고, 사실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던 곳을 옮겨가며 노동한다는 이주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 620호 '이주노동자영화제를 가다' 중에서 - 나도 이주노동자다. 생활 터전을 타국으로 옮기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노동의 터전을 옮겨가며 노동하고 있다. ^^; 그래서, 어디에서 오건, 국적이 어떻건, 우리는 '노동자'라는 테두리에서 동질성을 갖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노동자 역시, 여기에 살아온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는.. 더보기
그대들은, 정녕 '빈곤'에 관심 없는갸~ 오늘(10월 17일)은 '세계빈곤퇴치의 날'. 1993년 UN총회에서 정한 날로서 지구촌 곳곳에서 이날 '빈곤에 반대하는 지구적 호소(Global Call to Action against Poverty, GCAP)' 캠페인이 진행된다. 몇몇 사회단체 등은 이날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이라는 행사도 갖고, 빈곤에 대한 관심 촉구를 위한 콘서트도 열린다. '화이트밴드 콘서트'. 왜 화이트밴드냐고? 특정한 날을 정해 뜻을 함께 하는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흰 띠(White band)'를 착용해 빈곤 퇴치를 위한 실제적인 행동을 촉구한다는 의미다. 다수빈국과 소수부국의 불균형. 알다시피, 빈곤은 심화되고만 있다. 빈곤은 어디에도 널려있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소수의 부자는 다.. 더보기
[한뼘] 당신이 '커피'를 마시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당신이 커피를 마실 때나, 다이몬드를 살 때나, 필요한 것. 개인의 선택과 취향에 따른 것임에도 당신의 세계는 당신만의 것이 아니기에. 물론 스타벅스나 다이아몬드를 구입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마시고 사자는 것.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도 쉽게 접하고 마시는 커피가 어떻게 재배돼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 손에 오는 지. "다이아몬드를 구입하고 향유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이 영화는 그런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개인의 선택에 있어 사전에 제대로 된 정보가 주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소비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앞에 오게 됐는지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결국 세계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다이아몬드 하나에 국한.. 더보기
"세상에는 '변-신'보다, '디워'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작금의 미디어판을 보자면, 전자양판점 광고에 나오는 '현영'씨가 이렇게 말하며 당장 뛰쳐나올 것 같다. "신OO에 지쳤어요~ 변OO에 지쳤어요~ 땡벌 땡벌~~" '변-신' 쓰나미는 이미 한국을 덮쳤다. 모든 흥행요소를 갖추고. 싫으나 좋으나 미디어에 둘러쌓인 나는 이 시덥잖은 쓰나미에 얼마나 더 휩쓸려야할 지 솔직히 짜증이 난다. 안 보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솔직히 당분간 여기를 떠나있고 싶다. 그런 한편으로, 나는 다른 중요한 일을 만나고 싶다. '지금-여기'의 주류 언론 대부분은 '중립' '불편부당' '공평무사' 등의 가치를 내세운다. 그리고 기사 게재 또한 이에 입각하여 기준을 세워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그들은 약자를 보호하고 인권을 옹호하며, 그들의 고통에 동감한다고 말 붙인다. .. 더보기
[정은임④] 정은임을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 * 오는 8월4일 3주기에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추모바자회가 열린다. 그날 하루만이라도 정.은.임.을 다시 추억해도 좋으리. 혹시나 바자회에 참여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세상을 꿈꾸는 하루. 서울역점에서 열린다니, KTX승무원들을 다시 떠올린다. 500일을 넘어서 계속되고 있는 그들의 투쟁. 은임이 누나라면 어떤 멘트를 던지면서 그들을 지지하고 있을까. 바자회 준비를 하며 작성했던 보도자료. “우리는 당신을 잊지 못합니다. 당신을 통해 우리는 ‘좋은 세상’을 꿈꿨고, 세상과 영화가 공히 만나는 당신의 음성을 통해 우리네 생을 위로받았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좋은 세상’을 꿈꾸었을 당신을 위해 남은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 명 한 명 정은임 .. 더보기
[정은임③]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2006. 8) 시간은 여지없이 흘렀다. 2006년 8월. 누나가 떠난 이후로 2년. 내 생도 그랬지만 세상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눅눅하고 부조리했다. 한여름이 그러하듯. 그렇지만 꿈을 꿔야했다. 그 어느해 에서 파업전야를 전파에 띄우던 날. 누나는 늦기 전에 시작하자는 이야기를 건넸다. "한방울의 물이 모여서 거대한 폭포가 이루듯 우리 한 사람의 힘이 점점 파문을 일으키면 뭔가가 변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며 우리를 선동(!)했다. 누나의 2주기. 그때 나는 다음에 있었다. 8월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누나가 다시 찾아왔다. 어쩔 수 없다. 한여름이 닥치면, 8월이 오면, 나의 대뇌피질은 파블로브의 개처럼 조건반사한다. 영상회가 있다고 했다. 궁금했다. 정은임이, 정은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만났다. 추억.. 더보기
[정은임②] 근 1년여 만에 다시 꺼내보는 당신의 이름입니다 (2005. 8) 그리고 1년이 지났다. 한 사람의 부재가 불러온 균열. before 와 after 의 간극.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죽지 않는 이상 일상의 힘을 이겨낼 재간은 없다. 일상의 힘은 세다. 그걸 버티고 견뎌내는 것이 장삼이사의 생이다. 누나가 떠난 1년. 세상은 어찌할 수 없는 소용돌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절망을 이겨낼 힘 역시 일상이었다. 생은 그래서 언제나 'on air'다. 누나가 떠난 1년 뒤, 여전히 나는 미디어오늘에 있었다. 기자수첩을 쓸 차례였는데, 딱히 다른 것도 없고, 시기도 누나를 떠나 보낸 1년이 다 된 시점이었다. 그래서, 누나에게 묻고 싶었다. "잘 지내세요" 혹은 "오겡끼데쓰까" 참 오랜만이죠? 근 1년여 만에 다시 꺼내보는 당신의 이름입니다. 잘 지내시나요... 더보기
[정은임①]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2004. 8) 정든님, 정은임 누나가 떠나던 해. 그해 여름. 그리고 떠나던 그날. 많은 비가 흐르고 있었다. 눈물처럼. 자신만의 분명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던 '착한 미디어' 정은임. 무슨 이유에선지 당시 나는 무엇이든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미디어오늘에서 기자칼럼의 형식을 빌어 누나의 명복을 빌고 나름의 추모사를 썼다. 그리고 3년. 세상의 엄혹함은 강도를 더하면 더했지, 전혀 나아질 기미는 없다. 이랜드, KTX... 다시 다가오는 시즌. 만약 살아있다면 누나는 어떤 말을 우리에게 건네줬을까.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www.worldost.com 그들에겐 다시 정은임을 꺼낼 시간. 3년 전, 누나를 그리며 썼던 추모글. 다시금 정은임 추모기간.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 [기자칼럼] 정은임 .. 더보기
성년의날에 생각하는 미디어와 세계관 세계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가진 것이 세계관이지. 넓고 깊음, 스펙트럼의 분화와는 아무 상관 없이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가지는 자신만의 생각. 뭐 '형이상학적 관점에서의 세계에 관한 통일적 파악'이라는 백과사전식 정의는 걍 어려우니 무시. 누군가가 아무리 잘났더래도 세계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현실세계를 살면서 좋으나 싫으나 가지게 되는 것. 그게 세계관이지. 그런데 그 세계관의 형성은, 나를 둘러싼 주변의 총합이다. 세계관 형성의 원인을 하나로 규정하는 건 바보짓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합체다. 합! 변신합체로봇. 용광로처럼 한데 녹여내기도 하지만 샐러드처럼 각기 다른 것들이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기도 하지만 의식적인 선택도 가능하다. 무의식이야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니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