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

일하는 여성이 바꾸는 서울, 기대해도 되겠죠?^^ 서울시가 여성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선다고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이를 위해 ‘서울시 여성창업 플라자’를 만들고, 사회적기업·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조직 300개를 지원하기로 했고요. 아울러 3150개의 맞춤형 직업훈련과정은 물론 1만 4738개의 사회적 공공일자리를 제공하기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서울시는 지난 4월 10일 점포형 창업보육공간인 ‘여성창업 플라자’를 개관하면서 4만2천여 개의 여성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한 ‘2013 서울시 여성일자리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대책은 △여성창업 지원을 핵심으로 △직업훈련 △ 여성친화기업 발굴 및 협력 △사회적 공공 여성일자리 창출 등 4개 분야 12개 정책을 담았습니다. 서울시의 이 같은 여성일자리 확충은 여성들의 사회활동 확대 추세와도 맞물리는 것으로 .. 더보기
카메라를 들고 혁명을 갈구하다, 티나 모도티 카메라를 들고 혁명을 갈구하다, 티나 모도티(Tina Modotti) (1896.8.16~1942.1.5) 본질보다 그것을 압도하는 어떤 이미지에 의해 평가나 주목을 받는 경우가 있죠? 그건 안타까우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해요. 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기도 하겠는데요. 이 사람, 티나 모도티(Tina Modotti)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그의 본질을 말하자면, 사진작가입니다. 그리고 체제 전복을 꿈꾸던 혁명가이기도 한. 하지만,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보다 다른 작가가 찍은 누드사진 모델로 더 알려졌고, 사진대가인 에드워드 웨스턴의 연인이나 조수로 기억되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뭐랄까요. 로댕에 가려졌던 까미유 끌로델을 연상시킨 달까요. 티나는 또 영화배우로서도 활동했는데요... 더보기
타인의 고통에 삼투압한 세계의 지성,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에 삼투압한 세계의 지성, 수잔 손택(Susan Sontag) (1933.1.16~2004.12.28) 미국 최고의 지성 중 한명인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미국이 나락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력으로 힘을 과시하고자 했던 미국의 패권욕에 제동을 걸고, 세계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고자 현실 참여와 감수성의 자극에 힘을 쏟았습니다. 2003년 10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독일출판협회는 수잔에게 "거짓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왔다"는 찬사를 하면서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하나의 상징적인 일례입니다만, 수잔은 문학가이면서 현실에 끊임없이 삼투압한 운동가였습니다. 하긴, 문학이라는 것이 현실과 유리된 채 존재할 .. 더보기
권력에 굴하지 않았던 용기 있는 언론인, 캐서린 그레이엄 뭉뚱그려 싸잡아서 매도할 생각은 없지만, (분명 그렇지 않은 소수도 있으므로!) 지금-여기의 많은 언론은 그들 스스로가 자처하듯, ‘사회의 목탁’이나 사회적 ‘공기(公器)’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건,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박제된 역사에 지나지 않을런지도 모르겠다. 뭐 혹자는, "기업의 ‘기획의도’대로 기사를 작성해주는 홍보 대행업체에 가깝다"고 혹평을 하는데, 이건 거의 진실에 근접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론계에 종사하는 내 어떤 동료들은 가끔 자조하듯,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기자 아닌 타이피스트일 뿐이고~" 전직 언론계 종사자로서, 능력도 하잘 것 없었지만, 그 같은 수렁에서 더 깊게 발을 빠트리지 않으려고 빠져나온 나로서는, 여전히 언론계에 대한 어떤 애정을 품고 있음에도, 지금의.. 더보기
혁명과 사랑의 마에스트로, 엠마 골드만 혁명과 사랑의 마에스트로, 엠마 골드만(Emma Goldman)(1869.6.27~1940.5.14) 사랑과 혁명은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죠. 말하자면, 둘 다, 불온합니다. 혁명은 그렇다손, 사랑이 왜 그러냐고요? 하하, 사랑의 속성을 곰곰 생각해본다면 고개를 끄덕이실 거예요. 맞아요. 사랑은 모든 것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을, 세계를, 우주를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도 혹은, 달라지게 하는 것이 사랑이죠. 그것은 어쩌면 혁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죠. 불온한 사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그 자체로 불온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혁명가의 사랑, 사랑의 혁명가는 온통 불온함으로 가득합니다. 기성세대와 지배세력이 해석할 수 없어 막연하게 공포를 가지는 그 무엇, 불온. 그것은 때론 세상을 바꾸고 뒤.. 더보기
행복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만든 사람, 타샤 튜더 행복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만든 사람, 타샤 튜더(Tasha Tudor) (1915.8.28~2008.6.18) "나는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적는다. 찬탄할 만한 직업인데 왜들 유감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가정주부라서 무식한 게 아닌데.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을." 여기, '가정주부'라는 호칭 혹은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사람이 있습니다. '타샤 튜더(Tasha Tudor)'. 잘 가꿔진 정원과 자연 친화적인 삶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졌던 사람입니다. TV나 책 등을 통해 그의 이름과 정원 혹은 철학을 접하신 분들, 많을 거예요. 사실 그는 100권이 넘는 책에 그림을 그렸으며 미국에서 매년 최고의 그림책에 주는 '칼데콧상'을 받은 저명한 그림작가입니다. 그.. 더보기
전쟁으로 피폐한 사람들의 마음에 힘을 불어넣은 디바, 디나 워싱턴 전쟁으로 피폐한 사람들의 마음에 힘을 불어넣은 디바, 디나 워싱턴(Dinah Washington) (1924.8.29~1963.12.14) 세상엔, 훌륭한 재즈 디바들이 많죠.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줄리 런던(Julie London), 사라 본(Sarah Vaughan), 니나 시몬(Nina Simone), 디나 워싱턴(Dinah Washington)... 그 가운데, '블루스의 여왕(Queen of the Blues)'이라 불린 디나 워싱턴은, 가스펠풍의 독특한 창법으로 재즈를 소화한 최고의 디바 중 한명이었습니다. 디나의 본명은 '루스 리 존스(Ruth Lee Jones)였어요. 고향은 앨라배마주 터스컬루사지만 어릴 적 가족이 이사.. 더보기
마르크스를 만든 결정적인 동반자, 예니 마르크스 가난과 질병, 정치적 박해 속에서도 빛난 카를 마르크스의 절반, 예니 마르크스(Jenny Marx) (1814.2.12 ~ 1881.12.2) 마르크스를 만든 결정적인 동반자 "카를 마르크스의 절반이 여기 잠들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경제학자이고 혁명가로서 『자본론』의 저자인 카를 마르크스의 부인이자 혁명동지인 '예니 마르크스'의 묘비명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절반. 카를의 명성과 업적에는 예니의 몫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표현이죠. 혹자는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평생을 추방과 가난에 시달린 마르크스에게 힘의 원천은 예니 마르크스였다." 과연 예니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독일의 트리어의 명문귀족가에서 태어난 그는 진보의 기운을 받고 자랐습니다. 트리어는 당시 독일에서.. 더보기
세상에 공명한 아프리카의 목소리, 미리엄 마케바 세상에 공명한 아프리카의 목소리, 미리엄 마케바(Miriam Makeba) (1932.3.4~2008.11.9) 2008년 11월, 아프리카에서 별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마마 아프리카'로 불리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가수 미리엄 마케바. 향년 76세였습니다. 어떤 가수는 무대에서 노래 부르다가 죽는 것이 가장 영광이라고 했다지만, 그는 정말 그런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에서 열린 한 자선공연.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한 마지막 순서를 마친 직후 쓰러졌어요. 앵콜을 외치는 함성이 거듭 울려 퍼졌지만, 갑작스런 심장마비로부터 그를 구해낼 순 없었습니다. 이 공연은 저서 『고모라(Gomorra)』 때문에 마피아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는 작가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신변 보호 촉구를 위해 열.. 더보기
시대를 풍미한 강렬한 목소리, 로테 레냐(Lotte Lenya) 시대를 풍미한 강렬한 목소리, 로테 레냐(Lotte Lenya) (1898.10.18~1981.11.27) 오스트리아의 가수이자 배우, 로테 레냐는 한 시대를 풍미한 목소리였습니다. 그 목소리는 그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였어요. 남편이었던 쿠르트 바일의 음악과 상생하면서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던 것도,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뮤지컬 드라마를 빛낸 것도 그의 목소리였어요. 무엇보다 그의 목소리는 당차면서도 흡입력이 대단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딱딱 끊어지는 독일어로 한번 들으면 쉬이 잊히기 힘든 목소리일 정도로 강렬했고요. 가톨릭 신자의 부모 밑에서 태어난 레냐는, 어릴 적부터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재원이었어요. 오스트리아에서 16세에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한 그는,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1920년까지 취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