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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에 해당되는 글 86건

  1. 2008.11.06 골드미스(Gold Miss) by 스윙보이
  2. 2008.11.06 알파걸(Alpha Girl) by 스윙보이
  3. 2008.11.06 동심을 찬양한 작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by 스윙보이
  4. 2008.11.06 권력을 사랑한 사람, 쑹메이링(송미령) by 스윙보이
  5. 2008.11.04 미국 여권운동의 선구자, 루시 스톤 by 스윙보이
  6. 2008.11.04 쿨머니(Cool Money) by 스윙보이
  7. 2008.11.04 핫머니(Hot money) by 스윙보이
  8. 2008.11.03 스포츠맨? 스포츠우먼은 어디? by 스윙보이
  9. 2008.11.03 '스턴트맨'도 배우랍니다 by 스윙보이
  10. 2008.11.03 해가 지지 않는 영원한 잉글랜드의 왕, 엘리자베스 1세 by 스윙보이

골드미스(Gold Miss)

최근 한 지상파방송에 <골드미스가 간다>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최근 쉽게 접해보셨을 거예요. '골드미스'라는 말.
올드미스가 아닌, 골드미스는 과연 무엇일까요.

골드미스는 사실 마케팅 용어입니다.
30대 이상 40대 미만의 결혼하지 않은 여성 중,
탄탄한 직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사회적․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는 계층을 의미하죠.
이들은 나름 독신생활을 즐기면서 자기계발에도 소홀하지 않은 모습을 보입니다.

골드미스는 말하자면, 사회가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나타난 용어입니다.
결혼연령이 늦춰지는 사회적 변화와 함께 사회생활에서의 성차별도 약해지고,
독신생활을 즐기는 부류가 늘어난 변화상을 반영한 것이죠.
일본에서는 하나코상(Hanakoさん)이란 유행어도 있다는 군요.

마케팅에서 활용되는 이들의 구체적인 조건을 보자면,
대졸이상의 학력, 고소득을 가지는 전문직 혹은 대기업 사원, 연봉 4천만원~1억원, 아파트 혹은 자산 규모가 8000만원 이상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공략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성취욕이 높고 자신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구매력이 높은 층이거든요.
마케팅 업계에서는 이들이 쇼핑과 해외여행 등 감성적인 만족을 위한 소비행위를 많이 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에 결혼정보업계, 여행업계, 패션업계, 미용업계, 외식업계 등이 이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전략을 선보이곤 하죠.

그러나 이 말이 때론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요.
오죽하면 '플래티넘미스(업그레이드된 골드미스로서 연봉 1억원 이상을 뜻하는)'란 말도 등장했는데요. 
냉정하게 보자면,
이 말들은 새로운 소비층을 찾아내려는 마케팅이 만들어낸 허상입니다.
일의 성취도나 내면적 성숙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모습을 드러내기보다,
소득수준, 소비성향 등 외피에만 매달린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세상엔 무엇보다 골드미스가 아닌 사람들이 훨씬 많거든요.

(※참고자료 : 위키백과)

위민넷 - 키위, 지식센터 (기고)

Posted by 스윙보이

알파걸(Alpha Girl)

요즘은 그래요.
여성들이 남성보다 뛰어난 존재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죠. 신문․방송을 보면 그런 경우들이 많이 드러나요.
그래서 요즘 많이 쓰이고 있는 말 중의 하나가, '알파걸(Alpha Girl)'이죠.

미국의 아동심리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댄 킨들존이 명명한 이 말은,
공부,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분야에서 남학생들을 능가하는 여성을 뜻합니다.
2006년 출간한 자신의 저서인 『새로운 여자의 탄생-알파걸』에서 이를 처음 썼죠.

알파걸은 그리스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파(α)를 따서 만든 용어에요.
말하자면, 첫째가는 여성을 뜻하는 말이죠.
킨들존의 정의는, 높은 사회성과 강한 리더십을 보이는 10대 소녀들을 지칭했습니다.
미국 여학생 중 약 20%가 이에 해당한다고 보면서,
학업(공부),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학생을 능가하는 엘리트 소녀들을 말한 거죠.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단지 10대 소녀 뿐 아니라,
능력과 자신감을 갖추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을 통칭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여자와 남자는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만큼 자신의 능력도 있음을 증명하고 있고요.
물론, 아직 높은 자리에는 남성들이 득세하긴 하는 현실이지만,
그들이 좀더 연륜을 쌓고 양성평등의 인식이 확산된다면 얘기는 좀더 달라지겠죠.

한편으로 이 말은 엘리트집단의 여성만을 부각시켜,
그렇지 못한 여성, 이른바 '베타걸'로 불리는 여성을 소외시킨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알파걸의 부각은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문제가 간과될 수 있는 맹점이 있어요.
여성 비정규직의 증가(여성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67.6%) 등과 같은 문제죠.
알파걸은 일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데,
이것을 여성들의 득세로 보는 시각도 문제가 있습니다.

(※참고자료 : 네이버오픈백과)

위민넷 - 키위, 지식센터 (기고)

Posted by 스윙보이

동심을 찬양한 작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Frances Hodgson Burnett)

(1849.11.24~1924.10.29)

아마, 어릴 적 책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접했을 것 같은데,
『소공자(Little Lord Fauntleroy)』(1886), 어땠나요?
뉴욕 뒷골목에서 어머니와 살고 있는 세드릭 에롤이, 어느 영국 귀족의 상속자로 판명돼,
영국의 할아버지 집에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소설.
맑고 순수한 동심인 세드릭이 악덕 지주인 할아버지를 물들이는 과정이 찡했죠.
당시 19세기 패션계에 레이스 칼라를 유행한 작품이기도 한, 『소공자』, 기억나시죠?

그렇다면 이건 어때요. 『소공녀(A Little Princess)』.
부잣집 딸로 런던의 기숙사 학교에서 대접 받으며 지내던 세라 크루가,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행방불명으로 하녀로 전락했다가 다시 행복을 되찾는 소설.
일종의 신데렐라 이야기로 운명의 반전이 절묘했었죠.
1980년대 방영된 <소공녀 세라>도 참 재미나게 봤던 기억도 나요.
이 소설은 1888년 'St. Nicholas'라는 잡지에 <Sara Crewe or What Happened at Miss Minchin's>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다가, 1903년 연극으로 각색하면서 지금의 제목인 『A Little Princess』로 변경돼 1905년 책으로 출판됐지요.
국내에서 통용되는 '소공녀'는 일본식 한자를 옮기면서 정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두 소설은 대체로 그래요.
어린이의 동심과 순수함에 대한 찬양이 눈에 띄죠.
특히 아이들은 어려운 현실에 굴하지 않고 이를 이겨내는 장한 존재죠.
반면 어른의 위선과 몰염치, 몰인정 등은 이에 대비됩니다.
섬세한 필체가 이를 부각하는 한편, 우연이 겹겹이 쌓인 구조는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게 보이게도 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쓴 소설들이죠.
작가는 프랜시스 버넷(Frances Burnett)입니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그는,
5살 때 철물점 주인이었던 아버지의 사망을 겪었고,

16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살게 됩니다.
당장의 생계 문제로 고민할 수밖에 없던 가정환경이었던지라,
그는 어린 나이부터 생계형 글쓰기에 나서요.
1868년부터 여성잡지와 패션잡지에 자신의 글을 발표했고,
편집자가 그의 글 솜씨를 알아본 덕에, 책도 내게 됩니다.


프랜시스는 영국과 미국을 오간 자신의 경험을 살려,
자신의 글에서도 양국을 오가거나 다른 나라를 함께 담으면서 글을 많이 씁니다.
특히 그의 글에 나타난 동심은 거의 찬양에 가까운데요,
《비밀의 화원》등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기조는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을 정도죠.
자신도 이혼을 겪고 나름 불우한 환경을 거치기도 했지만,
그의 소설은 따뜻하고 감성이 풍부한 것이 장점으로 지목받고 있어요.
아마도 그것이 그의 소설을 세계명작으로 자리 잡게 한 큰 요인이기도 하겠죠.

(※참고자료 : 위키백과, 두산백과사전)

위민넷 - 키위, 여성을 말하다 (기고)

Posted by 스윙보이

권력을 사랑한 사람, 쑹메이링(송미령)
(1897.3.5~2003.10.23)

중국의 정치가이자, 대만을 지배한 장제스(장개석).
그의 곁에는 유능한 파트너가 있었습니다.
쑹메이링(송미령, 宋美齡).

그 이름을 잘 모르겠다면, '쑹자매(송자매)'라고 들어보셨어요?
중국 근대사의 아주 유명한 자매인데,
감리교 목사이자 은행업과 출판업으로 부를 축적한 찰리 쑹의 세 자매를 뜻하는 말이에요.
세 자매의 각기 남편은 모두 20세기 초 중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고요,
약간 과장하자면, 그들의 역사가 20세기 초 중국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맏이 쑹아이링(송애령)은 부유한 은행가, 쿵상시와 결혼해 '돈을 사랑한 사람',
둘째 쑹칭링(송경령)은 중국 건국의 아버지, 쑨원과 결혼해 '중국을 사랑한 사람',
지금 얘기하는 쑹메이링은 장제스의 부인이자, '권력을 사랑한 사람'으로 지칭되고 있지요.
참, 재미난 자매죠?

쑹메이링은 찰리 쑹의 여섯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나,
부유한 집안 덕분에 8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미모, 언변, 교양, 재력…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재원이었습니다.
상하이 사교계의 꽃으로 이름을 날린 그에게 뭇남성들의 청혼도 줄줄 이어질 정도였죠.
그랬던 그가, 23살 되던 해인 1920년 장제스를 만났습니다.
당시 장제스는 결혼을 한 상태로 그보다 11년 연상이었던 데다, 종교가 달랐습니다.
더구나, 그는 유학시절부터 사귀던 남자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맏언니의 설득이 차츰 먹혀들어가죠.
"너는 장제스와 결혼하는 것이 아니고 중국을 통치하는 황제와 결혼하는 거야."
이는 퍼스트 레이디를 꿈꾸는 그의 야망과도 어우러집니다. 

쑹메이링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고, 여자관계가 복잡하다고 알려진 장제스였지만,
장제스가 이혼을 하고, 개신교로 개종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1927년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쑹메이링은 결혼 이후 장제스의 통역이자 수행원으로 활약했고,
영어 번역가, 비서, 조언자로서 역할을 합니다.
이와 함께, 신생활 운동을 펼치면서 중국 정치에도 활발하게 관여했습니다.
그는 외교술도 뛰어났으며 정치적인 역량 또한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그의 보좌를 받으며 장제스는 장군이 되고 국민당 총수가 됐으며,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대미관계 조정에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이른바 '차이나로비'의 주역이 됐습니다.
양국의 문화에 모두 익숙한 것도 큰 도움이 됐겠지만,
그가 가진 캐릭터도 양국 모두에서 인기를 받았습니다.
미국 방문에서 3만명이라는 인파를 모았고,
타임지 선정, '올해의 남편과 부인'(1937)에 뽑힌 것을 비롯 '용의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타임지 표지를 두 차례나 장식했을 정도였어요.


쑹메이링은 국민당에서도 폭넓은 활동을 했어요.
국민정부 입법위원·항공위원회 위원·비서장·부녀협회 실생활운동 이사장을 역임했고요.
1936년 장쉐량(장학량)이 납치․구금하고 제2차 국공합작을 요구한 시안(西安)사건 때는,
시안으로 직접 들어가 저우언라이(주은래 周恩來)과 단독면담을 한 끝에 장제스를 석방시키기도 했습니다. 항일전(抗日戰)과 공산당과의 내전 중에는 상이병 간호·난민대책 등을 지휘했어요. 

또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활용, 그는 1942년 미국 각지를 돌며 지원강화를 호소했고요, 
이듬해 2월에는 중국인으로선 최초, 여자로서는 두 번째로 미국 의회에서 원조를 요청하는 연설도 했고, 기립박수를 받을 정도였어요.
당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선교사가 중국에 예수를 전했듯이,
쑹메이링은 미국에 중국을 알렸다고 극찬했습니다.

그런 쑹메이링의 노력도, 1949년 중국 내전에서 국민당 정부의 패배로 빛이 바랬습니다.
그는 남편을 따라 타이완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맏언니 쑹칭링은 중국 본토에 남아 중국공산당을 지지했고,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을 지냈지요.
1981년 쑹칭링 사망직전, 중국 정부는 쑹메이링에게 전보를 쳤으나 그는 가지 않았어요.
두 자매는 1949년 중국대륙이 공산화 이후 헤어졌고,
'세기의 이산자매'가 돼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하튼, 쑹메이링의 국제적인 인지도는 계속 유효했습니다.
중화민국의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국제 적십자사 후원자, 대중국 영국연합원조기금 명예의장, 최초의 권리장전기념회원 등을 역임했어요.
1960년대 후반에는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가장 존경하는 10인의 여성'에 계속 포함되기도 했었답니다.

쑹메이링은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1975년 장제스가 죽은 후 활동을 줄이다가 1978년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고,
2003년 3월 106번째 생일까지 맞은 뒤, 그해 10월 뉴욕 맨해튼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참고자료 : 위키백과, 두산백과사전, 『송미령 평전』(진정일 지음/이양자 번역/한울 펴냄))

위민넷 - 키위, 여성을 말하다 (기고)

Posted by 스윙보이

미국 여권운동의 선구자, 루시 스톤(Lucy Stone)
(1818.8.13~1893.10.18)

미국에선 결혼했을 때, 아내가 남편의 성(姓)을 따르는 경우가 많죠.
지금은 그것이 법적으로 강제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관습처럼 그리 하는 경우가 있죠.

그런데, 과거에는 그것이 법률로 정해져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좀 어이없지만,
그런 법률은 여성을 남성의 종속물로 여기는 당시 사회의 인식을 대변하는 셈이겠죠.

여하튼 그런 엄한 시대에, 한 당찬 여성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이름을 그대로 쓰겠다고. 그 사람, 루시 스톤(Lucy Stone)입니다.
37살 되던 해인 1855년 노예제 폐지론자인 헬리 B. 블랙웰과 결혼한 그는, 자신의 원래 이름을 그대로 썼습니다.
결혼 후에도 자신의 이름을 유지한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돼 있죠.
기혼여성에게 적용되는 불평등한 법률에 대한 항의였습니다.
자신의 원래 이름을 쓰겠다는 그의 의지는 분명했습니다.
이런 말을 남겼을 정도로.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도 남편의 성을 따를 필요가 없다. 나의 이름은 나를 드러내는 정체성이며 그것을 잃어선 안 된다(A wife should no more take her husband's name than he should hers. My name is my identity and must not be lost)."
나중에는, "Maiden Name"(여성의 결혼 전 성)을 지키는 운동을 하는 여성운동 단체인, '루시 스톤 리그(Lucy Stone League)'까지 만들어졌지요.

루시 스톤의 여성권리에 대한 자각은, 어릴 때 받은 차별에서 일깨워졌습니다.
1818년 8월13일, 매사추세츠의 한 농장에서 9남매의 여덟째로 태어난 그는,
뛰어난 학습능력에도 교육기회를 오빠에게 뺏기는 등 설움을 받은 거죠.

그러나 그 정도로 루시 스톤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현실이 자신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고 그냥 주저앉는 사람은 아니었죠.
여성에게 입학이 허락된 유일한 대학인 매사추세츠 주에 위치한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교(Mount Holyoke College)에 들어갔습니다.
이 학교는 미국 최초의 여자 대학교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자 대학교입니다.
그는 졸업 뒤 매사추세츠 노예제폐지협회의 강사가 됐어요.
또 협회로부터 여성의 권리에 대해 연설할 수 있는 시간을 얻어내는 등,
그는 세상의 차별과 맞서 싸우는 투사가 됐습니다.


루시 스톤은 여성 참정권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사실 여성이 선거에 참여할 권리를 획득한 것은,
선거의 역사에 비춰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공화정 하에서 여성은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고,
18세기말 유럽의 몇몇 민주정에서도 여성은 배제됐습니다.
영국에서는 앞서 언급한 바 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여성 권리 옹호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1792)에서 여성선거권을 최초로 주장한 바 있었죠.

미국도 건국 초부터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여성선거권을 획득하기 위한 당연한 투쟁은 19세기 초에 시작됐습니다.
이 시기는 노예제 반대운동이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죠.
루크리샤 모트과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이 흑인노예의 권리뿐 아니라,
여성 권리도 인정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어요.

이어, 루시 스톤도 적극 나섰습니다.
그가 주도한 최초의 여성운동 전국회의가 1850년 매사추세츠에서 열렸습니다.
그는 1869년에는 미국 각 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여성 선거권을 확보하려는 목적을 가진 미국여성선거권협회(American Woman Suffrage Association)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같은 해 만들어진 전국여성선거권협회(National Woman Suffrage Association)와 1890년 통합돼 전미여성선거권협회(National American Woman Suffrage Association)로 활동했습니다.

(※참고자료 : 위키백과, 브리태니커학습백과)

위민넷 - 키위, 여성을 말하다 (기고)

 

Posted by 스윙보이

쿨머니(Cool Money)

앞서 설명한 핫머니는 국제금융시장을 이동하는 단기자본으로,
이런저런 부작용을 야기시켰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부작용도 줄이고 장기적으로 지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돈도 있지 않을까요.

이에 '쿨머니'라는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핫머니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시원한 돈'으로 직역되는 쿨머니를 의역하자면, '멋진 돈' 정도가 될 겁니다. 
쿨머니는 장기간에 걸쳐 이익을 추구하는 돈입니다.
핫머니처럼 단기에 치고 빠지면서 이익에만 매달리는 것과는 다르죠.

두 개념이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에서는 같습니다만,
방법론적으로는 크게 대비됩니다. 

쿨머니는 사회책임투자, 사회책임경영, 사회적 기업, 마이크로 크레디트(소액신용) 등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성과를 함께 추구하는 투자, 경영, 기부 전략을 짜면서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모토를 갖고 있지요. 

따라서 최근 쿨머니를 부르짖는 목소리도 하나둘 나오고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 중요한 경영 화두로 등장하는 것과 아울러,
기업은 이윤과 함께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참고자료 : 사회책임투자 전문사이트 '쿨머니')

Posted by 스윙보이

핫머니(Hot money)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더디 가면서,
성장률이 더 둔화되면 핫머니 유출 등으로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는데요,
지난 10여 년 전, 아시아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했던,
핫머니는 빠지지 않고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뜨거운 돈'이라고 직역되는, 이 핫머니의 정체는 뭘까요.
국제금융시장에서 통용되는 핫머니의 정의는,
국제금융시장을 이동하는 부동적(浮動的)인 단기자금입니다.

각국의 단기금리 차이, 환율 차이 등에 따른 투기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것과,
일국의 정치정세 불안이나 통화불안 등을 피하기 위한 자본도피 등 두 종류가 있지요.
1930년대에 핫머니가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국제환시장을 교란시켰던 탓에,
제2차 세계대전 후 각국이 엄격한 외국환관리를 하여, 핫머니의 이동은 적어졌는데,
근래 환관리의 자유화로 국제금융시장에서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핫머니의 특징을 보자면,
자금이동이 일시에 대량으로 이루어지고, 자금이 유동적 성격을 취합니다.
따라서 외환수급관계를 크게 동요시켜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저해하기도 합니다.

(※ 참고자료 : 두산대백과사전, 네이버 지식IN)

Posted by 스윙보이

스포츠맨? 스포츠우먼은 어디?

여수시 등 전남지역 일원에서 열린 제89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이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8월 올림픽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줬던 국가대표들도 대거 참석,
전국체전이 모처럼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경기들은 한 번씩 보셨어요?

이런 운동경기를 하는 선수들을 지칭하거나,
어떤 사람이 운동(스포츠)에 능할 경우 표현하는 말로,
'스포츠맨(sportsman)'이 많이 쓰입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운동경기는 남성만 하는 게 아니죠?
운동이 남성들 중심으로 소비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많은 여성들이 스포츠에 참여하고 선수로도 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경우,
운동선수나 운동선수의 이상상을 기술한 윤리강령으로 운동선수들이 명심해야 할 경기정신을 표현한, '스포츠맨'이나 '스포츠맨십'을 많이 쓰는데요.
이것 역시 중성적인 단어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견해를 국립국어원은 전합니다.

따라서, 
스포츠맨은 '운동선수'로,
스포츠맨십은 '운동정신'으로, 
바꿔 써보는 것이 어떨까요.

※ 참고자료 : 「성차별적 언어 표현 사례조사 및 대안마련을 위한 연구」, 국립국어원․한국여성정책연구원

Posted by 스윙보이

'스턴트맨'도 배우랍니다

'스턴트맨(Stunt man).' 잘 아시죠?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위험한 장면을 찍을 때, 다른 배우를 대신해 출연하는 단역배우.
전문직이죠. 특수한 훈련을 받아, 그 장면만을 위해 전문으로 출연하니까요.
이 같은 일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는 분들도 간혹 나오는 것도,
그만큼 일이 힘들고 위험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죠.

스턴트는 체조 용어로, 묘기·곡예·아슬아슬한 재주 등을 뜻하는 말입니다.
체조에서는 뛰어난 기교를 가리키는 속어로도 쓰인 답니다. 

그런데, 
이런 스턴트맨도 남성들만의 영역으로 알려졌지만,
여기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차츰 늘고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남성만 액션이나 스턴트 연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출연자들도 이런 연기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전히 그들을 통칭해 '스턴트맨'으로 부릅니다.

관습적으로 굳어진 말이긴 하지만,
여성들도 참여하는 일을 '스턴트맨'으로만 규정하는 건 좀 이상하죠?

국립국어원은,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로 여성을 포함하는 경우,
혹은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을 표현하는 단어는,
중성적인 단어로 바꿀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에 스턴트맨은 실연배우, 대역배우로 바꿀 것을 제안합니다.

이와 함께,
그들도 영화나 드라마의 장면을 구성하는 '배우'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단순히 스턴트맨으로 그들을 규정하지 말고,
그들에게도 배우라는 타이틀을 붙여주면서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해주면 좋겠어요.

※ 참고자료 : 「성차별적 언어 표현 사례조사 및 대안마련을 위한 연구」, 국립국어원․한국여성정책연구원

Posted by 스윙보이
해가 지지 않는 영원한 잉글랜드의 왕,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33.9.7~1603.3.24)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시대,
그 기원에는 엘리자베스 1세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여느 남자 왕을 능가하는 치세와 통치력으로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이뤘던 왕.
그의 재위기간 잉글랜드는 융성했고,
국민으로부터 '훌륭한 여왕 베스'로 불릴 정도였지요.

평생을 독신으로 남았기에, '처녀왕( The Virgin Queen )'으로 불리기도 했죠.
 
엘리자베스 1세는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아마 이 영화 기억하는 분, 있으실 거예요. <천일의 스캔들>.
영화의 주인공인 튜더 왕조의 헨리 8세와 두 번째 왕비 앤 볼린, 그들의 딸이 엘리자베스 1세입니다. 물론 그가 왕위에 오르기까진 쉽진 않았죠.
영화를 보시거나 역사에 정통한 분은 아시겠지만,
그의 어머니는 간통과 반역죄로 참수됩니다.
궁정은 복잡한 권력다툼으로 시끌벅적하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왕위계승권도 박탈당하죠.
또 이복언니 메리 1세의 가톨릭 복귀 정책으로 야기된 와이어트 반란이 일어났을 때, 여기에 휘말려 런던탑에 유폐되기까지.
그러다가 석방된 후 인문학자 R.어스컴에게 그리스·라틴 고전을 배우고,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의 외국어를 공부해 역사·음악·신학에 능통한 재원으로 성장했습니다.
배움에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품격을 잃지 않으려했던 노력이 돋보이죠?

결국 메리 1세가 죽자 엘리자베스1세는 25세에 왕위에 즉위했습니다.
바야흐로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개막, 대영제국의 시작.
왕위에 오르자, 그는 국교를 확립하고 종교적 통일을 추진하는 한편,
화폐제도를 통일하고 물가억제를 통해 국민들의 삶을 안정시키고자 했습니다.
또한 유리·제당·제분·금속·광산 등 각종 공업분야에 독점권을 부여, 이를 보호육성하고자 하는 등중상주의 정책을 펼쳤으며,
무역 단체들에게 특허장을 교부해 조직함으로써 무역 확대와 해외 진출을 도모하는 가운데, 동인도회사를 설립했지요.
아울러 빈민구제법을 만들어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통치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즉위 이듬해인 1559년 의회에서 그에게 결혼을 청원했습니다. 후사를 봐야한다는 것이었죠.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나에게는 이미 영국(잉글랜드)라는 남편이 있다."
그는 또 신민들에게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그대들은 나보다 더 위대한 군주를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나보다 그대들을 더욱 사랑하는 군주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외교 관계에서도 엘리자베스 1세는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했습니다.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에스파냐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즉위 전 받았던 펠리프 2세의 구혼을 즉위하면서 거절했어요.
또 네덜란드의 독립을 도왔으며, 에스파냐의 미국과의 무역선을 습격해 에스파냐 선박의 해상지배에 금이 가게 만들었습니다.
영국인들은 환호했고, 국민적 자각이 높아지면서 해상 발전의 길이 트이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조그만 섬나라에서 대해상국으로 성장하는 기초.
 
문화면에서도 치적은 도드라지죠.
영국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국민 문학의 황금시대가 열립니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셰익스피어, 스펜서, 베이컨 등의 학자와 문인이 나왔습니다.
 
영국(잉글랜드)인들은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향수와 로망을 갖고 있을 거예요.
그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도 최근 10년 새에 많이 선보였죠.
1998년 <엘리자베스>에 이어 2008년에는 <골든에이지>가 스크린에,
2005년과 2006년에는 각각 BBC와 채널4에서 미니시리즈로 방영됐습니다.   
 
영국(잉글랜드)과 결혼했다고 호언하던 왕,
스스로 '버진 퀸'이라고 선언했던 왕,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왕국의 기초를 닦았던 엘리자베스 1세는,
어쩌면 해가 지지 않는 영국(잉글랜드)의 왕으로서 지금 존재하는 건 아닐까요.

 
한편, 2008년 4월 미국의 한 선물가게에서는 놀라운 발견이 있었습니다.
노년기의 엘리자베스 1세로 추정되는 초상화가 나온 거죠.
이 그림은 60세 무렵의 엘리자베스 1세가 빛 속에서 무표정하게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그의 주름이 고스란히 묘사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 두산대백과사전, 씨네21, <엘리자베스 1세>(앨리슨 위어 지음/ 하연희 번역 / 루비박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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