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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에 해당되는 글 86건

  1. 2008.07.13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혼 : 프리다 칼로 by 스윙보이 (2)
  2. 2008.07.11 '미망인' 사용하면, '미개인' by 스윙보이 (4)
  3. 2008.07.09 '배운 녀자'를 아시나요? by 스윙보이 (2)
  4. 2008.07.05 ‘마초(Macho)’는 무슨 뜻? by 스윙보이
  5. 2008.07.03 르네상스 시대의 비극적인 에너지 by 스윙보이
  6. 2008.07.02 장애보다 더 극복하고 싶었던 세상 by 스윙보이
2001년 <프리다>라는 영화를 통해 '프리다 칼로'를 처음 만났다. 멕시코 배우, 셀마 헤이엑은, 멕시코의 국보이자, 예술과 생이 분열되지 않는, 위대한 화가 '프리다 칼로'를 그려냈고, 영화 속 프리다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피어난 비범한 예술혼이었다. 사실 나는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 사랑이 프리다의 예술을 더욱 가열차게 채찍질했지만. "그저 살아가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여자"라고 프리다는 디에고에게 말하기도 했지만, 디에고가 있었기에 그 예술이 더욱 빛을 발했음이 분명했다. '덫'인 것을 알면서도, 발을 디뎌야하는 '숙명'이었다고나할까.

한편으로 프리다는 공산주의자(반공시대의 오도된 '공산주의'말고)였고, 혁명가였다. 멕시코 혁명기에 태어나, 그 혁명의 진행과 과정을 함께 했던 프리다. 공산주의 소모임에 들어가 멕시코로 모여든 망명자들과 만나면서 혁명을 꿈꾼 사람. 망명 온 레온 트로츠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것도 프리다였고, 트로츠키는 프리다에게 빠졌다고 전해진다. 초현실주의의 주창자이자 프랑스 시인인 앙드레 브루통은 프리다 그림의 깊이와 자유로움 때문에, "프리다 칼로의 예술은 폭탄 주위에 둘러진 리본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여하튼, 오늘은 프리다의 54주기 되는 날.
좀더 깊은 프리다 칼로를 알기 위해선, 여기를 꼭 읽어보시라.
☞ 바람구두의 문화망명지-프리다 칼로(1)
☞ 바람구두의 문화망명지-프리다 칼로(2)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혼
[세상을 이끄는 여성] 프리다 칼로 (1907.07.06~195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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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때론 치명적입니다. 하지만 치명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락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치명타를 입은 상태에서 발산된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경우가 그렇겠죠. 멕시코의 국보급 화가, ‘프리다 칼로’가 그랬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상처투성이 영혼’이었습니다. 독일어로 ‘평화’를 뜻하는 ‘프리다’라는 이름과는 정반대의 생이었어요. 사랑에 의한 상처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그는 늘 고통과 싸워야 했어요. 한번 훑어볼까요?

시작은 6살 때였습니다. 소아마비에 걸린 프리다 칼로는 다리를 절게 됐어요. 콤플렉스가 된 것인지, 그는 다리를 감추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그릴 땐 긴 치마를 입혔다네요. 결정적 위기는 18세 때 찾아옵니다. 첫사랑과 함께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사고 때, 손잡이용 쇠파이프가 몸을 관통하는 바람에 척추, 오른쪽 다리, 자궁을 크게 다쳤습니다.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죠.

그런데 사고 후 석고틀에 갇힌 채 회복기를 가진 프리다 칼로가 만난 것이 그림이었습니다.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그리고 물 만난 고기였나 봅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렸습니다. 첫사랑이 멀어질까 그림도 선물했지만, 첫사랑은 헤어지기 마련이라죠? 21살 때 헤어졌다네요. 그렇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받은 그가 의지할 곳은 그림이었습니다.  

어쨌든 첫사랑을 위해 그린 그림이 그의 예술혼이 불붙은 시작이었다면, 역시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과 사랑은 예술혼을 만개하게 만들었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생에 두 개의 사고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가 18세 때 일어난 교통사고라면 다른 하나가 바로 디에고와의 만남입니다. 그러나 디에고와의 사랑은 늘 롤러코스터였습니다. 3번의 유산이 있었고 디에고의 여성편력은 프리다 칼로를 힘들게 했습니다. 한편으로 이혼과 재결합 등을 거치면서도 두 사람은 정치적 이념이나 미술에서는 든든한 파트너로서 자리매김했습니다. 

교통사고로 평생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고, 치명적인 사랑에 거듭 상처를 받았던 프리다 칼로. 그러나 그것들은 그의 작품 세계에 중요한 주제가 됐습니다.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아니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예술혼이었던 거죠.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파블로 피카소, 바실리 칸딘스키, 마르셀 뒤샹 등으로부터 초현실주의 화가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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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는 강인한 예술혼이었습니다. 억압적인 사회관습을 거부했으며, 자신의 고통을 오브제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형성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 많은 부분이 자신의 고통을 담은 자화상인데, 그것은 또한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1984년 그의 작품을 국보로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도 많이 피곤했나봅니다. 사고 후유증으로 다리 하나를 잘라내고 척추의 고통도 심해지던 47세가 된 해의 7월, 진정제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의 마지막 일기장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네요. “I hope the leaving is joyful; and I hope never to return.”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참고자료 : 『HERSTORY-Women Who Changed the World』 루스 애쉬비, 데보라 오른 편, Viking, 1995 )
『나,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의 편지와 자화상들)』 프리다 칼로|이혜리 역, 다빈치, 2004)

Posted by 스윙보이

얼마 전 이런 뉴스가 있었죠. "한국이 미망인이나 이혼녀에 대해 전 세계에서 가장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회로 꼽혀 충격을 주고 있다..."
새삼스러울 건 없습니다. 우린 이미 그런 현실을 알고 있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명제 또한 뚜렷하니까요. 기사는 곳곳에 미망인이라고 적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지난달 마산보훈지청이 '제22회 경남보훈대상 시상식'을 열었습니다. 5개 분야 상이 있었는데, '장한 미망인상'이라는 부분도 있었어요.
이 두 기사를 보면서 민망하더군요. 왜냐고요? 사전만 들춰보시면, 아실 겁니다. 미망인의 정확한 뜻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입니다. 옛날 순장의 풍습에서 나온 말로, 남편을 따라 죽지 않은 과부를 가리킵니다. 그런 유래를 가진 단어를 기자나 행정기관에서 버젓이 쓰고 있다니, 우습지 않나요?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할 목숨인데, 아직 살아있으니 죄인이라는 뉘앙스를 지닌 말을 말이죠. 다행히도 다른 한 신문에서는 미망인 대신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여성'이라는 표현을 썼더군요. 가부장제나 남성우월주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쓰던 말을 여남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쓰는 건, 시대에 한참 뒤쳐진 미개인의 처사 아닐까요?

물론 현재 '대한 전몰군경 미망인회'라는 단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자 애잔함을 품게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이 단체에서도 미망인이라는 말이 맞지 않다며 바꾸려고 시도한 적도 있다네요. 좋은 대안이 있으면 이를 바꿀 의지가 있다고 하고요.

국립국어원에서는 미망인을 '고 아무개의 부인'으로 바꿀 것을 권고했습니다. 순장의 풍습에서 비롯된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자는 의미죠. 또한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이에 첫 번째 작품에 붙이곤 하는 '처녀작'은 '첫작품'으로, '집사람 바깥양반'은 '배우자'로 대안을 삼자고 제안했습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국립국어원의 권고를 보도했던 언론들은 이후 다른 기사에서 왜 '미망인'을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미개인이거나 무뇌아인 걸까요? 아니면 과거의 오랜 습관을 쉬 버리지 못하는 미망(未忘)때문일까요? 모를 일이네요.

Posted by 스윙보이
'배운 녀자'를 아시나요?

이른바 ‘배운 녀자’들이 뜨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궁금하시다구요? 전문직 여성 혹은 고학력의 여성을 뜻하냐구요? 이도 저도, 아닙니다. 최근 쇠고기 관련 이슈 등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에 편승한 신조어가 ‘배운 녀자’입니다. 시중에 회자되고 있는 이 배운 녀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현실에 적극 참여하는 20~30대 여성을 뜻하는 말이라네요. 얼굴이나 몸매 등 외양보다는 개념 똑바로 박힌 정신상태를 가진 여성.

그렇다면, ‘여자’도 아니고 왜 ‘녀자’일까요. 그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1920년대 자기주장을 적극 펼치며 동시대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준 ‘신여성’에 빗대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된장녀, 신상녀 등이 여성들의 소비지향적인 단면을 비하했다면, 배운 녀자는 생활밀착형의 사회운동을 주도하는 등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뜻한다네요.

특히 이 신조어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이 계기가 됐지만, 점차 영역을 확대하고 있답니다. 생활 속에서 직접 자신의 배움을 실천하는 움직임도 가속화되고 있고요. 윤리적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운동부터 친환경, 나눔, 공정무역 등 함께 사는 세상과 공공의 이익이 그들에겐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습니다.

배운 녀자는 인터넷 상의 한 패션동호인 모임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함께 여성 포털사이트나 요리·육아 사이트 등 여성들이 주로 찾는 사이트의 회원을 중심으로 확대됐다고 합니다. 정치·경제·사회 등 주로 남성들이 주도한 담론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가정에만 묻혀있기를 거부하고 사회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친다는 점에서, 어쩌면 배운 녀자는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현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스윙보이

“거세고 드센 마초 이미지의 이종격투기 선수가 대한민국 여심을 사로잡고 있다.”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에 대한 기사 한토막입니다. 그를 묘사하는 단어 중에 ‘마초(Macho)’가 보이시죠? 이 단어, 미디어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과연 마초가 무슨 뜻일까요. 마초 앞에 ‘거세고 드센’이라는 수식어가 있긴 한데, 그것으로 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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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내용과 상관없는, 추성훈의 사진. 출처 : 추성훈 홈페이지 http://www.judo-saiko.com


마초는 정확하게 ‘남자’를 뜻하는 에스파냐어로, ‘machismo’에서 온 명사입니다. 그런데 특정 언어가 그러하듯, 본디 뜻에서 파생된 상징어로서의 의미가 대중에 더 널리 퍼지기도 합니다. 마초도 그렇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성적 매력을 물씬 풍기는 남성’이란 의미도 있고, 에스파니아에서는 지나친 남자다움을 이야기할 때 쓰인답니다. 때론 용기가 있는 남성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여성을 비하하거나 공격하는 남성을 뜻할 때 더욱 자주 일컫죠. ‘마초이즘(machoism)’은 지나치게 여성을 비하하거나 공격하는 성차별주의자 또는 남성 우월주의자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마초증후군을 갖고 있다’고 하면, 남자로 태어난 것이 여자를 지배하기 위한 특권이라도 되는 듯이 행동하는 일련의 증상이나 행태를 보인다는 것을 뜻하죠.

마초는 사실 어디에나 있습니다. 남성적이고 거칠며 강한 것을 숭배하는 단순한 의미의 마초도 있지만, 그런 의미보다는 가부장적인, 폭군적인,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사로잡혀 있는 마초 또한 많습니다. 마초증후군이 심해지면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말과 행동이 자행됩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죠.

에스파니아 정부와 매체는 2004년 마초 행위를 악명 높은 가정 폭력의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네요. 기실 권력을 향한 욕망이나 전쟁을 통한 힘의 쟁취 등도 넓은 의미의 마초이즘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인터넷에서 여성들을 아무 근거없이 덮어놓고 비하하고 욕설을 퍼붓는 ‘사이버 마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현실, 그건 아무래도 지질한(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한) 남성들의 아우성이라고 측은하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쯔쯧, 찌질한 마초들'하면서 혀 한번 차주세요... ^^

위민넷 - 키위 지식센터 (기고)

P.S. 찌질한 마초들과 상대하거나 만나느니, '대마초'를 피우는게 훨 낫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러니까, 완전 비약하자면, 대마초도 이제 그만 허하란 말씀! 이 대한민국아~
Posted by 스윙보이
르네상스 시대의 비극적인 에너지

[세상을 이끄는 여성]
루크레치아 보르자 (1480.04.18~15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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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꽃이 핀 르네상스 시대라고 하지만, 중세는 여전히 엄했습니다. 종교에 기반을 둔 엄격한 율법과 금기는 상존했습니다. 일탈보다는 속박이 더 익숙했다고나할까요. 하긴 어떤 시대라고 일탈이 사회를 넘어서긴 하겠습니까마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어떤 생각이 드세요? 다양하고 격조 높은 예술작품들과 대가들이 먼저 떠오르지 않으세요? 후세들에게 르네상스라고 할 때 떠오르는 상징은 그렇게 각인돼 있지만, 좀더 속살을 파고들면 배신과 음모, 권모술수로 얼룩도 덕지덕지 묻어있습니다. 어쩌면 르네상스 시대에 문화예술이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정치사회적인 얼룩에 저항하거나 에둘러 풍자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몸부림이 있었던 때문은 아닐까요.

여하튼 그런 시대에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루크레치아 보르자’. 이름이 약간 익숙하다 싶지 않으세요? 맞아요.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가 그의 오빠입니다. 정치적 야망을 위해 동료나 친구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거했던 냉혈한이었죠. 그의 구호도 무시무시합니다. ‘카이사르(황제), 아니면 무(無)’. 마키아벨리가 이상적 군주의 모델로 삼았으나, 온갖 음모와 숙청 등을 일삼은 ‘악행의 자서전’을 쓴 인물.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가 바로? 역시 맞습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입니다.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타락했다는 평을 받는(혹자는 좋게 말해서, ‘가장 세속적인 그리스도’라고 하더군요).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그런 가문 출신입니다. 교황의 딸이자, 이른바 ‘사생아’.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단아’로 충분히 낙인이 찍히고도 남을 태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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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그의 생은 불행에 가까웠을지 모르겠습니다. 야망이 이글대는 아버지와 오빠를 둔 영양(令孃)에게는 불가피한 운명이었겠죠. 더구나 사료나 역사가들은 그를 당대 최고의 미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권모술수와 정쟁에 골몰하는 가문에 미인이라는 점까지 덧붙여진 탓인지, 그는 3차례의 정략결혼과 추문 등으로 만만찮은 생을 꾸렸습니다. 그래서 ‘팜므파탈’이란 타이틀로 입길에 올랐죠.

그러나 ‘팜므파탈’의 타이틀로만 그를 규정하는 것은 한편으로 부당합니다. 그 말은 대개 부정적인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주변의 정치적 배경과 놀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계를 감안한다면, 그는 정략과 정쟁의 희생이 된 비극의 여인입니다. 아니, 외려 그에겐 진짜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에너지가 때론 불온함에서 비롯되듯, 종교와 율법의 억압과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그는 탈선의 쾌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물론 한계가 뚜렷하긴 했지만요. 아름답고 매력적인 자신의 장점을 활용한 그는 외교술과 화술의 달인이었습니다. 명랑하고 활력이 넘쳤으며 그것이 또한 자신을 ‘가문의 영광’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코자 하는 타자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Posted by 스윙보이
장애보다 더 극복하고 싶었던 세상

[세상을 이끄는 여성] ① 헬렌 켈러 (1880.06.27~1968.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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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장애를 극복했다는 사실이, 다른 더 큰 진실을 압도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인간승리’만 부각될 뿐, 온전한 생은 거세된 경우죠. 당사자가 그것을 조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특정집단의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헬렌 켈러(본명. 헬렌 애덤스 켈러, Helen Adams Keller)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어요. ‘헬렌 켈러’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맞습니다. ‘인간승리’의 대명사. 많은 사람들이 그래요. 교과서, 위인전, 많은 대중매체 속의 헬렌 켈러는 시각과 청각장애를 이겨낸 위대한 사람입니다. 물론 그 수사도 분명 맞습니다. 그는 생후 19개월에 앓은 열병 때문에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지만, 7살에 만난 설리번 선생의 도움으로 장애를 극복합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헬렌 켈러와 앤 샐리번 선생의 49년 우정’입니다. 헬렌 켈러는 16세에 대학교에 입학했고, 5개국어를 구사했으며, 미국 최초로 학사학위를 취득한 시청각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인간승리’ 맞습니다.

그런데 이후의 헬렌 켈러는 어땠을까요. 88세까지 살았는데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헬렌 켈러의 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여기서 더 큰 진실이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그는 열정적으로 사회와 접점을 찾습니다. 설리반 선생의 헌신적인 도움과 우정이 성인이 되기까지의 헬렌 켈러를 형성했다면, 이제는 자신만의 사고와 행동으로 생을 꾸립니다. 그는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세계와 사회를 고민했고, 자신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냈습니다. 대학시절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진 그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펼쳤습니다. 또 아동노동과 인종차별에 반대했으며 사형 폐지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미국 사회당에 입당했고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라는 글을 발표하고 방송출연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했었죠. 미국 윌슨 대통령이 “전세계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독일에 선전포고한다”라고 1차세계대전 참전을 선언하자, 그는 이렇게 비판합니다. “(미국 백인들이) 수많은 흑인을 학살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지배자는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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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활동이 마뜩찮은 일부 주류언론에서 ‘배후세력이 있다’ ‘누군가에게 조정당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으나, 그는 당당히 밝힙니다. “위선적인 동정은 거절한다. (나를) 이용한 것은 자본주의 언론”이라고. 그는 <세계를 뒤흔든 10일>을 쓴 저널리스트 존 리드를 비롯해 당대의 다양한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사회활동을 펼쳤습니다. 1940년대에는 스페인 공화주의자 석방운동을 펼쳤고, 매카시즘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의 석방운동에도 동참했습니다. 인간승리의 상징이자 존경받는 활동가인 헬렌 켈러의 활동에 대해 미국 정부는 탐탁치 않아 했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미국연방수사국(FBI)이 그를 감시·사찰한 보고서에 “공산주의, 파시스트, 나찌 정당당원”이라고 해놨을까요.

이런 헬렌 켈러를 ‘장애극복’의 테두리에서만 보는 것은, 극히 일부만을 보는 것이죠. 그는 어떤 배후나 누군가의 조정이 아닌, 자신만의 의지로 사회의 변화를 위해 헌신한 투사였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더욱 심각한 장애와 결함을 가진 ‘무쓸모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프로그램에 나간 그에게 묻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답합니다. “쓸모보다 목숨이 길어요.”

위민넷-키위, 여성을 말하다 (기고)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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