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10년이 넘은 어느 날,『자본론』(비봉출판사)을 샀다. 상하, 2권짜리.
느닷없이, 라는 표현이 맞겠다.
투철한 사회역사적 인식을 갖춘 운동권은커녕,
하루하루 용맹정진하면서 학문과 맞서자했던 학구파도 아니요,
그렇다고 책에 탐닉하던 탐독가도 아니었으며,
학업이나 학교보다는 그저 딴짓에 주로 몰두하던 어설픈 복학생.
이유는 모르겠다. 왜 그런 느닷없는 짓을 감행했는지에 대해선.
뭔가, 텅 비어있음을 깨닫고 괜히 있어보이기 위한 작태였을까.
아님 IMF 이후의 폐허에서 뭐라도 붙잡기 위한 발악이었을까.
그것도 아님, 그저 충동적인 구매?
책을 보니, 줄도 그어져 있고, 상권의 절반 정도를 읽었다.
역시나, 포기한 게다.
뭐, 어쩌겠나. 대가리가 따라줘야지.
어쨌든, 늘 늦된 나는 그때 아마 처음으로,
김수행 교수의 이름을 접했다.
자본론을 뒤적이다 결국 포기한 자였지만,
그 이름은 접수했다.
이후 간혹 그 이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철학 혹은 근황 등을 접하면서,
그에 대한 존경심을 은근히 품게 됐고.
지난해였나, 서울대를 정년 퇴임한다는 소식과 함께,
마르크스경제학자를 더 이상 임용하지 않은,
서울대(경제학과 교수진)에 대한 실망감도 느끼고 있던 터였다.
존경할만한 사회의 노장을 만난다는 것, 어쩌면 가문의 영광이다.
그런 영광이 있었다.
지난달 19일 김수행 교수님을 눈 앞에서 알현했다.
만나기 전, 설레기까지 하더라.
처음 그 이름을 접하게 해 준 『자본론』도 챙겨갔다. 사인 받을라꼬!
강연 시작 전, 바로 내 앞에 실체로 계신,
교수님께 사인을 부탁했고, 받았다. 꺄오~~~
당근, 조낸 조아빳데루.
카를 마르크스의 126주기다(1818년 5월5일~1883년 3월14일).
수행교수님 말씀대로,
자본가 계급이 이윤을 폭식하겠다고,
노동자 계급을 분할 통치하기 위한 가장 최근의 방법이 비정규직이었다.